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61)-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는 없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자유론>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잔인한 4월이다. 4.16 1주년이 지나도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은 주체할 수 없다. 유가족의 애틋한 슬픔을 폭력시위로 왜곡시키는 사람들의 방종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탐욕과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적폐의 혁신에 나서는 일이다. 경건해야 할 추모행사를 불법시위와 폭력으로 얼룩지게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린 싹들의 희생을 모독하는 일이다. 공권력을 무시하고 시민과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가 용인될 수 있는 ‘자유’일까?

더 없이 잔인한 4월에 존 스튜어트 밀이 갈파한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으면 좋겠다. 밀은 1859년에 《자유론(On Liberty)》을 출간했다. 고전이면서 그 뜻과 가치가 현대에 가장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책 가운데 이만한 역작이 드물다. 150여 년 전 밀의 성찰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사회의 작동 원리로도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이 생각한 ‘자유(liberty)’의 핵심에는 개인(individual)이 자리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자유다. 자유의 영역은 아주 넓다.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와 같은 내면적 의식의 영역은 물론,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와 결사의 자유까지 포괄한다.

하지만 한 개인의 자유가 무한히 확대될 때 불가피하게 다른 개인의 확대되는 자유와 충돌한다. 나의 자유를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간명한 원리에 의한 제한이 따른다. 즉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자신의 보호를 위해 경우 이외에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는 누구에게도 권리로써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회는 이런 방법을 통해 다수의 삶의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 그 어떤 개별성(individuality)도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존중되어야 할 개별성과 사회성(sociality)의 조화의 필요성을 잊지 않는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질서 간의 조화가 요구된다는 의미다.

누구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없다

밀은 국가 권력이 개별 구성원에게 부당한 제재와 횡포를 가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지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도 제한이 불가피함을 인정한다. 누구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자유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또는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이럴 경우 그는 타인에게 그 침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여 발생하는 분쟁에 국가가 개입하여 처벌을 대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은 자기행동에 대해 자유로운 선택과 불가침의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해칠 뿐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국가든 개인이든 그에게 어떠한 고통을 줄 권리 또한 없다.

누군가 도덕적 오류를 범한다거나, 품위 없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명확하게 누군가가 침해받지 않는다면, 그런 행위자를 비난이나 경멸할 수는 있어도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개개인의 행위의 개별성이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마냥 허용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라도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없기 때문이다. 자살을 개인의 자유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밀은 개인의 사상의 자유, 행동의 자유가 박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원칙을 강조한다. 특히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관습과 여론에 의한 속박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모든 인위적인 속박은 개인의 개별성과 독창성을 억제시킨다.

자유의 보장은 개성의 신장을 가능하게 하여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뛰어난 개인들을 만들어 내는데 유리하다. 국가 권력이나 대중의 여론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는 국가의 의사나 대중의 여론에 오류가 없다는 무오류의 독단적 전제에서 비롯된다.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무오류의 확신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근거가 된다. 비판과 토론에 의해 국가나 집단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특히 반대론을 경청함으로써 보다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다수의 의견이 항상 진리인 경우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지만, 한편으로 다수 대중의 무지와 독단에 의해 소수를 억압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시대에 개인은 점점 더 집단 속에 매몰되어 간다. 사회의 간섭에 의한 개별성의 위축은 궁극적으로 개개인의 자유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킨 민주주의가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덕목의 조화가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자유 못지않게 ‘개인적 덕목'과 ‘사회적 덕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시민 교육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서로 도와가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며, 나쁜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취하도록 서로 격려”하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경우에도 개인적 행동에 대해 부당하게 간섭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밀이 금주법, 오락 금지, 휴일 준수법, 모르몬교의 일부다처제 등에 대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간섭의 중대한 사례로 설명하고 있는 이유다.

자유의 원칙을 국가 운영 전반에 완벽하게 적용해 나가는 건 쉽지 않다. 자유에 대한 공인된 일반 원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자유를 허용하고, 얼마만큼 자유를 제한할 것인지는 국가와 사회의 상황, 국민적 합의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자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타인과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려는 자연스런 욕구를 갖고 있다. 한편으로 자신의 욕망을 우선적으로 충족시키려는 이기적 욕구에 더 많이 몰두할 수도 있다. 밀의 《자유론》은 바로 이런 인간의 개별성과 사회성의 가치를 어떻게 합리적 수준에서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가 만발할수록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자유의 일정 부분을 스스로 통제해 내야 할 자유민주주의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또 다양성과 개인의 개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고 사회성을 더 강조하다보면 국가와 집단의 지나친 간섭이나 억압을 초래할 소지도 충분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개인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진작시켜야 한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협소한 이기주의를 벗어나 사회적 연대책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민주적 시민교육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성찰의 참뜻이 우리사회에 제대로 구현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2013). 2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