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자존과 자기희생 사라져...미래세대 파는 어른 안돼야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내 페이스북의 커버사진은 '빈사(瀕死)의 사자상(獅子像)’이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이 조각상은 프랑스혁명의 와중에 파리 루이 16세를 지키다가 전사(戰死)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傭兵)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부국(先進富國)이지만, 스위스도 한때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였다. 내다 팔 것이라고는 사람, 즉 용병밖에 없었다. 스위스 용병은 결코 후퇴하지 않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들이 후퇴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후퇴해서 “스위스 용병은 비겁하다”는 평판이 나면, 장차 형제, 친구, 자식들의 일거리가 끊기기 때문이었다. 1792년 8월10일 파리 튈르리궁이 폭도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에 스위스 용병들이 모두 목숨을 던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1821년, 스위스인들은 이들을 기려 루체른에 '빈사의 사자상’을 만들었다. 사자상 위에는 '헤르베티아(스위스)인의 충성과 미덕’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들이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충성을 바친 진정한 대상은 루이16세가 아니라 고국의 가족들이고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지난 4월 26일 대지진이 네팔을 덮쳤다. 며칠 후 비극의 현장에 영국 군복을 입은 검은 머리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바로 네팔 출신 구르카 용병들이었다. 이들은 고국의 재앙 소식을 듣고 구조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19세기 초 이래 구르카 용병들이 대영제국의 군복을 입게 된 것도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이들이 받는 연봉은 약 2만 4000달러. 네팔 평균임금의 50배에 달한다. 당연히 경쟁률이 높다. 500대1이나 된다.

구르카 용병도 결코 후퇴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들이 후퇴해서 구르카 용병의 명성에 금이 가고, 친구와 자식들이 용병 일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1964년 12월10일 서독 함보른광산에서 파독(派獨)광부·간호사들 앞에 선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정말 반드시….”

대통령도 울고, 영부인도 울고, 광부들과 간호사들도 울었다.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들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함께 통곡했다. 울음을 삼키며 박정희 대통령은 말했다. “비록 우리 당대에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번영의 기틀이라도 마련하자”고….

스위스 용병, 구르카 용병, 그리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시간도, 장소도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치열하게 자기의 시대를 살았던 당당한 독립자존(獨立自存)의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해 후손들의 먹거리를 만들어냈다.

魂이 없는 공무원들

하지만 모든 시대, 모든 인간들이 다 이렇게 숭고한 자기희생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다. 나라의 곳간을 헐어서 자기들이 흥청망청 쓰다가 그 청구서는 후손들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세대들도 적지 않다. 페론 이후 아르헨티나가 그랬고, 지난 한 세대 동안의 그리스가 그랬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거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독립자존과 자기희생의 정신은 사라졌다. 남의 것을 빼앗아 내가 편하게 살려는 도둑놈 심보만 만연하다. 아니, 그걸로도 모자라 제 새끼들의 몫까지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려 한다. 공무원연금개혁을 둘러싼 파행이 그 증거다.

지금의 공무원연금 구조는 한 마디로 공무원들이 자기들이 낸 것보다 더 많이 가져가면서 그로 인한 구멍은 우리 시대의 납세자들과 후손들이 메우는 구조다. 세금으로 메워 주는 돈이 하루에 80억 원이나 된다.

   
▲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씨는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공무원연금개혁안에 합의했다고 한다. 후손들이 지게 될 수백조원의 빚을 자기가 책임지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사진=연합뉴스

공무원들도 할 말이 없지 않다. “최저생계비 지원으로 아무 것도 안 하고 매달 80~90만원씩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평생 나랏일을 하고 월급에서 꼬박꼬박 일반 국민연금가입자들보다 많이 돈을 떼였으면 그 정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 심정이 이해는 간다. 그렇다고 해도 공무원들이 자기들이 낸 것보다 더 가져가고 그로 인한 부족분을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메운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40대 초만 넘어도 언제 어떻게 회사에서 떨려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인생들이 60세까지 정년이 착실하게 보장되는 공무원들의 연금을 내 주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공무원들이 국민들에게 그런 희생을 요구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덕수세대’, 즉 개발연대의 공무원들에게는 그래도 '혼(魂)’이 있었다. 사명감, 창의, 헌신, 열정이 있었다. 그들은 김이나 가발, 오징어나 수출하던 나라를 세계 유수의 중화학공업·전자공업 강국으로 일으켜 세웠고, 풀도 자랄 수 없다는 메마른 영일만 야산에 울창한 산림을 조성했다.

하지만 지금의 공무원들은 다르다. 정년까지 자기 자리 지키다가 은퇴해서 연금 타 먹는 게 가장 큰 낙이고, 공무원 그만 둔 후 적당한 낙하산 일자리 찾아가는 게 인생의 꿈 아닌가? 이건 내 얘기가 아니다. 공무원인 내 친구가 본 공무원 사회의 자화상(自畵像)이다. 그런 자세로 공직생활 하는 사람들이 무슨 염치로 납세자들에게 손을 내미나?

후손들의 삶은 내 알 바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나섰을 때, 박수를 쳤다. 그런데 그걸 여야(與野) 정치인들이 맡더니 엉뚱한 짓을 해 버렸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는 시늉을 하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국민들에게 국민연금을 더 주겠다고 약속해 버린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저항하기 위해 공무원노조가 내걸었던 '공적 연금 강화’라는 꼼수에 말려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소득대체율이니, 보험료율이니, 기여율이니, 지급율이니 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보험료율을 얼마나 높여야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높일 수 있는 지 신문에서 아무리 설명해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새민련이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신(神)의 한 수’운운했던 알파, 베타가 뭔지, 그게 왜 '신의 한 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안다. 지금의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시스템 아래서는 기존 공무원이나 기성세대가 자기가 낸 돈보다 더 받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국민들과 후손들에게 전가된다는 사실 말이다.

야당은 “2060년 기금 소진을 기준으로 소득대체율 40%를 위해서는 월급에서 국민연금에 떼는 돈의 비율(보험료율)이 9%, 소득대체율 50%가 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이 10.01%가 되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 자료를 인용하면서 “명목 소득대체율을 현재의 40%에서 50%로 높이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 인상은 1.01%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그런 식으로 소득대체율 50%를 맞춰 나가다는 2060년 기금 고갈 시점부터는 보험료율이 25.3%로 급등한다고 한다. 현재 보험료율의 2.8배가 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야당의 주장은 지금 세대에게는 국민연금을 더 주겠지만, 그 부담은 2060년 이후의 세대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2060년에는 김무성씨(새누리당 대표)도, 문재인씨(새민련 대표)도, 유승민씨(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우윤근씨(새민련 원내대표)도, 조원진씨(공무원연금개혁특위 새누리당 간사)도, 강기정씨(공무원연금개혁특위 새민련 간사)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내가 알 바 아니다’ 이건가?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씨는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공무원연금개혁안에 합의했다고 한다. 후손들이 지게 될 수백조원의 빚을 자기가 책임지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어떻게?

손자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지금도 등록금 대출 등으로 수천만원의 빚을 짊어지고 사회로 나서는 대학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겁다. 월급쟁이를 하면서 그만한 돈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빚에 눌려 사는 그 인생에 무슨 낙이 있고 희망이 있을까?

그래도 그들이 진 빚은 자기 자신을 위해 진 빚이니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하자.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이, 자기는 아무런 혜택도 보지 못했는데, 무조건 수 천 만 원 씩의 빚이 강제로 지워진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그런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누가 감내할 수 있을까? 그런 부당한 고통을 감내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자식들, 조카들, 손자손녀들이다. 아버지, 어머니,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그게 할 짓인가?

그런데도 여야 정치인들은 태연히 그런 불의(不義)한 짓을 저질렀다. '공적 연금 강화’라는 미명 아래…. 말은 아름답지만, 그건 파렴치한 범죄 행위다. 정작 그 부담을 감당해야 할 세대의 동의 없이 그들의 재산과 미래를 강탈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활력도, 희망도 사라져가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나는 때때로 '어쩌면 우리 세대는 현대사에서 자기가 물려받은 것보다 더 못한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첫 번째 세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 그런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온다. 나는 자식이 없지만, 중학교,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애들을 생각하면, 미안해 죽겠다.

그런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지금 세대가 노후에 연금 몇 푼 더 받자고, 지금 세대의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표를 좀 얻자고, 그 어린 것들에게 빚더미를 물려주자고? 그런 결정을 내린 정치인들은 '참 나쁜 정치인’들이다. 천벌 받을 사람들이다. 집에 가서 자식들, 손자들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런 짓을 하나? 그 애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제발 부탁이다. 스위스 용병, 구르카 용병, 그리고 '덕수세대’들처럼 후손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는 못 할망정, 자식, 손자들에게 헤어나지 못할 빚더미를 유산으로 물려주는 사악한 조상은 되지 말자. 그건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