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대중 저널리즘 탈피할 새 상품, 기능성 뉴스 주목해야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이란 게 있다. 보통 게임이 오락물인 것과 달리 교육, 건강, 군사, 전략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응용 효과를 강조한 새 종류 게임 콘텐츠를 말한다. 우리말로 기능성 게임이라고 부르는 이 혁신은 이미 사행성 게임 쪽으로 오락 중독성이 극단화하고 있는 게임 장르 쏠림을 바로잡아 주는 균형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동시에 게임산업이 인류 교양과 건강, 자립 등에 복무하도록 길을 터줌으로써 영화, 출판, 방송 못지않게 양성화된 주류문화, 주력성장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한 때 ‘사회악’으로까지 손가락질 받았던 게임산업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메시아와도 같다.

이와 대칭적으로 언론에서도 시리어스 저널리즘(serious journalism)이 존재한다. 다만 뭔가 파생 상품과 같은 주변적이고 비정규 게릴라 이미지 정도로 찌그러져 있어 문제다. 미첼 스티븐스가 지은 「뉴스의 역사, 1993」은 대중 저널리즘과 구분되는 순수 저널리즘이라는 뉘앙스로 시리어스 저널리즘(serious journalism)을 말한다.

대중에 영합하는 통속적이고 자극적인 뉴스와 달리 언론사가 소신을 갖고 펼치는 진지하고 순수한 보도와 비평 그 자체를 굳이 시리어스 저널리즘이라고 분리하겠노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상은 대중 따로 순수 따로 추구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니 특별한 의미도 없고 그다지 주목받는 개념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페이스북에 무릎 꿇은 뉴욕타임스’라는 충격파가 전해지면서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화두가 또 한 번 부각되었고 아울러 시리어스 저널리즘이 한줄기 빛으로 스며들고 있다. 지난 13일 페이스북이 뉴욕타임스(NYT),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버즈피드 등 9개 언론사의 기사 전문을 제공하는 ‘인스턴트 아티클스’(Instant Articles) 서비스를 시작한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였다.

   
▲ 페이스북이 뉴욕타임스(NYT),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버즈피드 등 9개 언론사의 기사 전문을 제공하는 ‘인스턴트 아티클스’(Instant Articles)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중 버즈피드는 10년도 채 못 된 언론 벤처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버즈피드 홈페이지 캡처.
전 세계 14억 명이 북적거리고 매일 약 8억 명 열성 이용자(heavy user)들이 서식하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이 한국의 포털처럼 언론사 뉴스를 페이스북에서 직접 볼 수 있는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분수령이다. 언론계에 재앙이 될지 전략적 파트너십이 될지 아무로 모르는 로켓 발사가 감행되었다.

여기 페이스북이 첫 파트너들로 꼽은 아홉 난장이들 가운데 버즈피드(BuzzFeed)가 유독 눈길을 끈다. 10년도 채 못 된 언론 벤처인 이 회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모바일 뉴스 소비 환경에서 뉴욕타임스 같은 전통의 맹주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다크호스로 기세를 올렸다. 그 정도 위력을 보였으니 이번 페이스북 1차 라운드 ‘파트너 9’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때문에 오직 버즈피드라는 신생 뉴스 브랜드만이 페이스북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탈 새 영웅이 될 것이라는 최악의 예측과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 BBC 같은 기존 챔피언 언론들한테는 불길한 봉변이 저벅 저벅 다가오는 지배적 유통 사업자 페이스북의 독배와 저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다.

버즈피드 미래가치가 높고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의견이 나오지만 특이하게도 기능성 게임을 따라가는 시리어스 저널리즘 혁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본디 언론 뉴스에 나온 순수 저널리즘으로서 시리어스 저널리즘(serious journalism)은 서로 대칭하며 견제하는 대항마였던 대중 저널리즘과 뒤섞여 점점 녹아 없어져 버렸지만 게임산업은 그렇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들이 디지털 충격 속에서 대중을 쫓고 맞춤형 콘텐츠 서비스에 연연해져만 갈 때 디지털 발견자 게임산업은 오히려 대중과 거리를 두며 언론이 남긴 빈 자리에 진입했다. 언론이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튀는 독자들을 잡으려 흔들렸을 때 놓쳤던 것이 근엄하고 진지한 정통 저널리즘인 듯 했지만 사실은 쓸모 있는 저널리즘, 즉 기능성 뉴스였다는 얘기다.

뉴스 이용자들이 볼 때는 정론을 펴고 사회를 깨우는 순수 저널리즘으로서 시리어스 저널리즘이 아니라 좀 더 실질적이고 과학적인 문제해결형 콘텐츠가 더 귀해졌다. 이런 스마트 미디어 신인류의 요구에 일찍이 적극 부응한 산업이 곧 게임이다. 바로 한국에선 기능성 게임이라고 부르는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이 그 역할을 해냈다.

   
▲ 가짜 백수오 논란. /사진=KBs 캡처
특이한 것은 같은 시리어스(serious)에 대해서 기존 언론산업은 순수한 정통 콘텐츠로만 해석했었고 게임산업은 오락성과 사행성을 만회할 기능성 가치로 더 넓고 크게 이해했다는 점이다. 언론들이 순수 저널리즘에 대한 좀 더 유연하고 창조적 해석을 포기하고 자꾸만 대중 추수주의로 넘어갈 때 선도적 게임회사들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역사 공부, 협동심과 창의성을 함양시키는 기능성 게임을 내놓아 시장의 파이를 키워가며 성장해갔다.

이러한 시리어스 미디어(serious media)와 시리어스 콘텐츠(serious content)라는 메가트렌드에 나름대로 독야청청 올라 탄 언론벤처가 버즈피드다. 뉴스의 혁신, 저널리즘의 위기 극복과 관련해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중요 사례다. 버즈피드가 추구하는 시리어스 저널리즘은 강력한 편집과 전문 저널리스트 멘토링과 후원, 진성 취재원 확보 등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버즈피드 사이트 첫 화면은 LOL(웃음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속어. laugh out loud, laughing out loud 줄임말), wtf(What the fuck? 줄임말), DIY(Do It Yourself 줄임말), omg(Oh My God) 등 개념 분류로 뉴스 섹션을 나누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기호 표시만으로 트렌드 섹션과 같은 구획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개별 기사를 보면 ‘궁극의 페르시안 음식 투표’, ‘모든 대학 졸업생들이 알아야 할 47권 필독서’, ‘호날두는 네팔에 5백만 파운드를 기부하지 않았다’, ‘암트랙 엔지니어는 탈선 열차에 관한 아무런 커뮤니케이션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가 마약, 술, 정크 푸드를 끊고 125파원드를 감량한 방법’ 등으로 기존 언론들의 매너리즘과 차별화하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

결국 버즈피드의 시도와 페이스북이 인정하는 새로운 시리어스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독자들이 가볍게 읽고 지나가는 스낵 컬처 범람을 배격하고 최대한 깊숙이 몰입하고 침잠할 수 있을 정도 실질적인 소재를 다루고자 함이다. 최대한 창의적이고 심층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말하고 있다.

예컨대 백수오 파동이 사건으로 발생했을 때 버즈피드 같은 미디어는 어떻게 해서든 유해성을 판별해주는 권위 있는 뉴스콘텐츠를 제공하려 전력투구하려 한다. 환불이나 정책 혼선을 비난하는 수많은 속보성 보도 위주 대중 저널리즘보다는 문제 하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밝히고 해결해나가는 이른바 기능성 뉴스, 즉 시리어스 저널리즘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탐사보도만을 전문적으로 구사하는 ProPublica와 같은 미디어도 역시 공공 이익과 가치라는 기능성에 복무하는 시리어스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좋은 예다. 월 스트리트 저널 편집장 출신 폴 스타이거가 창업한 이 ProPublica는 ‘도덕의 힘(moral force)’을 숭상하는 탐사보도를 통해 2010년과 2011년 퓰리처상을, 2013년에는 피바디상을 각각 수상해 새로운 언론벤처 가능성을 입증했다.

우리 한국의 언론과 뉴스도 이러한 시리어스 저널리즘이나 아직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기능성 뉴스, 기능성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때가 왔다.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서 핵심어인 참여(engagement)를 강조했지만 이용자들을 함빡 홀리는 파격 콘텐츠, 혁신 콘텐츠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멋진 문장력이나 예리한 정파적 비평, 사자후 발언을 웃도는 실제 문제해결형 기능성 뉴스, 시리어스 저널리즘 시도가 너무 귀하다.

그러니 백수오 파동이 일어나도 공무원 개혁 논란이 장기화되어도 뒤엉킨 문제를 하나씩 조금씩 풀어나가는 키를 쥔 언론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뻔하고 상투적이고 진부한 클리셰(cliché) 저널리즘만을 반복하는 언론 아집이나 무덤덤한 관성으로는 이제 앞으로 페이스북이 ‘인스턴트 아티클스’(Instant Articles) 뉴스 서비스로 조장할 손가락 터치 참여(engagement) 수준의 통속 대중 저널리즘을 극복하긴 힘들다.

기능성 뉴스콘텐츠, 시리어스 저널리즘 같은 진지한 노력과 도전으로 단순 참여가 아닌 문제해결과 사회변동, 도덕과 인성 변화를 추구하고 창조하는 실천과 실행으로서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해보이는 언론만이 성장할 수 있을 터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