각계 의견수렴 뒤 정부안 도출해 일본정부와 교섭 원칙
“일본 기업과 직접 협상 요구”…“그것도 포함해서 논의”
다양한 피해자 요구 하나로 모을 소통창구 마련엔 의미
한국에 책임 미루는 日과 교섭할 정부안 도출까지 난망
[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일관계의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판결 해법을 풀기 위한 민관협의회가 4일 출범해 첫 회의를 개최하면서 피해자가 수용하고 국민이 납득할 협상안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주재하고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체 및 법률 대리인, 학계 전문가와 언론·경제계 인사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후 민관협의회 첫 회의가 개최됐다. 이날 회의는 예상했던 1시간 30분을 훌쩍 뛰어넘어 2시간 40분동안 진행됐으며, 그만큼 참석자들의 입장이 충분히 개진된 것으로 보인다.

첫 회의가 끝난 뒤 정부는 이번 민관협의회를 통해 우선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3건을 논의하고, 협의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정부안을 도출하며, 그 정부안으로 일본과 교섭한다고 밝혔다. 

피해자측은 이번에 일본 기업과 직접 협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발동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최종 정부안을 피해자가 수용할지 알 수 없는 만큼 계속 협의회에 참석할지 여부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외교부가 나서 피해자측의 다양한 요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한 소통창구를 마련한 것에는 의미가 있지만 최종 정부안 도출까지 힘든 고비가 예상된다. 특히 이번 해결안은 강제징용과 관련해 대법원에 계류 중인 9건, 고등법원에 계류 중인 6건 등 총 67건의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어서 쉽지 않은 관문이다.

특히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이 최종 정부안에 대해 피해자가 수용하지 않았을 경우를 우려해 협의회에 지속 참여할지를 고민하는 현실이 낙관적인 전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교부는 1차 회의 참석자가 고정 멤버가 아니고, 추후 필요에 따라 다른 분들의 참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협의회에서 찬반 의견을 물어서 어떤 안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열려 있는 협의체’로 민관협의회가 운영되다가 정부안이 도출된다고 하니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가 제일 크다.

   
▲ 4일 오후 조현동 외교부 1차관 주재로 첫 회의가 열리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민관협의회에 참석하는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대리인단과 지원단이 서울 외교부청사 입구에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7.4./사진=연합뉴스

사실 민관협의회가 출범하기 전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발적 출연으로 조성한 300억원 기금으로 대위변제를 하는 안을 놓고 한일 정부가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결국 일본과 교섭할 정부안은 따로 추진되고 있는데 민관협의회는 명분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배경이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게다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국내자산 현금화 시점이 임박해지면서 시급한 문제가 됐다.

특히 윤석열정부는 북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따라서 정부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민관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미 시급한 현안이 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다루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정부가 협의회 운영과 별도로 일본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몰라도 이미 한일 양측의 입장차가 너무 큰 것이 사실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0월과 11월 각각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 대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에 따라 당시 한국측에 제공한 총 5억 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한국측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측은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중공업의 국내 자산 압류 및 매각을 위한 법적 절차를 진행해왔고, 올해 8~9월쯤 그에 대한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법원의 판결에 대해 전혀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일본정부는 일본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 매각 현실화를 양국 관계의 ‘레드라인’으로 간주해왔다. 그런 만큼 이번 협의회의 성과 여부에 따라 윤석열정부에서도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국민의 우려와 관심이 매우 높은 이 문제를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긴장감을 갖고 집중적으로 논의를 진척시켜나갈 예정”이라면서 “일각의 우려도 알지만 이제 첫발을 떼었으므로 정부가 행하고 있는 노력을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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