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체내 들어가면 균형·판단력 흐려져 자만·독단 빠지기 쉬워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56)-골프에서 알코올을 제외한다면

골프와 술은 따로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술은 골프를 망치게 하지만 술 없이 골프의 대미를 장식할 수는 없다.
물론 라운드 전에 술을 마시는 것은 금물이다. 지나치게 신경이 곤두선 골퍼들이 긴장을 풀기 위해 맥주 한 캔이나 위스키 한 잔 정도 마시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체적으로 라운드 전 음주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라운드 중에도 그늘집에서 정종이나 막걸리 맥주 등을 마시는 경우가 잦은데 대부분의 골퍼들이 희생자가 되기 쉽다. 물론 스코어에 관대해지는 느긋한 마음, 동반자들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 등 긍정적인 요소도 적지 않지만 적은 양이라 해도 음주의 대가는 피할 수 없다.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가면 근육이 이완돼 평소의 샷을 날릴 수 없다. 다리는 흔들려 균형 잡기가 어렵고 집중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판단력이 흐려짐은 물론 자만이나 아집, 독단에 빠지기도 쉽다.

‘약물과 운동선수(Drugs and the Athlete)’라는 책을 쓴 미국의 개리 웨들러 박사에 따르면 맥주 한 캔이나 포도주 한 잔, 또는 이 보다 독한 술을 스트레이트 잔으로 한 잔 마셨을 때 그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일단 혈중 알코올농도가 상승되면서 알코올이 간에까지 도달하게 되면 균형감각과 집중력이 상실되고 신경체계의 활동이 둔화된다.

웨들러 박사는 “사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빨리 마셨느냐에 따라 효과에 차이가 있지만 일단 알코올이 혈중에 퍼지면 길게는 14시간 동안 선수의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라운드 전 음주는 백해무익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라운드가 끝나고 마시는 한 잔의 술은 골프의 대미를 장식하는 감로주 역할을 한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찬 맥주나 소폭, 짜릿한 위스키 한 잔은 라운드로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말끔히 풀어준다. 라운드 중에 기막힌 플레이가 있었다면 그 쾌감을 재음미케도 한다.

동반자들과의 우의를 확인시켜주는 촉매제 역할도 한다. 매일 맥주를 2~3캔 정도 마시면 심장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라운드 후 한 잔은 빠뜨릴 수 없는 골프의 즐거움이 되기에 충분하다.

   
▲ 라운드 전에 술을 마시는 것은 금물이다. 지나치게 신경이 곤두선 골퍼들이 긴장을 풀기 위해 맥주 한 캔이나 위스키 한 잔 정도 마시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체적으로 라운드 전 음주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삽화=방민준
프로골퍼 중에 술을 좋아한 사람으로 미국의 월터 해이건(Walter Hagen)이 꼽힌다. 경기 전날에도 긴장감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며 밤새 술을 마셔대기 일쑤인 그는 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여러 대회에서 우승했다. 1924년 US PGA선수권대회에서도 술에 취해 출전해 우승트로피를 안았다.

그는 시상식 후 귀가 길에 술이 너무 취해 우승트로피를 택시에 두고 내렸다. 다음해 빈손으로 US PGA선수권 대회장에 나타난 그는 “친구 집에 두고 깜박 잊어버렸는데…. 뭐 어차피 내가 또 우승할 테니까.”라고 얼버무렸다. 주최 측은 새 우승트로피를 만들었는데 그는 새로 만든 우승트로피는 차지하지는 못했다.

최초의 인간이 포도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찾아와 “무얼 하느냐고?”고 물었다.
인간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대단한 식물을 심고 있다네.”
악마가 말했다.
“전에 이런 식물을 본 적이 없는데….”
인간이 악마에게 설명했다.
“이 식물에는 아주 달고 맛있는 훌륭한 열매가 열리게 되는데, 그 즙을 마시면 더없이 행복해진다네.”
악마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꼭 한몫 끼워주게나.”
그러고 나서 인간과 악마는 양 사자 돼지 원숭이를 끌고 와서 죽인 다음 그 피를 거름으로 주었다. 식물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로 포도주가 만들어졌다.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는 양처럼 온순해진다.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좀 더 마시면 돼지처럼 추해진다. 아주 많이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허둥댄다. 술은 악마가 인간의 행동에 베푼 선물이다. (『탈무드』중에서)

라운드를 끝낸 뒤의 한 잔도 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