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만 있고 콘텐츠는 없어…눈치 저널리즘 아닌 정석 승부 아쉬워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20여 년 전 ‘아프로만’이라는 희한한 회사와 전략이 있었다. 누군가 대형 매장을 새로 차리게 되면 바로 꼭 그 앞에다 같은 가게를 개점한다는 이름 뜻이었다. 그 누군가는 당시 탱크주의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대우전자의 복합 스토어들이었다. 요즘이라면 스타벅스가 도심 네거리, 큰길가에 메가 스토어를 세워 올리듯 대우전자도 냉장고에서 컴퓨터까지 직영 유통하는 규모의 경제에 올인 했었다.

초대형 매머드 개점은 항상 울트라 초대박 마케팅 홍보 광고를 수반했고 대우전자와 같은 대기업 물량공세는 매스 미디어는 기본이고 도우미 동원, 경품 잔치까지 새 매장 동서남북 일대를 흥청망철 달궈 놓기 일쑤였다. 이 때 몰려든 인파들을 홀려 길 건너 앞에다가만 슬그머니 개장한 같은 전자제품 매장이 아프로만 회사의 아프로만 전략에 이요 아프로만 매장이었다. 대우전자가 전국에 100개 매장을 열라치면 이 아프로만도 허겁지겁 60~70개를 따라 오픈하는 진풍경이 한동안 이어졌었던 야사였다. 혹시나 해피엔딩? 역시나 아니었다. 대우전자도 망하고 아프로만도 사라져 버렸다.

이번 5월 하고도 2~4셋째 주에 왕창 집중된 우리나라 언론사들 포럼 행사들을 보면서 그 옛날 소멸된 아프로만 사례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즉답하자면 이벤트 포럼과 포럼 이벤트가 너무 많아 불편했기 때문이다.
언론사만 해도 조선일보 아시아리더스 컨퍼런스(5.19~20일), SBS 서울디지털포럼(5.20~21일), 매경 세계지식포럼 (5.20~21일, 중국 청두), 아시아경제신문 서울아시아금융포럼(5.21일),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콘텐츠포럼(5.27) 등 굵직굵직한 행사들이 몰려 극성수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교육부와 인천광역시 등이 주관한 세계교육포럼(5.19~20일) 같은 공공부문 포럼과 신문업계가 호스트를 한 신문 뉴미디어 엑스포(5.12~15일)까지 더 얹혀 그야말로 양적 팽창 하나로만 한 획을 긋고 있다. 가히 포럼 천지, 포럼 공화국이라고 해도 될 만하다.

하이라이트였던 지난 5월 20일 쯤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여기저기 포럼 행사에 멀티 참석한 뉴스가 하루 이틀 새 신문과 방송 헤드라인을 뒤덮어버렸을 정도였다. 객관적 행사와 일정 보도에 더해 언론사들이 사활을 걸다시피 한 자사 포럼 행사 홍보가 뒤범벅이 된 기현상이고 진풍경이었다. 온 나라 언론 전체가 무슨 캠페인 저널리즘의 화신이 된 양, 앞 다퉈 VIP 모시고 세 과시하며 자존심 추켜세우는 이 광경은 예년에도 있어 왔지만 2015년 올 5월에 와서 뭔가 극단 정점에 달한 듯 보인다.

이처럼 언론사들 외모 관리와 포럼 쟁탈전에 비친 허영과 허세, 과당 출혈 중복 투자와 경쟁이 극에 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내부적으로 미디어 기업들 경영 위기를 포럼과 같은 캠페인 저널리즘, 대형 이벤트를 통해 돌파한다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별도로 있다고 본다. 다름 아닌 언론사 ‘권위 상실 -> 자존심 결여 -> 외부 의탁’ 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연쇄반응이다.

우선 포럼에서 다룬 콘텐츠들 면면을 들여 보자. 한반도 통일과 평화, 리더십, 디지털 트렌드, 호기심, 교육 혁신, 지식, 한류 뉴노멀(new normal), 슈퍼 차이나, 핀테크 등이다. 모두 다 특집기획으로서나 큰 포럼 행사 화두로서 손색이 없는 중요하고도 긴급한 주제들이다. 문제 는 이들 포럼들 문제제기와 논의들이 이벤트 행사장과 홍보성 지면과 전파 밖으로 제대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애다.

세계적인 석학, 권위자, 명사들이 죄다 한국 미디어들이 차려준 멍석에 올라 발언하고 갔지만 정작 우리 독자들, 시청자들은 메시지나 솔루션을 손에 쥐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만큼 알려주고 가르쳐 전달했으면 됐지. 그것도 못 알아듣고 따라하지도 못하면 어떡하나?’며 주최 주관 언론사들이 타박할까봐 미디어 이용자들은 움찔하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UN사무총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15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예를 들어 5월 20일 전후 반기문 총장 북한 개성공단 방문 뉴스가 전해져 관련 주제를 다룬 포럼은 물론 미디어계, 사회 전체 분위기가 고조되었었다. “북한이 공포정치로 국제사회를 경악시켰다”는 막힘도 풀고, “북한이 국제사회와 손잡아야”한다는 촉구도 먹혀들고, “통일 하려면 중국부터 설득해야”한다는 포럼 주장도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포럼이 길을 열고 UN 사무총장 같은 레인 메이커(해결사)가 역사적 한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교류와 소통이 진 일보하는 실행 프로세스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결국 화려했던 포럼 성찬에 비해 아쉬운 여운만 많이 남는 불발탄으로 남게 되었다. 너무 많은 이벤트 포럼들의 성과와 기여,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미디어들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회의가 자라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반총장 방북 무산 뉴스의 경우 뚜렷하지는 않아도 포럼 과잉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포럼들에 참석하느라 선언과 인터뷰 응대를 먼저 많이 해야 했었던 상황이었다.

만일 ‘선행동, 후포럼’이었다면 어땠을까? 뉴스도 포럼도 더욱 더 빛이 나는 담론과 실천의 성찬이 되었을 터이다. 조용히 개성공단에 먼저 다녀온 연후에 포럼들에 참가해 실상을 말하고 어렵사리 소통했던 콘텐츠 보따리를 풀어놓는 순으로 진행되는 행운의 시나리오는 왜 2015년 5월 서울 포럼 강조 주간에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언론사들 포럼 의욕 과잉을 누가 좀 조정해주면 좋겠다. 나라 일은 국무조정을 하고 기업들도 업무조정, 연구조정을 하는데 한국신문협회 같은 미디어계 단체들은 왜 그렇게 못하는지 싶다.

포럼 일정부터 분산하고 주제에 맞게끔 택일하고 변경해야 할 일이다. 한류와 문화를 다룬다면 문화의 달 10월이 적당하고 통일과 분단을 말한다면 광복절 시기가 좋지 않을까? 세계적인 다보스포럼이나 가전쇼(CES) 모바일월드콩그레서(MWC)도 스스로 알아서 연초 1~3월 사이에 분산해서 하는데 한국의 신문 방송사들은 무슨 오기로 붙어 포럼 대격돌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그 흔한 국제영화제나 도서전만 보아도 희소가치와 권위를 위해 서로 겹치지 않는 배려와 분할, 그리고 대표성과 상도의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좋은 취지와 세련되고 격조 높은 메시지와 콘텐츠가 정말 풍부하게 쏟아져 나왔음에도 이번 이달 5월의 이벤트 포럼 과잉은 결국 반성문 감이었다고 본다. 과거 대우전자를 격침시키고 자멸했던 아프로만 전략과 아프라만 회사의 실패를 우리 언론사들이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서로 뻔히 경쟁하면서도 남을 따라 하려는 객기라면 남의 개업 축하 잔치 무드에 묻어 갈려다 망해버린 얌체 아프로만의 요행 심리와 다를 바 없다.

우리네 언론사들이 포럼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들은 과감하게 줄여나가고 연중기획과 같은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정공법을 택하길 바란다. 한 번 크게 축포를 쏴서 감상하는 화려함은 없겠지만 내밀하고도 집요하고 끈질기게 포럼 주제를 파고드는 정석 저널리즘 활동이라야 힘 있는 매체 콘텐츠 실력 있는 기자, PD를 길러내 장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기를 좇고 정치와 경제 권력자 눈치를 보는 대중 저널리즘을 극복하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나아가는 시리어스 저널리즘(serious journalism) 생존 전략이다.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진짜 콘텐츠를 선택하는 안티 포럼, 포럼 프리가 더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