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안전 '방기'에 급추락한 국격...서울시·용산구·경찰 대응 '안전불감증' 병폐 고스란히
   
▲ 윤광원 정치사회부 부국장대우
[미디어펜=윤광원 정치사회부 부국장대우] "자랑스럽던 이 나라, 창피한 후진국이었네", "대한민국 국격 급전직하"

이번 '10·29 참사' 관련 방송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방송사 홈페이지에 남긴 댓글의 일부다.

필자도 심정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만 해도 우리 국민들은 이제 대한민국이 드디어 선진국이 된 줄 알았다. 경제력은 물론 특히 ‘한류’ 등 우리 문화의 힘이 전 세계를 움직이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다. 내로라하는 선진국들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상상할 수조차 없는 '후진국 형 참사'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한 외신은  이 뉴스를 전하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집회와 시위 관리는 잘 하지만, 공중안전에는 문제가 많다"고…

필자는 이 보도가 은근히 한국을 비아냥대고 깎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선진국이라도 된 양 으스대던 너희들은 역시 그 수준'이라는 비하적 평가가 깔린 보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구 언론의 이런 평가는 1997년 외환위기를 당한 우리나라를 보는 선진국들의 시각을 연상케 한다. 당시 서구 언론들은 "한국은 '삼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비꼬았다.

사후 대처도 분통을 자아내게 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당일 대규모 집회가 많아 경찰력이 다수 동원되다보니,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한 술 더 떠 참사가 터진 그 시각 용산경찰서장은 진보단체들의 시위를 막느라 대통령실 앞에 있었고 사고를 '늑장 보고'해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고 한다.

대통령실에 처음 보고한 것도 경찰이 아닌 소방방재청이었다. 국민안전에 대한 시스템의 붕괴다.

   
▲ 서울광장 '10·29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사진=미디어펜 윤광원 기자

국제뉴스에서나 접하던 '압사 참사'로 156명이나 되는 '생떼' 같은 젊은이들이 희생됐다. 부상자도 157명에 달하고 중상자가 다수 포함돼 있어 희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과 소방당국 모두 대규모 인파가 비좁은 거리에 몰릴 것을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안전관리에는 손을 놓았다.

특히 참사 4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깔려 죽을 것 같다'는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는데도, 경찰도 소방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게다가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면피성' 발언을 일삼아 여당에서조차 '경질론'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이 장관은 1일 국회에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그 사과는 기자회견을 통한 '대국민 사과'도 아니다. 의원들의 질타가 두려우니, 급한 불부터 끄자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같은 날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참사'가 아닌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란 표현을 고집하고 있다.

해당 지자체인 서울시와 용산구도 책임이 대단히 크다.현장 안전관리에 손을 놓은 것은 물론, 참사 전 112로 신고된 시민들의 사고 위험 제보 11건 중 2건이 용산소방서에도 전달됐다. 그런데 소방서는 불과 100m 거리의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2건 모두 묵살해버렸다.

1건은 '부상자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하자 뭉개버렸고, 또 다른 1건은 '구급차가 필요하냐'고 물었다가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하자 문제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서울시도 인정했다.

아직 참사 발생 전이니 부상자가 없고 당장 구급차가 출동할 상황도 아니라고 신고자가 대답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신고자는 사고를 막기 위해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와 달라고 절박하게 애원한 것인데 '동문서답'만 하다가 끊어버린 셈이다. 소방은 지자체 관할 조직이다. 그 책임이 엄중할 수밖에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안이했다. 오 시장은 참사 당시 유럽 각국을 순방 중이었다. 무려 11일에 달하는 '장기 출장' 일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올림픽 유치를 위한 것이라고 둘러대지만, 실제 올림픽 관련 스케줄은 11일 중 단 하루뿐이었다.

꼭 참석해야 할 중요한 회의나 행사도 딱히 없었다. 그저 오 시장이 가고 싶은 곳에, 원하는 시간에 편하게 가서, 자신의 기존 정책과 연관지어 '장황한' 보도자료를 내면서 홍보를 하는 행보로 일관했다.

'불요불급'한 장기 외유이고, 시민 혈세로 조성된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귀국 예정일이던 31일은 서울시의회의 시에 대한 '행정사무감사' 불과 이틀 앞이었다. 참사는 예상 못했더라도 이쯤 되면 시의회를 무시하고 깔본다는 얘기도 나올 만하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30일 급거 귀국했지만 사고 책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상황을 파악해보고…"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결국 1일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했지만, 과연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서울시 안전총괄실은 1조 5000여 억원에 달하는 예산의 3분의 2를 도로·교량 관리에 사용해 안전과 재난 관리는 '뒷전'이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관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할로윈데이'가 주최 측이 없다는 점을 들어 '축제'가 아닌 '일종의 현상'이라고 발언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태에 대한 공감 능력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정부는 물론 경찰과 소방, 서울시와 용산구의 '대오각성'과 엄정한 책임 규명을 강력히 촉구한다. 국민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