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치닫던 예산안, 김진표 의장 중재에 합의점 찾아
극적 타협 이뤘지만 '늦장·밀실' 재발방지 과제로 남아
"제도화 해야"…반복되는 예산 악습에 '개헌' 필요성 부각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는 김진표 의장의 ‘개헌론’이 부상하고 있다. 2023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양당제의 고질적 문제가 드러나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년에도 현행대로 예산안 심의를 진행할 경우 올해 같은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재발 방지를 위한 개헌에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여곡절 끝에 고비 넘긴 예산안…내년에도 되풀이?

638조 7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지난 23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법정 처리 시한(2일)과 정기국회(9일)를 넘긴 탓에 국회선진화법 도입 후 최장기간 늦장 예산이 됐다. 

   
▲ 새해 예산안 처리와 관련 김진표 국회의장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준예산’ 또는 ‘야당 단독안’ 채택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에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던 내년도 예산안은 김진표 의장이 구원투수로 나선 끝에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김 의장은 취임 당시 “조정과 중재에 능숙한 의장이 되겠다”고 밝힌 만큼 예산안 협상에서 여야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역량을 총동원한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이 경제 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예산안이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민생 경제의 어려움으로 직결될 것이란 우려에 중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김 의장은 여야가 간극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법인세와 부수법안 등 최대 쟁점에 직접 중재안을 마련하면서까지 여야 원내대표를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냈다. 또 대통령실과 정부의 완고한 입장도 특유의 설득력을 발휘해 실타래를 풀었다.

김 의장은 지난 5일 국가조찬기도회를 계기로 윤 대통령과 직접 만나 준예산 사태의 위험성을 피력하고,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비서실장 등 정부 관계자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해 여야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의장의 중재 덕에 예산안 사태가 큰 고비를 넘겼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근심이 나오고 있다. 이번 예산안 합의가 근본적 해결보다 김 의장의 역량에 기반 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와 같은 예산안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선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립의 산물 깜깜이·늦장 예산 그만…이젠 ‘제도화’ 해야 

예산안 사태 후 정치권에선 개헌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예산안이 21일간 표류하며 정치의 비효율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 탓이다. 특히 김 의장이 당리당락을 떠나 정치 본연의 역할을 위해 해결사를 자처했던 모습에 그가 추진하고 있는 ‘개헌’이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매년 반복되는 예산안 사태를 근절하기 위해선 심의 과정을 개선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국회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9월부터 11월까지 심의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중 10월은 국정감사 기간과 중첩돼 예산안 심의에 전념할 수 있는 기간은 단 한 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 결국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가 결정적인 한 방이 됐다. 국회는 지난 24일 본회의에서 내년 예산안을 천신만고 끝에 가결시켰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심의 기간의 30%만 활용할 수밖에 없어 충분한 심의가 이뤄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국회선진화법 무용과 깜깜이 예산과 같은 문제로 직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회는 지난 2014년 국회선진화법 자동 부의제를 도입한 후 이를 지켜온 적이 단 2회에 불과하다. 올해의 경우 법정 처리 시한은 물론 정기국회마저 넘기며 국회선진화법을 더욱 무용하게 만들고 있다.

거대 양당 중심 밀실합의도 반복됐다. 기간 내 예산심의를 끝내지 못한 탓에 여야는 매번 소소위를 통해 합의에 나서는 중이다. 소소위는 조속한 협상을 위해 양당 원내대표 및 예결특위 간사 등 소수 인원만이 참여하는 협의체다.

이는 국회법에 근거가 없는 관행에 따른 것으로 밀실에서 심의가 진행되는 탓에 이른바 ‘짬짬이’ 예산이란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결특위 소속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예산안 표결 반대토론에서 “국회 예결특위 위원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대다수 의원들 모두가 예산 심사 상황을 알 수 없었다”며 “잘못된 법안을 가지고 만들어 진 예산이 제대로 된 예산일 수 없다”고 반복되는 예산안 사태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김진표 의장이 추진 중인 개헌안을 재조명하고 있다. 김 의장의 개헌안은 예산 결산시점을 앞당겨 심의 기간 중첩 문제를 해소하고, 정부가 예산 편성 과정부터 국회의 의견을 반영토록 해 당초부터 이견을 최소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 같은 개헌이 추진될 경우 국회가 예산 심의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돼 늦장·밀실 예산이란 악습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특히 내년에는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있어 올해보다 대립이 더 극렬하게 발생될 가능성이 높아 예산안 사태 방지를 위한 개헌의 필요성이 더욱 주목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산안 심의 과정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에 이미 여야가 상당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면서 “(개헌으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향후 예산안 사태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