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책임은 동전의 양면…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이해 높여야
내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19일 오전 불법이 일상화된 현행 집회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독일의 사례를 통해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집회의 자유도 공짜가 아니다 : 독일집시법이 주는 교훈’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는 김상겸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발표를 맡았으며, 김영호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창연 푸른도서관운동본부 부대표,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토론자로 발표한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한국의 경우 집회시위의 자유의 확대보다는 불법과 폭력의 추방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래는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

최근 10년 간 불법·폭력시위 발생현황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불법 폭력시위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여전히 고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위유형이 존재한다.

첫째,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시위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와 최근의 세월호 1주기 추모시위가 대표적이다. 이런 시위는 특정집단이 일정한 질서를 갖고 진행하는 경우와 달리 주최측이 통제력을 가질 수 없고, 이른바 ‘시위꾼’ 등 소수의 의도나 돌발행동에 의해서도 쉽게 폭력화 될 수 있다. 나아가 폭력시위로 인한 피해에 대해 사후에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둘째, 공공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는 민원요구로 간주되고, 거주지 인근에서 거의 매일 벌어지기 때문에, 대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근래의 밀양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의 사례를 살펴보면, 공사방해를 위한 물리력이 동원되는 등 평화시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런 대규모 사업은 예외 없이 외부세력이 개입되고 정치문제화 되기 때문에, 경찰은 원칙적인 대응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셋째,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특정한 민원을 요구하는 장기 농성형 시위가 있다. 이들은 통상 관련기관 주변의 특정 공간을 불법 점유하여 천막을 설치하고 현수막과 투쟁가요로 주변의 관심을 끄는 행위를 한다. 이런 시위는 거의 폭력화되지는 않지만, 소음 피해를 야기하고 공권력의 무력화를 상징하고 전파(‘깨진 유리창’ 효과)한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적지 않다.

시민의식의 지체와 빈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의 경우 선진국과 비교할 때 법상 그 자유의 허용범위가 좁다고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집회시위의 자유의 확대보다는 불법과 폭력의 추방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상황이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폭력에 의존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시위가 계속 벌어진다면, 시민의식의 낙후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첫째, 민주주의 사회의 집회시위는 집단적 의사표현이며, 사회적 소통의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소규모 이익집단의 시위부터 대규모 정치적 시위까지 의사표현을 넘어 물리력 행사로 나가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런 인식의 착오는 과거 민주화투쟁의 경험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정상적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집회시위가 강력한 탄압과 맞물리면서 사실상 물리력을 동원한 저항의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는데, 과거의 인식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1980년대에 이른바 ‘전민항쟁’이라는 혁명적 봉기를 목표로 시위를 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는 현재도 대규모 정치적 시위가 벌어지면, 여전히 과거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 풀뿌리 민주주주의 단계에서 자유는 공공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으며,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시민의식의 성숙이 가능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둘째, 집회시위의 폭력화를 막는 공권력의 정당한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시위의 당사자들이 불법에 대한 공권력 행사를 비난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언론조차 문제를 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 시위대의 폭력행사라는 원인제공은 생략되고, 경찰의 대응행동이라는 결과만 부각되는 ‘균형의 상실’이나 ‘기계적 일방통행’현상이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정권의 평판을 깎아 내리려는 진영논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공권력을 탄압의 도구로 보던 과거 인식의 관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셋째, 집회시위 과정에서의 법 위반이나 폭력은 특별히 관용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인식도 존재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만큼, 집회시위에서 주장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헌법적 범위 안에서는 최대한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집회시위라는 이유로 그 과정에서의 폭력 등이 용인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는 식으로 법치주의를 편의적으로 접근하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권, 시민운동, 노동계 등에 늘 존재해 왔는데, 이들의 인식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집회시위에 대한 낡은 인식이 법치주의 존중과 자유와 책임의 균형적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이들이 집회시위를 가장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집회시위에 대환 인식의 개선과 함께 사회적 대응의 측면에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보겠다.

첫째, 불특정 다수 집회는 대부분 광화문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의 장소이용에 관한 엄격한 규제가 요구된다. 기존에 시장과 시의회 다수파의 정치성향에 따라 여러 차례 기준의 변화가 있었는데, 정파적 접근을 벗어난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참가가 확실시 되고, 집회주최 측의 반복적인 불법시위 사례가 확인될 경우 신중한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또한 법원은 상습적인 시위꾼과 폭력의 정도가 심한 경우 관용을 억제하는 태도를 보여야만 공권력 무시 풍조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국책사업을 둘러싼 분쟁에 정치권의 무분별한 개입이 억제되어야 한다. 국회가 정책적 측면의 논의를 넘어서, 주민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일일이 간섭하는 행태는 중단되어야 한다. 경험을 돌아보면, 갈등조정이라는 제 역할을 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정치권의 개입은 공권력의 무력화와 갈등의 격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셋째, 과도한 소음, 불법적 공간 점유 등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도 시위문화 개선의 중요한 과제이다. 지자체의 경우 표를 의식하여 엄격한 대응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이런 불법이 방치되면, 적당한 수준의 법 위반은 용인된다는 관념이 커지게 된다.

풀뿌리 민주주주의 단계에서 자유는 공공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으며,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시민의식의 성숙이 가능할 것이다.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