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 만연한 한국 주식시장…검사 출신 금감원장에 거는 기대
   
▲ 이원우 경제부 차장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주식은 동업이다. 주가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며, 한 번 사면 팔지 않는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한국의 워렌 버핏, 투자현인 소리를 듣던 어느 유명 인사가 남긴 말들이다. 진실과 착각이 어느 정도 뒤섞인 이 어록은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많은 개미(개인투자자)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1년 남짓한 시간동안 주식은 ‘사놓으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많은 개미들이 자신의 재능을 재발견하며 주식과 가상자산(코인) 시장으로 유입됐다. 투자만이 볼품없는 수저를 바꿔줄 수 있다는 믿음이 종교처럼 정착됐다. 그리고 그 믿음들은 기어이 우리의 가치관에도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코인으로 수십 수백억을 벌었다는 누군가는 투자만이 아니라 남의 인생에 대해서까지 이런저런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과는 토론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조아리며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 적었다. 일은 해서 뭐 하냐는 식의, 타인의 노동소득을 비웃는 말들이 2021년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 2022년 여름, 한국 주식시장은 세계 어느 곳보다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며 많은 개미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중이다. /사진=김상문 기자

연극이 끝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워렌 버핏은 허탈하게도 차명투자 의혹에 덜미를 잡혔다. 어마어마한 팬덤을 거느렸던 테라‧루나 코인은 바벨탑처럼 붕괴하며 코인시장 전체에 충격파를 남겼다. 2022년 여름, 파티는 끝났다. 한국 주식시장은 세계 어느 곳보다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며 많은 개미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중이다.

주식은 사놓으면 오른다고? 이 말에 대한 반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엉뚱하게도 존 메이너드 케인즈다. 그는 “장기적으로 우린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고 말했다. 내가 산 주식이 언젠가는 오를지 모르지만, 죽고 나서라면 무슨 소용인가?

주식이 동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동업자를 이렇게 취급하는 나라가 다른 선진국 중에도 또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주가 좀 오른다 싶으면 말 한 마디 없이 물적분할과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남발하는데 어떻게 고운 마음으로 ‘동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더 이상 투자 받을 곳이 없어 ‘벼랑 끝 전술’로 주식시장 상장을 택한 적자기업들을 줄줄이 상장시켜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특례상장 제도를 구비해가며 돈 잔치 축포 터뜨리기를 부추겼다. 시장이 상승장일 땐 티가 나지 않지만 하락장이 펼쳐지면 모두가 함께 폭탄을 떠안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그 절망의 끝자락에서 윤석열 정부는 출범했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7월 5일 서울 중구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여신전문금융회사 CEO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이 총체적 난국에 등장한 검사 출신 ‘저승사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 거는 기대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업계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 많은 금융인과 언론인들이 여전히 의문을 표시하지만, 지금은 어쩌면 업계 바깥의 시선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한국 주식시장이 떠안고 있는 리스크의 상당 부분이 도덕적 해이에 관한 것이라면, 상식만 철저히 지켜져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 30일 금감원 내에 공매도 조사팀을 신설해 외국계 증권사들에 대한 공매도 현황 점검에 나섰다고 말했다. 31일엔 최근 들불처럼 번진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 펀드의 공시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예고했다. 매일매일이 누군가에는 경고장으로 들릴 법한 행보다. 

어쩌면 당분간은 여의도가 조금 더 시끌벅적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식이 그냥 오르지 않듯, 정의도 거저 구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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