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책임, 정부에 묻기 어렵지만 민사상 국가배상청구는 가능
인파사건 매뉴얼 없지만 직무집행법 적용하면 경찰 개입 가능
해밀톤호텔, 불법건축물 폭 3.2m…지붕 없앤 가벽, 법적 판단은?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156명이 사망한 '이태원 압사 참사'가 책임 소재를 가리려는 법적 쟁점으로 옮겨 붙고 있다. '현장통제'를 놓고 경찰과 상인회 간의 진실공방이 벌어진 가운데, 사고 사흘만인 1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경찰청장·소방청장이 일제히 사과하고 나섰다.

정부가 아직 사고 수습 중이라 말을 아끼고 있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형사책임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묻기 어려운 반면 민사상 국가 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기자가 국가 배상 청구 가능성 및 안전관리 책임 소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지금 이번 사고의, 앞으로의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일체의 경위와 철저한 진상 확인이 우선"이라며 "책임이나 그 이후의 문제는 진상 확인 결과를 지켜본 뒤에 해야 할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진상 확인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10월 30일 오전 경찰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법적 쟁점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정부나 지자체가 사고를 막을 수 있었나 하는 여부다.

사고의 발단이 된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자가 없어 정부의 매뉴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동선 통제에 특화된 경찰 인력이나 용산구청 안전관리 공무원들이 따로 투입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과 같은 사고의 경우, 다중인파사건에 대한 매뉴얼이 부재해 정부에 직접적인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지적이 법조계 중론이다.

다만 헌법 34조(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를 비롯해 경찰관직무집행법(경찰관은 국민의 생명 신체보호 및 공공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를 보호할 책무를 진다) 등을 인용하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포괄적으로는 정부가 위험 방지 노력을 했는지 및 사고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지가 또다른 법적 쟁점으로 부각된다.

특히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와 관련해 언론 브리핑에서 "사고 직전 위험을 알리는 112신고가 다수 있었다"며 "신고를 처리한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판단했다"면서 경찰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고 나섰다.

이번 사고로 인한 사망자 유족 입장에서는 정부에게 국민 보호 의무-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정황근거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번과 유사한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사고 원인도 정확히 규명되지 않아 법적 책임 소재에 대한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주최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발적으로 모인 이벤트였고, 정부가 지정한 공휴일도 아니었던만큼 안전관리 책임을 특정할 수 있을지가 쟁점이 된다.

마지막 법적 쟁점은, 사고가 일어난 문제의 골목이 3.2m 폭이 되도록 만든 해밀톤호텔의 가벽에 대한 책임 소재다.

건축법상 도로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4m 이상 폭이어야 한다. 해당 지역 건축물현황도에도 문제의 골목 너비는 4m로 나와 있다. 실제로 확인해 보면 골목 위쪽은 5m 이상이었지만 아래쪽은 3.2m로 좁아진다. 인파가 몰릴 경우 아래로 병목 현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물리적 구조다.

해밀톤호텔은 골목길 중간쯤 건축한계선을 침범해 건물 출입구를 설치했고, 철제 가벽을 골목 하단부에 붙여 지었다. 중간 출입구부터 철제 가벽까지 건축한계선을 침범한 불법 건축물인 격이다.

하지만 이 철제 가벽에 대해 지붕이 없어 건축물로 보기 힘들어 불법건축물 단속 대상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구청 단속을 피하는 편법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이 철제 가벽에 대해 그동안 용산구청이 어떻게 평가하고 조치해왔는지, 해밀톤호텔이 건축한계선을 침범한 것을 알면서도 그간 어떻게 운영해왔는지를 조사해야 할 시점이다.

사고 당일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이태원 핼러윈 데이 특성상 동선 통제가 부재했던 여건 때문에 특정 지점에서의 인파 밀집은 피할 수 없었다. 향후 정부가 사고 원인 규명을 어떻게 내리고 대책을 수립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