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측 "외교부와 신뢰 훼손"…외교부 "일본과 신뢰 조성 중"
'한국이 해법 가져오라' 일본 입장 고수할 때 조속한 해결 난망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윤석열정부 외교부가 한일관계 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한일 외교수장이 지난 4일 네 번째 만남을 가졌다. 지난 5월 취임한 박진 외교부 장관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한달간 세차례 만났으며 이에 대해 외교부는 한일 간 셔틀외교가 복원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에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성사되기까지 자민당 외교부회의 반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한국의 독도방어훈련 및 독도해양조사를 이유로 이번 회담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한일정부 모두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라 이르면 올 가을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조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와도 연결돼 있으므로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최대 현안이다.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는 피해자가 존재하고, 정부가 해결 방안을 마련할 때에도 피해자측이 납득할 만한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 국가의 모든 외교 활동에 국민여론이 반영되는 것이지만 한일 역사 갈등 해결에는 특히 국민여론이 민감하게 작용한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외교부가 운영 중인 민관협의회에서 피해자측이 빠지기로 선언하는 등 불협화음이 나타나고 있다. 피해자측은 3일 외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외교부의 최근 대법원 의견서 제출 등을 이유로 들며 민관협에 불참을 통보했다.

피해자측은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에 대해 “사실상 대법원 (현금화) 결정을 미뤄달라고 한 것이므로 사실상 피해자측의 권리 행사를 제약하는 중대한 행위인데도 사전에 통보를 받지 못해 신뢰가 훼손됐다”면서 “지난 7월 26일 이미 제출된 의견서조차 피해자측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5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2.8.5./사진=연합뉴스

피해자측의 반발 속에서도 정부는 다른 경로로 피해자측과 소통을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오는 9일 3차 민관협의회 회의를 열기로 했다. 외교부는 대법원 의견서 제출에 대해서도 한일 간 외교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법령과 절차에 따른 정당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박진 장관도 지난 3일 프놈펜으로 출국하면서 인천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정부는 민관협을 통해서 피해자측을 비롯한 국민 각계각층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며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진정성 있게 계속 경주해나갈 예정이다. 민관협 이외에도 당사자들과 원고 측과 계속 소통할 수 있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놓고 여론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일본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사망했으나 자민당 내 극우세력의 민심을 살피는 정치인들의 반대가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일 역사 문제에서 일본정부가 전향적인 변화를 보이기는 힘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에서 일본정부가 취해온 입장은 한국정부가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또 당장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문제가 있을 때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파탄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이번에 프놈펜 한일 외교장관회담 이후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한일 간 신뢰가 어느 정도 조성됐다고 보고, 회담이 이전보다 매우 진지해지고 있다”면서 “그동안 일본이 되풀이해온 ‘한국이 해법을 가져와라’ ‘국제법 위반이다’ 등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측에서 박 장관의 말을 경청한 이후 언급한 발언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징용 배상 문제에서 일본이 기존 ‘한국이 국제법을 어겼으므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한일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피해자측의 민관협 불참 선언은 정부안이 어떻게 도출되더라도 여론지지를 받기 힘들 것이란 전망을 반영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여기에 박 장관이 하야시 외무상을 만나 일본측에 거듭 촉구한 ‘성실한 호응’이 어떻게 구현될지에 따라 징용 배상 과정에서 여론의 후폭풍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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