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상진 기자] 앞에도 뒤에도 빚의 그림자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가계부채가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있다. 경제상황 악화, 전세값 폭등, 금리인하에 힘입어 가계대출은 연일 사상최고를 경신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마이너스통장, 신용대출, 외환대출까지 집계되는 모든 대출규모가 수직 상승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의 ‘금융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4월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579조1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8조5000억원 증가했다. 2008년 한국은행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최대 기록이다. 1월부터 4월까지 늘어난 가계대출은 18조1000억원에 달한다.

   
▲ 4월 가계대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건 주택담보대출이다. 4월 현재 모기지론 양도분을 포함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26조5000억원으로 전월보다 8조5000억 원 증가했다. 역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안심전환대출은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바꾼 것으로 증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신용대출도 늘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농협 등 6대 시중은행의 개인신용대출 잔액이 작년 12월 말 77조2510억원에서 4월 말 77조3381억원으로 871억원 늘었다.

외환대출도 4.1% 상승했다. 3월말 현재 국내은행 본점의 거주자 외화대출은 234억7000만달러(잠정치)로 작년 말 대비 9억3000만달러(4.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화는 12억 달러로 늘었고, 엔화는 2.5억달러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14일 ‘금융시장 동향’ 보고서를 통해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는 이유를 “주택경기가 개선되면서 주택거래가 늘어난 데다 봄 이사철 수요도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5일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하며 “자산시장 회복, 소비심리 개선 등 경기 개선 신호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의 지속여부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이달 초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계부채가 상당히 높은 상태라 총액이 늘어나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 블로그 ‘머니앤드뱅킹’과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가계부채는 금융불안의 원천이 될 것”이라며 “선진국 경제 위기와 달리, 한국에선 가계부문의 디레버리징(부채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은의 금리인하는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세수목표도 당초대로 달성하는 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