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DSR 규제로 실수혜 제한적…채권발행에 금리 급등 우려도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정부가 고금리로 촉발된 부동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다음달 1일부터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고가 아파트의 대출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또 규제지역 내 서민·실수요자에게는 최대 6억원을 한도로 담보대출인정비율(LTV)을 70%까지 인정해주기로 했다. 

당초 예정보다 규제 완화의 시기가 한 달 앞당겨진 셈인데, 최근 신규 아파트 물량의 미분양 사태가 겹치면서 부동산 시장 침체를 우려한 행보로 해석된다. 건설·부동산업계의 자금 리스크가 자칫 금융권으로 번질 수 있는 까닭이다. 

   
▲ 정부가 고금리로 촉발된 부동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다음달 1일부터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고가 아파트의 대출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상단이 연내 9%를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대출자(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유지돼 실수혜층은 많지 않을 전망이다./사진=김상문 기자


하지만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상단이 연내 9%를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대출자(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유지돼 실수혜층은 많지 않을 전망이다. 또 한국은행이 긴축 행보인 가운데, 정부가 통화팽창 시그널을 내놓아 양 기관이 공조를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열린 '제3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의 발표 내용 이행을 위해, 오는 16일까지 각 금융 업권별(은행·보험·저축·여전·상호) 감독규정 개정안에 대한 규정변경예고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시행일은 다음달 1일(잠정)부터다.  

이번 개정안을 살펴보면 △무주택자·1주택자(기주택 처분조건부)의 규제지역 내 지역별·주택가격별 LTV 규제 50%로 단일화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무주택자·1주택자 대상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담대 LTV 50%까지 허용 △서민·실수요자의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시 LTV 최대 70% 인정 등 크게 세 가지다. 주택 구매 의사가 있는 데도 대출을 받지 못해 '내 집 마련'을 못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회의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부채가 안정화되고 있고, 금리 상승 등으로 정책 여건이 많이 바뀌고, 추가 불안 가능성도 줄고 있어 대출 규제 정상화 속도가 당초 계획보다 높아졌다"며 "취약차주의 상환부담 완화와 가계부채 건전성 제고를 위한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날 대대적인 규제 완화 시그널을 내놨지만, 발표 이후 학계 반응은 냉소적이다. 계속되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값비싼 이자비용을 지불할 잠재적 실수요자가 많지 않는 까닭이다. 또 차주별 DSR 규제비율 40%를 적용하면 사실상 빚을 갚을 능력이 충분한 고액 자산가로 혜택이 한정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가계부채 문제가 여전한 만큼, LTV는 완화하되 '갚을 수 있는 만큼 빚을 내자'는 DSR 규제의 취지는 이어져야 한다는 평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LTV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DSR나 총부채상환비율(DTI) 형태의 규제는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는다"고 평가했다. 

DSR·DTI 규제로 실수혜층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현재의 금리 상승기에 원리금상환부담에 따른 위험도가 증가하지 않도록 DSR·DTI를 계속해서 관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LTV는 어느정도 완화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한편으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통화당국인 한은과 전혀 공조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인상)'을 단행하면서, 한은도 지난달에 이어 이달 24일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p) 인상)'을 밟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까닭이다. 

더욱이 미국은 12월에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릴 예정이라, 한은으로선 금리를 0.25%p만 올리는 게 다소 무리라는 시각이다. 사실상 한은이 고강도 긴축기조를 당분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셈인데, 정부가 부동산시장 침체를 우려해 '통화팽창'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시장에 알렸다는 평가다. 사실상 '금융정책의 언발란스'라는 것.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금통위가 조만간 미국을 좇아 금리를 0.5%p 이상 올릴 것으로 보인다. 돈줄을 조이겠다는 방향"이라면서도 "유동성이 풀린 부분이 부동산시장인데, 이 시장을 완화하겠다는 것은 (통화당국과의) 정책 공조가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또 최근 가계와 달리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의 어려움으로 대출을 늘리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출규제 완화로 자금수요의 주도권이 '가계'로 넘어가게 되면 기업들로선 더 큰 자금난에 봉착할 수 있는 까닭이다. 사실상 설익은 대출규제 완화가 최근의 채권금리 쇼크에 버금가는 실책을 야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영국 최단임 총리의 불명예를 쓴 리즈 트러스 전(前) 총리도 대규모 감세정책을 내놓았다가 재정건정성 우려에 따른 국채금리 폭등, 파운드화 급락을 야기해 물러난 바 있다. 

유 교수는 "영국에서 트러스 총리가 물러난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줬기 때문"이라며 "정책의 실효성, 투자자 관점에서 볼 때 가계는 허리띠를 조르는 게 뚜렷한데 금리 상승기에 LTV 규제를 완화한다고 얼마나 반응할 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대출규제 완화에 따른 채권금리 급등도 우려사항이다. 이번 대책에서 DSR 규제가 유지돼 실수혜층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가 제공하는 대표 정책모기지 상품 '보금자리론'과 '안심전환대출'은 DSR 규제를 반영하지 않고, DTI·LTV 규제를 적용한다. 신용상태가 좋고 부채가 별로 없는 중산·서민층이라면, 주금공이 설정한 기준치의 담보물을 대상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도 전날 회의에서 주금공이 운영하는 임차보증금 반환 대출 보증 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 주거 안정망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안심전환대출(주택가격 6억원 이내·대출한도 3억 6000만원)과 적격대출(9억원 이내·한도 5억원)을 기존 보금자리론에 통합해 '특례보금자리론'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저리 전세대출도 한도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당국 계획대로라면 주금공이 대규모 공사채를 발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취약계층 지원 및 중소기업 대출에 제공돼야 할 자금이 자칫 주택금융으로 대거 이전되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유 교수는 "한전과 같은 AA 등급의 공기업도 자금난에 채권을 발행하려 했지만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다른 공기업도 국공채를 발행한다면 자금시장이 더욱 경색될 것"이라며 "한 쪽이 이런 식으로 간다면 통화정책도 완화적 기조로 가야 한다. 한 쪽은 조이는데 한 쪽은 푼다면 결국 풍선효과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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