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이란 단어 자체 사라지기 전"…권영세 장관 절박함 강조
확장억제 강화 등 정치·군사 사안과 별개 인도적 사안으로 유화공세
전문가들, 대화기조 유지 긍정 평가하면서도 "북 수용 가능성 낮아"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8일 남북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권 장관은 통상 적십자회담을 통하던 회담을 당국회담으로 제안하면서 “이산가족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교착 상태인데 통일부가 전격 이산가족 의제로 당국회담을 제안한 배경에는 사실상 윤석열정부에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신청자 중 9만여명이 세상을 떠나고 4만여명만 생존해있는 상황에서 생존자의 평균연령은 82.4세이다. 

이산가족찾기 신청자는 모두 13만3654명이지만 이들 중 가족을 만난 상봉자는 2.28%인 총 3043명(생존자 1099명·사망자 1944명)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산가족상봉 대면 행사는 2018년 8월 이후 중단된 상태이며, 2018년 8월까지 총 21차례 이뤄졌다. 화상상봉까지 더하면 그동안 28차례만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됐다.

이 때문에 통일부는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에 ‘담대한 계획’을 중심으로 한 업무보고를 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와 신뢰구축 추진에 이어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억류자 문제를 중요 과제로 꼽았다. 당시 권 장관은 “이분들의 고령화를 감안하면 윤석열정부 5년이 사실상 마지막 해결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통일부는 이번 제안에 절박함을 담았으나 한편으로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 제안으로 남북대화의 물꼬를 틀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 장관은 담화 발표 때 기자들의 질문에 “이런 인도적 문제에 대해서 특별한 유인책은 생각하고 있지 않고, 북한도 반드시 호응해야 한다”면서도 “어떤 의미에서 이산가족 제의를 통해서 다른 남북관계 문제가 같이 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산가족 관련 대화 계기에 북측의 다른 인도적 문제에 대한 요청이 있다면 정치·군사적인 상황과 관계없이 언제든지 지원하고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고도 했다. 만약 북한도 지금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깰 출구를 찾고 있다면 이번 이산가족 회담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남북협력에 나설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인권 문제에 더해 인도적 문제를 외면했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다.
 
   
▲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 별관 이산가족민원실에서 직원들이 8일 남측 이산가족의 모습을 담아 북측 전달용으로 모아둔 이산가족 영상편지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2022.9.8./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대체로 그동안 북한의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임했던 태도나 최근 북한이 내놓은 대남 발언들을 볼 때 이번 정부의 당국회담 제안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채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진행된 경우가 거의 없었던데다 최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대남 대적 투쟁”을 언급해 대남 인식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것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정치·군사적 사안과 인도적 사안을 분리한 사례가 거의 없다”면서 “7월 말 김정은 위원장이 전승절 연설을 통해 대남 대적 정신을 강조했고, 김여정 부부장이 대적 행동을 검토 중이라고 발언한 바 있어 사실상 대남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석열정부가 북핵 대응 한미공조 강화, 확장억제력 강화, 한미연합훈련 대규모 실시 등을 하면서 한쪽에서 이산가족상봉을 제안한다면 북한은 이를 이중적 태도로 볼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은 이번 정부의 이산가족상봉 제안에 대해 침묵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북한은 인도적 사안을 거부할 경우 침묵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전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분단 이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전까지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진 것은 단 한차례에 불과하다”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무현정부 시기까지 매우 활발하게 다양한 형태의 상봉이 이뤄졌지만,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시절 각각 두차례, 문재인정부에선 단 한차례 상봉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가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에 관심을 갖고, 대화 기조를 견지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면서도 “사실 이산가족상봉은 가장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이지만 가장 정치적인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산가족상봉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정부가 일관성과 진정성을 갖고 종합적이고, 정교한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통일부는 이산가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계획이다. 권 장관은 이날 “반드시 필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북한에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산가족 문제는 담대한 구상과 병행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두가지 문제를 병행시켜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치·안보 사안에서 엄격하면서 인도적 사안을 분리해 유화공세에 나선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에 일단 시동이 걸린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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