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재정부담...박원순 때 폐기한 정책 ‘재탕’, “지방채도 발행”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형 수해를 막을 해법으로, 11년 만에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대심도 터널)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상기후에 따른 폭우에 대응할 중장기 근본 대책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나오지만 박원순 전 시장 때 비용과 실효성 등을 이유로 폐기된 적이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 시장은 10일 집중 호우 대책을 발표하며 11년 전 중단된 대심도 터널 건설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심도 터널은 대용량의 물을 모아 흘려보낼 수 있는, 일종의 방재용 지하 터널이다.

   
▲ 오세훈 서울시장/사진=미디어펜 윤광원 기자


11년 전 오 시장은 '우면산 산사태'를 계기로, 하수도 관거 용량 확대와 더불어, 지하 30∼40m에 지름 5∼7.5m 크기의 대심도 터널 7곳을 설치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터널 건설 예정 지역은 강남역, 도림천(신림동∼구로디지털단지), 광화문(종로구 통인동∼중구 삼각동), 동작구 사당동, 강동구 천호동∼암사동, 용산구 한강로, 양천구 신월동이었다.

그러나 오 시장이 물러나고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신월동을 제외한 6곳의 건설이 무산됐는데, 투입 비용 대비 침수 방지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번 수해를 계기로 대심도 터널 건설에 다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시간당 100㎜를 훌쩍 넘는 폭우에 대비하려면, 수십만t에 달하는 대량의 빗물을 모아 흘려보낼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위원들도 전날 도림천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후변화에 맞는 새로운 중장기 수방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과 같은 대규모 지하저류시설을 전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오 시장 역시 대심도 터널이 있는 신월동 등 양천구에선 폭우 피해가 없던 점을 들며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의 유효성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향후 10년 간 1조 5000억원을 집중 투입해 순차적으로 터널을 만들 계획으로, 재원은 기본 예산 외에 지방채 발행과 국비 지원을 받아 조달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미 서울시 채무가 11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추가 지방채 발행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10여 년 전에도 8500억원에 달하는 재원 부담이 사업 무산의 주요 이유가 됐었다.

장기 계획인 만큼, 이번에도 차기 시장이 계획을 변경하지 말란 법이 없고, 정부의 국비 지원이 충분히 이뤄질 지도 미지수다.

대심도 터널만으로는 대규모 수해를 막기 부족하다는 반론도 있다. 

강남역의 경우 지난 6월 지하 배수시설인 반포천 유역 분리 터널이 개통됐지만, 빗물 받이가 도로 면적에 비해 부족한 데다 인근 하수관로 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아, 방재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강남역 현장 도로에는 물이 20㎝ 차 있는데, 지하 관로엔 물이 절반도 차 있지 않았다"며 "하수관로로 이어지는 물 구멍(빗물 받이)이 부족, 물을 하수관으로 제대로 쏟아내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물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면 배수 터널도 소용이 없다"며 "물이 배수 터널까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도로 배수 시설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과 함께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해 관계자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아울러 서울시는 주거용 지하·반지하 주택 퇴출을 추진한다.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과 또 다른 기초생활수급자 1명이 잇따라 숨진 뒤, 내놓은 대책이다. 

서울시는 우선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자치구에 건축 허가 원칙을 전달하고, 건축법 개정을 정부와 협의키로 했다. 

기존 지하·반지하 건축물의 경우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적용, 세입자가 나간 뒤 근린생활시설, 창고, 주차장 등 비주거용으로 전환할 경우 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정비사업에서 용적률 혜택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10~20년 유예 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앤다는 계획이다. 

빈 곳으로 남은 지하·반지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 '빈집 매입사업'을 통해 사들여, 주민 공동창고나 커뮤니티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경기도 또한 반지하 주거 형태를 전면적으로 실태 조사해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는 국회에서 긴급 당정 협의회를 열고, 지하 주택과 같이 주거 취약 지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1년에 1300가구 씩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확충,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망 사고가 발생한 서울 상도동 반지하 가구를 찾아, 지하·반지하에 사는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지하·반지하 주택은 저렴한 주거비와 출퇴근 등 입지 조건이 좋아, 여전히 거주 수요가 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반지하 거주 인구는 전국적으로 33만 가구로, 서울에만 20만 가구, 경기도에는 8만 8000 가구에 달한다. 

지상에 비해 값이 저렴, 주로 저소득층의 주거 공간이다. 

특히 노년 가구와 자녀를 양육하는 가구 비율이 높은데, 가격 대비 넓은 주거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하 임차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87만 7000원이고,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은 23.8%로 아파트 임차 가구의 29.2%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반지하를 퇴출시키고 주거 취약 계층을 끌어올릴 정책적 수단을 찾아 내느냐가 관건이다.

저소득 다자녀 가구에 대한 공공 임대주택 입주 우선권 부여나 월세 지원, 저소득 양육 가구에 별도의 아동 주거비 지원 등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반지하 거주 환경 개선방안' 보고서를 낸 경기연구원 남지현 연구위원은 "반지하 주택의 신축 허가에 대한 규제 관련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반지하 거주민에게 공공임대주택으로 주거 이전을 지원하고, 반지하 주택을 공공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만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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