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강속구의 에이스도 아니다. 홈런을 펑펑 때리는 거포도 아니다. 그럼에도 오래토록 기억되는 선수들은 많다. 그 중에서 프로답게 근성으로 중무장해 타격, 주루, 수비 등에서 레전드로 꼽힐 만한, 은은히 빛을 낸 스타들이 있다.

바로 '대도' 전준호, '호타준족의 대명사' 이순철, '악마의 2루수' 정근우, '명품 유격수' 박진만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가)가 리그 출범 40주년을 맞어 40명의 레전드를 선정해 매주 소개하고 있다. 29일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묵묵히 자기 몫 이상을 해내면서 팀 승리에 기여해온 대표적 선수 4명을 소개했다.

전준호, 이순철, 정근우, 박진만은 공·수에서 몸을 사리지 않으며 소속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던 명품 조연으로 기억된다.

   
▲ 사진=KBO


전준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도루왕이다. KBO 리그에서 활약한 19시즌 동안 통산 도루 549개를 기록,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다. 고교 시절까지 팀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지만 어깨 부상을 당하면서 대학 입학 후 외야수로 전향했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로 활동했던 전준호는 이력을 살려 적극적으로 베이스를 훔치기 시작했다. 1991시즌부터 2008시즌까지 기록한 18시즌 연속 10도루 이상은 그가 은퇴한 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부문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1993시즌 롯데 소속으로 기록한 75도루는 단일 시즌 최다 도루 역대 2위 기록에 해당한다. 당시 롯데 '소총부대' 타선의 선봉장으로, 뛰어난 안타 생산 능력과 결합된 도루 실력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안타-도루-득점으로 연결되는 소총부대의 득점 루트를 악착같이 이끌면서 롯데가 우승을 차지한 1992시즌에는 안타와 도루 3위, 득점 5위에 올랐다. 롯데가 준우승을 차지한 1995시즌에는 득점과 도루 1위, 안타 3위에 올랐다.

현대로 이적한 후에도 전준호는 빠른발을 바탕으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며 공수에서 활약, '현대 왕조' 건설에 일조했다. 특히 2004시즌에는 53개의 도루로 9시즌 만에 도루왕 타이틀을 다시 차지하며 역대 '최고령 도루왕' 기록을 세웠다. 전문가 투표에서 83표(42.56점), 팬 투표에서 197,191표(3.61점)를 얻어 총 점수 46.17을 기록한 전준호는 레전드 순위 34위로 뽑혔다.

이순철은 장타 생산도 가능한 타격 능력, 그리고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 범위와 도루 능력까지 공수주에 두루 능했던 대표적인 '호타준족' 선수였다. KBO 리그 입단 첫 해인 1985시즌, 3루수로 활약하며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와 신인상까지 받았지만 팀 사정으로 인해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된다. 그럼에도 타고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새 포지션에 빠르게 적응하며 1988시즌을 시작으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4회나 수상했다.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타구 판단 능력에서 나오는 여유 넘치는 외야 수비는 이순철의 전매특허였다. 도루 부문 타이틀을 세 차례나 차지하고 통산 도루 공동 7위(371개)에 올라있을 정도로 빠른 선수였지만 홈런 10걸에도 6차례나 이름을 올렸을 만큼 상당한 펀치력도 갖춘 강타자였다.

이순철은 1992시즌 KBO 리그 역대 6번째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전문가 투표에서 68표(34.87점), 팬 투표에서 473,098표(8.66점)를 획득해 총 점수 43.53으로 레전드 순위 37위에 자리했다.

정근우는 작은 체구라는 불리함을 근성과 노력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선수다. 'SK 왕조'에서도, 한화 시절에도 주장 2루수 정근우의 유니폼은 늘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빠른 발과 끈기로 양 옆으로 빠지고 머리 위를 넘어가는 타구를 어떻게든 잡아내고 막아내는 수비 실력은 일품이었다. 타석에서는 뛰는 야구의 선봉에서 공포의 테이블 세터진을 이끌었다. 2006시즌부터 2016시즌까지 기록한 11시즌 연속 20도루는 해당 부문 최다 기록이다.

악바리 근성으로 치고 달리고 잡고 던지는데 몸을 사리지 않았던 정근우의 가치가 더욱 빛났던 무대는 국제대회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 캐나다전에서의 결승 홈런,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대주자로 나서 보여준 기막힌 홈 슬라이딩 등 대표팀에서 반전이 필요한 적재적소에는 정근우가 있었다. 특히 대표팀 주장을 맡은 2015 프리미어12 준결승전에서는 덕아웃 리더로서 4-3 역전극의 시발점이 된 첫 타점도 올렸다.

정근우는 전문가 투표에서 72표(36.92점), 팬 투표에서 322,674표(5.91점)를 얻어 총 점수 42.83으로 레전드 순위 38위에 올랐다.

   
▲ 표=KBO


박진만은 화려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수비를 펼친 최고의 유격수였다. 하지만 이는 타고난 천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피나는 노력으로 쌓은 탄탄한 기본기 덕분이었다. 박진만은 축적한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당대 최고 유격수로 우쑥 섰다.

박진만의 물 흐르듯 매끄럽고 유연한 수비는 우승을 위해 필요한 마지막 퍼즐 같은 것이었다. 1998시즌, 2000시즌, 2003~2004시즌까지 현대에 4번의 우승을 안긴 박진만은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하자마자 2005시즌과 2006시즌, 2시즌 연속 삼성에 우승을 안겼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한국의 금메달을 확정지은 마지막 더블플레이도 유격수 박진만의 손에서 나왔다.

수비에서만큼 타석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는 아니었지만, 박진만의 수비 능력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은 타석에서의 아쉬움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았다. 박진만은 전문가 투표에서 66표(33.85점), 팬 투표에서 462,264표(8.46점)를 얻어 총 점수 42.31로 레전드 순위 39위에 자리했다.

전준호에 대한 시상은 9월 11일(일) NC-롯데의 경기가 열리는 사직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순철의 시상은 9월 3일(토) 광주 KT-KIA 경기에서, 박진만의 시상은 8월 31일(수) 대구 SSG-삼성 경기에서 각각 열린다. 정근우에 대한 시상 일정은 미정이다.

한편, KBO 레전드 40인의 특별한 스토리는 KBO 홈페이지와 네이버 스포츠의 KBO 40주년 특집 페이지 등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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