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제고·책임경영 도입 필요…민간경제 침해 사업 조정 필요

   
▲ 박경귀 행정자치부 지방공기업혁신단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1. 공기업 경영은 예술이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행한 제품이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 유사한 제품이 시장에 나온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처럼 움직이는 세상이 되었다. 지식과 정보, 자본과 상품이 국경을 넘나든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심리적 거리도 좁아졌고, 웹의 개발로 사이버상의 동시성이 확보되면서 아예 국경의 개념이 무너진다. 자본주의의 성숙과 문명의 발전이 가져온 현상들이다. 이런 환경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가 간은 물론 국가 내 경제활동의 주체인 정부와 기업, 개인 사이의 경쟁을 촉진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수요자와 소비자에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구분할 실익도 점점 작아져 간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어느 영역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나에게 더 좋은 서비스, 더 나은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느냐가 관심사가 된다.

그렇다면 공급자 역시 이제 공공서비스와 민간서비스라는 전통적인 역할 구분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든지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고객의 니즈에 가장 잘 부응하는 조직만이 환영받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공공부문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기간산업의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공공부문은 철도, 도로, 항만, 공원, 가스, 상하수도 등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부문에 대한 서비스를 독점해왔다. 이 영역은 민간 기업이 오로지 시장의 수요에 맞춰 공급하기 어려운 공공재의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공공재는 일단 재화나 서비스가 제공되면 특정한 사람에게 그 서비스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도록 제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느 도시에서 도로 이용의 편익을 위해 가로등을 설치했다면, 그 도시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이 공공재가 갖는 비배제성(non-exclusion)이다.

또 어느 도시가 공원을 조성하였다면, 이용자 간에 서로 그 수혜를 먼저 더 많이 누리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공원 이용이 열려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특정 물품을 구매할 때처럼 수요자 간에 경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비경합성(non-rivalry) 특성 때문에 그렇다.

공공재가 갖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공공재를 공급하는 주체는,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재화와 서비스의 수혜를 누리고자 하는 무임 승차자(free rider)를 막을 수가 없다. 공짜 이용자가 많을수록 공공 서비스의 관리 비용이 추가로 소요됨에도 그렇다.

또 시장에서는 제한된 상품이 수요자 간에 경쟁을 불러일으킬 때, 공급자가 가격과 상품의 질을 차별화해서 공급할 수 있다. 반면 공공서비스는 재화와 서비스의 물량과 가격을 마음대로 조절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수요자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공공재가 갖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는 공기업 경영의 근본적인 한계로 귀결된다. 이는 민간 기업에 비해 공기업 경영의 난이도를 더 높이는 요인이다. 민간 기업은 소비자가 시장의 원리에 따라 행동할 때 공급자 역시 시장의 수요에 따라 부응하면 된다. 반면 공기업은 시장의 원리는 물론, 공공재가 갖는 비배제성, 비경합성과 같은 비시장적 특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행동해야만 한다.

그만큼 공기업 임직원들의 경영활동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공기업 경영은 예술이다.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한 절묘한 경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정재근 행정자치부차관이 지난 3월 3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공기업 종합혁신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 공기업의 효율화, 불가능한가?

국민 편익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하지만 유사한 서비스가 경쟁적으로 공급되고 있는 시장과 경쟁하면서 공공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관료조직보다 더 경영에 친화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공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다.

공기업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준정부조직이다. 따라서 국가의 각종 법과 제도의 적용을 받다보니 민간 기업 수준의 경영의 자율성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관료 조직의 특성과 민간 기업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공기업은 숙명적으로 경영의 비효율성을 안게 된다. 소비자와 주주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민간 기업에 비해, 공기업은 자신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로부터 받는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공기업 경영을 나태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공기업은 민간 기업에 비해 대응성(responsiveness)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이런 여건은 여러 측면에서 공기업의 비효율적 요소를 축적시킨다. 따라서 공기업 경영의 성패는 이러한 비효율적 요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거 또는 경감시키느냐에 달려있다.

경영은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산출을 거둘 수 있을 때 효율성(efficiency)을 극대화할 수 있다. 공기업이 효율성을 높이려면 공공 재화와 서비스를 만드는 데 투입하는 인력과 예산, 시설 장비를 시장의 수요에 맞게 유연하게 변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기업은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적은 인력을 투입하고 높은 서비스 요금을 받으면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공공서비스에 대비하여 공기업의 투입 요소는 매우 비탄력적이다. 인력과 예산을 상황에 따라 조정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민간 기업에 비해 시장 수요에 따라 투입을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민의 기초 생활 편익에 해당하는 공공서비스 요금을 인상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공기업의 효율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민간기업과 경쟁적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부문은 아예 없는 것일까?

   
▲ 전남 나주시 광주ㆍ전남공동혁신도시에 2014년 10월14일 문을 연 한국농어촌공사 전경. 신청사는 부지 11만5466㎡, 건축 연면적 4만3370㎡, 지하 1층·지상 18층 규모로 730여명이 근무하게 된다. /사진=연합뉴스
3. 공기업 혁신의 출발, 나는 누구인가?

공기업의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고객들의 경영 효율화에 대한 요구는 줄어들지 않는다. 언론에서 ‘방만 경영’이나, ‘적자 경영에 성과급 잔치’ 운운하며 공기업 경영의 비효율성을 질타할 때면 가뜩이나 힘든 경영환경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공기업 임직원들은 힘이 빠진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공기업의 한계와 경영의 어려움을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하는 국민들이 야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자. 국민들은 왜 우리에게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으라는 힘겨운 요구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 꼭 부응해야만 하는 것일까? 민간 기업은 주주와 소비자의 요구와 선호에 부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공기업의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여서 이들의 요구와 선호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고객의 다양한 선호 파악에 점점 둔감해지게 된다는 점이다.

공기업의 주주는 국민,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이다. 공기업은 바로 국가와 지자체의 공무를 위탁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민과 주민들은 공기업 경영의 성과를 보고받고 감독할 권리가 있다. 또 공기업 임직원은 이러한 요구에 충실하게 응해야 할 책무가 있다.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여기서 나온다. 공기업의 효율적 경영은 공공재 생산을 위탁받은 대리인인 공기업의 신성한 책무이다. 대리인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넘어 법적 책임(accountability)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공기업 혁신은 공기업 임직원들의 명확한 자기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공기업 임직원은 ‘갑’이 아니라 ‘을’이다. 주인인 국민과 주민에게 최소의 혈세로 최대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소명을 받은 대리인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이 ‘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임직원들에게는 경영성과와 경영혁신에 대한 국민들의 질책과 주문이 늘 거북하고 불필요한 요구로 치부될 수 있다.

공기업 혁신의 출발은 공기업 임직원들이 스스로 ‘을’임을 자각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2014년 9월19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공기업개혁분과 주최로 열린 '공기업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4. 공기업 혁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14년 12월에 행정자치부 지방공기업혁신단이 출범했다. 공기업 분야에 전문지식과 식견을 갖춘 학계 인사 9명으로 혁신단이 구성되었고, 부담스럽게도 필자가 단장을 맡았다. 평소에 공기업 분야에서 연구 및 자문 활동을 꾸준히 해온 전문가들이어서 나름대로 혁신 복안들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방공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총체적인 혁신 방안을 도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업이었다.

먼저 기존의 선입견이나 개인적 복안들을 모두 내려놓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양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지방공기업과 지자체의 의견도 충분히 들었다. 다만 공기업의 유형에 따라,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이나 여러 가지 특수한 사정에 따라 혁신 방향이나 내용에 대한 요구나 수용도가 다른 부분은 분명 있었다. 그런 부분들은 공기업 육성 정책의 장기적 관점과 국가공기업과 지방공기업 정책 간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일정한 범위 내에서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공기업 혁신은 그 대상 범위가 매우 넓다. 따라서 지난 3월말에 발표한 혁신방안은 파급효과가 가장 크고 시급하게 추진해야 될 과제로 우선 선별된 것들이다. ‘퀵윈(Quick-Win)’과제인 셈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혁신과제의 도출은 앞으로 남은 과제이다.

이번 혁신방안을 도출되는 과정에서 우선 지방공기업 현황에 관련된 각종 데이터를 확인하고 현지답사를 하는 등 공기업 경영 실태와 누적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혁신위원들은 분담 받은 분야의 과제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과 대안을 발표하고 전체 위원들과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벌여 혁신 방안의 타당성과 현실가능성을 검증했다. 그 과정에서 혁신 방향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의견이 엇갈려 격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집단의 지혜로 슬기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이번 혁신방안 도출과정에서 토의되었던 혁신과제의 지향점과 공기업들이 혁신방안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유념해 주었으면 하는 점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혁신방안에 담긴 철학을 공유하는 일은 혁신과제의 당위성에 대한 수용은 물론, 혁신 동력을 키우는 데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공기업 경영 철학을 정립하고 핵심가치를 늘 공유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은 태생적으로 공공조직임과 동시에 기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서로 상충되는 측면이 있는 가치이지만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려 노력해야만 한다. 여기에 국민과 주민에게 부응해야만 하는 공기업의 특성상 경영 현황과 경영성과를 성실하게 공개하는 ‘투명성’의 가치도 추가되어야 한다. 이번 혁신방안에는 이와 같은 3가지 핵심가치가 투영되었다.

둘째, 부채 감축을 위한 구조와 기능의 과감한 조정이 요구된다.

공기업이 주민복리 증진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면서 이에 필요한 재원을 자체 수익이나 지자체의 보전 재원으로 충당하게 된다. 따라서 무리한 사업 전개와 비효율적인 조직 구조를 효율적으로 재조정하여 공기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부채를 감축하도록 힘써야 한다.

물론 도시개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되는 공사의 경우, 일률적인 부채 감축 목표가 대규모 지역개발 사업의 추진을 제약하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공기업의 유형이나 채무상환 능력,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을 감안하여 각각 다른 부채 감축 목표의 설정이 가능하지 않는가 하는 의견과 건의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각 공기업들이 많은 개발 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였고, 부동산 경기 침체기가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그 후유증이 매우 컸다. 따라서 당분간 공기업 정상화의 첫 번째 요건이 되는 부채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공동보조가 필요한 것 같다.

셋째, 민간경제를 침해하는 사업의 철수 및 조정이 절실하다.

국가경제 측면에서 볼 때, 민간기업과 공기업은 상호 보완 기능을 수행해야만 효율적이다. 공기업은 민간시장에서 시장 기제로 잘 공급되지 않는 공공재의 생산과 공급을 맡는 게 고유한 역할이다. 이른바 ‘시장실패(market failure)’를 보완하는 게 공기업의 소임인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공기업이 수익성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민간시장을 통해 잘 공급되는 서비스까지 무리하게 공기업이 진출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골프 연습장이나 스크린 골프장 운영, 학원 임대 사업의 경우 과연 공기업의 사업으로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사업은 시장 원리에 따라 민간 기업이 공급하도록 위임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위축시키는 공기업의 사업들은 과감히 철수하는 게 바람직하다.

공기업이 우월한 위치에서 시장 영역을 침해하면, 경제적 비효율을 낳을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기업이 다양한 수익 사업을 발굴할 때에도 공공수요를 충족하면서 지역 개발효과도 커서 공익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혁신 방안에서 공기업 사업의 시장성을 테스트하는 제도를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넷째, 공기업의 설립 및 신규 사업 추진의 타당성을 철저히 검토하여야 한다.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주민들의 욕구도 다원화되고 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서비스 제공기관이 설립되거나 기구와 인력이 증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는 공공서비스 수요를 감당하는 방안은 여럿이 있을 수 있다. 행정기구의 효율적 조정이나, 민간 위탁 방식도 가능하다. 또는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여 기존 서비스의 내용과 물량을 변화시켜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지자체들이 다양하고 복잡한 방안을 고민하기보다 손쉽게 공기업을 설립하고자 하는 유혹에 더 끌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때로 위인설관(爲人設官)식의 정치성이 개입되고 있다는 의혹이 일기도 한다. 이번에 공기업 설립 요건을 강화한 취지도 이런 무리한 공기업의 설립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대규모 지역개발 사업이나 다양한 신규 사업들이 면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착수되는 경향도 우려할 만하다. 현재 사업 시행주체가 실시하는 사전 타당성 검토는 형식화된 측면이 있다. 발주처인 지자체나 공기업의 의도에 맞춘 검토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이 공약 사업으로 내건 사업을 공기업으로 전가하여 추진하는 사례도 공기업 경영 부실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예비사업을 철저하게 경영적 관점에서 분석한 후 추진 사업으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타당성 검토가 생략된 채 공약사업으로 공표된 사업을 무리하게 공기업에게 떠맡기는 경우가 문제다.

이를 방지하게 위해 사업타당성 검토를 객관적인 전문 조사기관에서 시행하도록 하고, 사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모든 주체들, 즉 지자체장과 계선, 공기업의 임직원을 명기하여 주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사후 사업추진의 공과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공기업의 생산성 목표관리가 절실하다.

혁신 방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혁신위원 전체회의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었던 내용을 한 가지만 소개한다. 비용 개념에 입각한 생산성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각 공기업이 이를 자체 혁신과제로 선정하여 추진해 주기를 권고한다.

공기업이 민간 기업에 비해 가장 뒤떨어진 부분은 생산성(Productivity)이다. 공기업의 서비스가 대부분 독점인 경우가 많아 민간기업의 생산성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관 전체 차원이 아닌 세부 서비스로 구분해 보면 공기업의 특정 서비스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기업이 있는 영역도 적지 않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사업성과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쉬운 예로 지하철 운송 서비스의 경우에도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비교가 가능하다. 또한 주택 공급 서비스의 경우에도 사업의 단계별로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세부 서비스가 많다.

문제는 공기업이 특수성만 강조하면서 민간 기업과 비교하는 것을 꺼리는 데 있다. ‘1km당 수송원가’, ‘1km당 인건비’, ‘1인당 당기순이익’, ‘1㎡당 수선유지비’, ‘주차 1면당 관리비’, ‘수돗물 1톤당 생산원가’ 등 각 공기업의 사업에 맞는 다양한 생산성 지표의 설정이 가능하다. 사실 경영평가에서 많은 평가지표를 통해 경영실태를 파악하는 것보다 이러한 사업의 대표적인 결과지표 몇 개만 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다.

물론 유사한 서비스라고 해서 공기업이 민간기업과 동일한 목표치를 설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관의 역사와 사업 구조, 그리고 공공적 특성을 고려하여 관리가능한 적정한 목표치를 설정하면 될 것이다. 부담을 가질 필요 없이 당해 기관의 실정에 맞는 생산성 목표를 도출하면 된다. 목표치가 어떠하든 생산성 향상을 견인하는 지표를 설정하는 기관과 그렇지 않은 기관은 최종적인 경영성과에서 큰 차이가 날 것임에 틀림없다.

생산성 지표 설정에 따른 목표 관리를 할 경우 생산성 제고를 위한 경영 전반의 개선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투입 요소인 인력과 예산, 기구의 효율화를 추진하게 된다. 또한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의 향상과 새로운 수익원의 발굴 노력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모두가 공기업 혁신의 주체가 되자.

공기업 혁신은 공기업만의 과업은 아니다. 지방공기업 경영을 뒷받침하는 행정자치부의 공기업 정책부터 혁신이 시작되어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조정 역할에 머물고, 지방자치단체의 폭넓은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 지방자치에 걸맞은 코디네이터와 협력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지방공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는 산하 공기업과 함께 이번 혁신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직접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방공기업의 자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지자체의 역할이 매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방공기업이 노정하는 경영상의 여러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지자체의 무리한 사업 추진이나, 불필요한 통제, 그리고 불충분한 재정 지원에서 초래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따라서 지자체에서는 공기업이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성을 갖춘 우수 인재를 공기업 임원으로 등용하고, 임직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주어야 한다. 아울러 공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높여 성과중심의 책임경영 체제가 정착하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공기업 혁신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이번에 마련한 혁신 방안 역시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숱한 난관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공기업 임직원들이 소명감을 새롭게 인식하고 과감하게 도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지방공기업 가운데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주민의 복리 증진에 기여하고 수익성도 올리는, 즉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는 탁월한 경영 성과를 보이는 곳도 많다. 올해가 모든 지방공기업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기관으로 변신하는 힘찬 출발점이 되길 희망한다. /박경귀 행정자치부 지방공기업혁신단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