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버그 음모론’ 보도 후 SNS로 역전파…공영방송 잣대 상실
   
▲ 이원우 기자

예로부터 시절이 수상해지면 닭이 울음을 울지 않고 송충이가 솔잎을 먹지 않는다고 했거늘, 지금이 딱 그 꼴이다. 경찰이 경찰이 아니고 질병이 질병이 아니고, 교육방송이 교육방송이 아니다.

경찰 얘기부터 간단히 해보자.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해양경찰 해체’를 선언한 이후 1년 동안 해경조직은 기묘한 길을 걷고 있다. 한때 경찰이라 불렸던 그들의 조직명은 국민안전처 소속 해양경비안전본부가 됐다. 조직원들의 신분은 여전히 경찰관인데도 조직명에만 경찰이라는 말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 기이한 풍경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됐을까. 진원을 찾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이 세웠던 공(功)이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세력의 커다란 목소리에 청와대가 원칙 없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경찰이지만 경찰이 아닌’ 웃지 못할 모양새라도 부랴부랴 만들어서 비난의 에너지를 잠재우고자 했던 것이다.

청와대에만 화살을 겨눌 이유는 사실 없다. 비슷한 아이러니가 한국 사회엔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크거나 유리한 플랫폼을 장악한 사람들은 진위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얻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진실들이 묵살되건 말건 관계없는 일이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반박을 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요제프 괴벨스의 말 그대로다.

이젠 심지어 공영 교육방송(EBS)마저 진실과 거리가 먼 내용을 ‘교육’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아이들의 질병에 관한 이슈에서 말이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슬픈 이야기다. 교육의 탈을 쓰고 있는 ‘루머’가 진실의 경계를 제멋대로 뒤틀어 거짓의 범위를 확장한 이야기.

KBS에서 독립한 EBS의 작지 않은 영향력

KBS 산하 한국교육개발원 소속으로 출발한 EBS가 독립을 한 것은 1990년. 이때부터 전국의 학생들에게 EBS가 미치고 있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딩동댕 유치원’에서 시작해 초딩들의 학습을 돕는 각종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변곡점이야 교양 수준이겠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EBS의 진짜 위력은 사교육 과열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EBS 교재가 수능과 연계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발휘되기 시작됐다. 이때부터 교육방송의 입지는 가히 절대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존재 그 자체로 ‘정답’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런 EBS는 뉴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EBS 정오뉴스’와 저녁 7시 30분에 방송되는 ‘EBS 뉴스’다. 메인 뉴스라 할 수 있는 저녁뉴스 때에는 국제뉴스 코너 ‘NEWS G’가 운영되고 있다. 2014년 2월부터 시작된 이 코너는 해외의 교육, 건강, 여성 분야의 최신 소식과 이슈를 보도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일반적으로 국제뉴스를 보도하는 방송사들은 각 통신사나 특파원을 활용하는 게 보통이지만 ‘NEWS G’는 색다른 길을 택했다. 세계적인 SNS 미디어들을 활용하는 ‘EBS 소셜 미디어 리포팅’ 방식을 뉴스에 새롭게 적용한 것이다.

SNS가 지구인들의 정보 유통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버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는 게 현재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정보의 경중을 분류하고 진위를 구분해야 한다는 숙제가 안겨진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4월 24일자로 방송된 EBS ‘NEWS G’ 코너는 이들이 채택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 리포팅 방식이 과연 정확한 정보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다소 의문스럽게 만들었다. 세간에 떠도는 괴담(?) 수준의 이야기를 검증 없이 보도해 버렸던 까닭이다.

‘ADHD=만들어진 질병’이라고 보도해 버린 EBS

이날 NEWS G의 주제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 그러니까 ADHD였다. 대개 아동기에 발병하여 만성적인 경과를 밟는 특징을 지니는 이 질병에 대해 EBS는 상당히 전복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즉 ADHD를 질병으로 보지 않는 시각을 소개한 것이다.

우선 EBS는 ADHD 환자 비율이 나라별로 크게 다르다는 사실부터 지적했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 아동들의 9%가 ADHD로 인한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이 비율이 프랑스로 가면 0.5%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의사들이 ADHD의 원인을 아동 개인에서 찾지 않고 ‘아동 주변의 환경과 관계 개선’을 치료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이어졌다.

ADHD 판정에 임의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 NEW G의 다음 내용은 “ADHD엔 충격적인 역사가 있다”는 것으로 연결됐다.

“ADHD라는 질병의 창시자이자, 약물치료법을 강조했던 아이젠버그 박사. 그는 세상을 떠나기 7개월 전인 2009년 3월 양심고백을 합니다. ‘ADHD는 꾸며낸 질병의 전형’이라는 고백이었죠. 제약회사로부터 펀드를 제공받고 ADHD라는 질병을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 하지만 아이젠버그 박사의 양심고백 6년이 흐른 지금도 ADHD 진단을 받는 아이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젠 좀 더 신중하고 관대한 태도로 아이들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 수준의 이야기를 ‘ADHD의 충격적인 역사’로 확언해 버린 EBS의 태도에 대해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정신건강의학과 학습증진센터의 최영 원장이다.

   
▲ 결론적으로 말하면 ADHD와 제약산업 전반에 불만이 많은 여러 사람들이 아이젠버그의 인터뷰를 구미에 맞게 활용했고, 괴담이 생성돼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그 주장을 EBS가 여과 없이 보도한 것이 사건의 정황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EBS 방송화면 캡쳐

그는 방송 이후 보름여가 지난 5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신과 의사를 30년 넘게 해왔지만 그 분(아이젠버그 박사)이 ADHD의 아버지란 말은 금시초문”이라고 단언했다. 애초에 어떤 한 사람이 ‘아버지’로서 병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세간에 떠도는 괴담의 진위여부를 추적하는 스놉스닷컴(snopes.com)은 이 문제에 보다 깊게 파고들었다. 그들이 밝혀낸 사실은 이렇다. 아이젠버그 박사는 ADHD를 만들어낸 적도 없고 ADHD 자체를 ‘꾸며낸 질병’이라고 말한 적도 없다. 다만 “ADHD의 유전적 소인이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한 적은 있다. 그동안 알려진 것에 비해 ‘성장 환경’이 ADHD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EBS를 비롯해 아이젠버그의 ‘양심선언’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SNS 여론은 2009년 아이젠버그가 독일 언론사인 슈피겔과 직접 인터뷰를 했다고 말하지만 스놉스닷컴은 여기에서부터 사실관계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다만 ‘ADHD로 진단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2012년 슈피겔 기사에서 아이젠버그 박사의 견해가 인용됐을 뿐이다.

덧붙여 아이젠버그를 ‘ADHD의 아버지’라고 표현한 필자 외르그 블레흐는 의료산업과 제약회사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책을 펴낸 바 있으며 아이젠버그의 발언을 자신의 취지에 맞게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ADHD가 조작된 질병이라는 주장을 전한 하버드 대학 교수 제롬 케이건의 경우엔 의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ADHD와 제약산업 전반에 불만이 많은 여러 사람들이 아이젠버그의 인터뷰를 구미에 맞게 활용했고, 괴담이 생성돼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그 주장을 EBS가 여과 없이 보도한 것이 사건의 정황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겐 ‘교양’이지만 누군가에겐 ‘생존’

어떤 질병에 대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건 아주 전형적인 수법이다. 놀랍게도 암이나 에이즈, 고혈압과 같은 질병에 대해서도 ‘그런 병은 없으니 제약회사의 상술에 넘어가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런 병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야 ‘다양한 견해’ 중 하나로 치부하면 그만일 것이다. 허나 해당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 이들의 주장은 일생일대의 고민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교양으로 끝날 문제가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별히 ADHD의 경우 많은 부모들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최적의 치료 타이밍을 놓치는 케이스가 많다고 정신과 의사들은 지적한다. 최영 원장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을 전파하는 것은) 실제 고통 받는 환자들의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비윤리적인 범죄행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EBS가 채택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 리포팅’ 방식이라는 것이 세간의 음모론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파하는 수단으로 역이용될 가능성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ADHD에 대한 ‘아이젠버그 음모론’은 EBS의 보도 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EBS가 SNS를 참고하고, SNS는 그런 EBS를 근거로 삼는 기이한 풍경이다. 그 속에서 진위를 파악하고 교정하려는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모든 과실이 100% EBS에 있다고 말할 수야 없겠지만 ‘음모론’과 ‘역사’를 구분하지 않고 보도한 무신경함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태도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SNS에 떠도는 음모론을 지상파로 구경하기 위해서 EBS에 세금을 지불하는 국민은 단 한 명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