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에도 없는 증손회사 지분 보유규제…야당 규제완화 막아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SK․CJ․두산…지주회사의 비명, ‘아몰랑’하는 새정치

'All or Nothing'.

지주회사, 소위 ‘Holding Company’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규제는 'All or Nothing'으로 대변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8조2항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거나 지분을 전부 팔아야 한다. 하지만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모 아니면 도’ 투자지분으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 길은 막혀 있다. 지분 조건을 맞추지 못할 경우, 과징금을 내야 하거나 강제적으로 매각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주회사는 다른 주식회사의 주식을 소유, 지배하는 것을 주 사업활동 목적으로 삼는 주식회사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집단의 지배회사를 뜻하며 CJ, SK를 비롯 두산, 네오위즈 등이 대표적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독일에서는 은행이 지주회사 노릇을 하고 있으며, 스웨덴에서는 금산분리 없이 비금융/금융 가리지 않고 모든 자회사를 거느리는 지주회사 체제가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지주회사가 재벌의 피라미드식 지배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라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주회사의 취지가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회사 등의 운용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가며 투자의 효율성 수익성을 높이는 기업경영의 보편적 수단이라 인정받고 있다.

   
▲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의 투자를 가로막는 공정거래법 8조2항에 대해서 법재개정을 적극 검토한 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경제활성화라는 대의를 위해 법재개정에 공감하여 이에 대하여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에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주회사를 둘러싼 시선의 다름은 각자가 지닌 기업 가치관에 달린 것이지만, 관건은 기업의 경영전략에 자유를 허하느냐의 여부다.

정부는 기업에게 거의 언제나 이래라 저래라 한다. ‘업태’, ‘업종’, ‘지분’, ‘경영 형태’에 대한 칸막이 규제와 각종 벽을 쌓아 놓고 이를 어기면 과징금을 내게 하거나 강제로 매각하게 한다.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에 대한 'All or Nothing' 규제도 마찬가지 사안이다. 해당 규제에 따라 기업들은 검찰에 고발당할 위기에 처하거나 자회사와의 계열 관계를 정리하기도 하며 증손회사의 지분율을 100%로 끌어올려야 한다.

현실의 복잡성을 반영 못하는 '미련하고 못난' 악법

문제는 현실의 복잡성이다. 지분에 대한 'All or Nothing' 규제에 따라 단순하게 흘러갈 수 있다면 기업들이 골머리를 썩히지 않을 것이다. 증손회사가 다수의 주주로 구성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회사인 경우, 규제의 적용을 받는 특정 지주회사가 지분을 팔거나 사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막말로 현실 속에서 제대로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면 처벌받는 형국이다.

투자회사의 복잡한 지분 구조와 계약관계로 인해, 공정거래법의 'All or Nothing' 규제는 어떠한 지주회사도 완벽히 지켜낼 수 없는 악법으로 자리 잡았다. SK의 SK커뮤니케이션즈, 두산건설의 네오트랜스, CJ대한통운의 부두항만 물류업체 등 현재 ‘누구나 지킬 수 없는’ 불법이라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례가 다 그렇다.

작금에 불어 닥친 기업의 투자 저하 난국을 타개하고 경기 진흥을 위해 민과 관이 협력하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의 투자를 가로막는 공정거래법 8조2항에 대해서 법재개정을 적극 검토한 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경제활성화라는 대의를 위해 법재개정에 공감하여 이에 대하여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정 모두 지주회사의 발목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잡고 있는 해당 법조항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주회사의 속사정에 대해 ‘아몰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활성화 보다 경제력 집중을 방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행태는 현실의 복잡성을 고려치 않은 무책임한 처사다.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현실의 복잡성을 반영하지 않는 악법, 지주회사의 자연스런 기업경영 형태를 불법으로 규정짓는 규제악은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큰 벽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투자를 가로막는’ 지주회사 규제에 대한 법안 처리는 정치적인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몽니 때문이다. 현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의무보유 지분율을 50%로 낮추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지만, 간사인 김기식 의원을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법안 처리 자체가 표류하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은 악, 전근대적 이분법 고수하는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지난 4월 국회에서 “공정위가 왜 경제활성화를 고민하느냐. 지주회사가 100% 투자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발언했다고 한다. 이런 행태는 100% 투자를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기업들에 대한 무책임한 처사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보면 유행어 하나가 떠오른다. ‘아몰랑’이라는 유행어가 요새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진실, 사정 등은 나와 상관없고 될대로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남과 나와 다른 이중잣대 등을 꼬집는 유행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주회사의 속사정에 대해 ‘아몰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활성화 보다 경제력 집중을 방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행태는 현실의 복잡성을 고려치 않은 무책임한 처사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전하다. “재벌의 경제력은 악이요, 재벌 해체가 선”이라는 전근대적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 우덜식 386세대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 공정거래법의 'All or Nothing' 규제는 어떠한 지주회사도 완벽히 지켜낼 수 없는 악법으로 자리 잡았다. SK의 SK커뮤니케이션즈, 두산건설의 네오트랜스, CJ대한통운의 부두항만 물류업체 등 현재 ‘누구나 지킬 수 없는’ 불법이라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거나 지분을 전부 팔아야 한다는 기업규제 법조항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법이다.

정부와 새누리당 등 당정은 애가 타고 SK, CJ, 두산 등 여러 지주회사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아몰랑’하고 있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별의별 작태 중의 하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