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타격의 달인' 장효조, '최초 100승' 김시진, '해결사' 한대화,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 수식어만 들어도, 이름만 봐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 선수들이 KBO 레전드로 선정됐다.

1982년은 한국야구사에 큰 획을 그은 해였다. 6개 구단 체제의 프로야구가 첫 발을 내디뎠고, 7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이 극적으로 우승했다. 국내 개최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의 우승을 위해 많은 야구 스타들이 프로팀 합류를 보류하기도 했다. 

이 때 한국대표팀의 주축이었던 많은 실업 및 대학 선수들이 KBO 리그 출범 다음 해인 1983년에 프로 데뷔하게 된다. 이 선수들은 아마 시절 명성에 걸맞게 곧바로 KBO 리그를 주름잡았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우승 주역 가운데 전문가와 팬이 선정한 KBO 레전드 40인에 포함된 선수들은 장효조(6위), 김시진(20위), 한대화(28위), 김재박(31위)이다.

   
▲ 사진=KBO


'타격의 달인'으로 불린 장효조는 통산 타율 0.331로 이 부문 역대 2위에 올라있다. KBO 리그에서 3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 중 장효조보다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현역으로 뛰고 있는 키움 이정후(0.341, 2022년 8월 7일 현재)가 유일하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마추어 시절부터 타격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이름을 날렸던 장효조는 프로 입단 첫해인 1983시즌 타율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5시즌부터 1987시즌까지 3시즌 연속 타율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KBO 리그 통산 40번의 시즌 동안 타율 부문 1위에 4번 오른 선수는 장효조와 양준혁(전 삼성 1993, 1996, 1998, 2001년) 둘 뿐이다.

장효조는 통산 출루율 1위(0.427)답게 출루율 타이틀은 총 6회(1983~87년, 1991년)나 차지했다. 이는 통산 출루율 공동 2위에 올라있는 김태균(0.421)의 4회 수상보다 2회나 더 많은 기록이다.

장효조는 전문가 투표에서 144표(73.85점), 팬 투표에서 490,154표(8.97점)를 얻어 총 점수 82.82로 40명의 레전드 중 6위에 올랐다.

1980년대 삼성 타선을 장효조가 이끌었다면 삼성 마운드는 KBO 리그 최초 100승 투수 김시진이 호령했다. 김시진은 장효조보다 두 살 어렸지만 대구상고, 한양대부터 육군경리단을 거쳐 1983시즌 삼성에 입단해 1988시즌 종료 후 롯데로 트레이드돼 1992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장효조와 계속 함께 해왔다.

김시진은 삼성 첫 시즌 17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5년째인 1987시즌 KBO 리그 최초로 100승 투수 반열에 올랐다. 김시진이 100승까지 도달하는데 등판한 경기는 186경기.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최소경기 100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김시진의 커리어 하이 시즌은 삼성이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뤄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던 1985시즌으로, 김시진은 25승(역대 단일시즌 최다승 공동 3위)으로 승리 1위, 201 탈삼진으로 이 부문 1위, 승률 0,833으로 이 부문 공동 1위에 오르며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 시즌 김시진은 무려 269⅔이닝을 투구하며 10세이브를 기록해 세이브 부문 2위에도 올랐다.

김시진은 롯데로 트레이드돼 등판한 첫 경기인 1989년 4월 14일 OB(현 두산)를 상대로 14이닝 동안 219개의 공을 던지며 1실점만 내주고 완투승을 거뒀다. 이는 지금까지도 최다 투구 이닝 승리 공동 1위, 최다 투구 승리 1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김시진은 전문가 투표에서 115표(58.97점), 팬 투표에서 401,640표(7.35점)를 얻어 총 점수 66.33으로 20위에 올랐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8회에 터뜨린 역전 스리런포로 '해결사' 역할을 했던 한대화는 프로에 들어와서도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OB에 입단해 3년간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던 한대화는, 1986년 해태로 트레이드된 첫 해 승리타점 1위(16개)에 오르며 '해태왕조' 주역의 등장을 알렸다.

해태가 4시즌 연속 우승한 1986시즌부터 1989시즌까지 꾸준히 홈런 5걸 안에 들며 중심타자로 활약한 한대화는 1990시즌에는 타율과 출루율 1위, 안타, 타점, 득점 부문 2위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해태를 떠나 LG로 트레이드된 1994시즌에도 타율(0.297)과 타점(67개) 9위에 오르며 중심타선에서 활약, 우승 반지를 7개로 늘렸다. 한대화가 갖고 있는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8회 수상(1986~91년, 1993~94년)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한대화는 전문가 투표에서 90표(46.15점), 팬 투표에서 493,904표(9.04점)를 얻어 총 점수 55.20으로 레전드 순위 28위에 자리했다.

세계선수권 결승전 '개구리 번트'로 국민적 영웅이 된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은 실업리그 7관왕 출신으로 프로 데뷔 이전부터 공수주 3박자를 다 갖춘 명 유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1982년 시즌 막판 MBC(LG 전신)에 합류해 3경기에 출전했던 김재박은 사실상 프로 데뷔 첫 시즌이었던 1983시즌부터 도루 2위(34개), 득점 4위(53개), 안타 6위(108개)에 오르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당시 기준으로 야구선수로서는 고령인 30세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탓에 실업에서의 명성만큼 압도적인 성적을 내진 못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수비와 공격 그리고 주루 실력을 바탕으로 4년 연속(1983~86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KBO 리그를 대표하는 간판 유격수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다. 김재박은 전문가 투표에서 81표(41.54점), 팬 투표에서 496,853표(9.10점)를 얻어 총 점수 50.63점으로 31번째 레전드로 뽑혔다.

   
▲ 표=KBO


레전드로 선정된 선수들의 시상은 레전드들의 전 소속 구단 홈 경기에서 진행된다. 장효조와 김시진에 대한 시상은 오는 8월 11일(목) 삼성의 대구 홈 경기 KIA전에서 동시 진행되며, 2011년 별세해 고인이 된 장효조를 대신해 그의 가족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대화에 대한 시상은 8월 16일(화) SSG와 KIA의 광주 경기에서 열릴 예정이며, 김재박의 시상은 17일(수) 삼성과 LG의 잠실 경기로 예정돼 있다.

40명 레전드와 관련된 특별한 스토리는 KBO의 공식 발표에 맞춰 KBO 홈페이지와 네이버 스포츠의 KBO 40주년 특집 페이지 등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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