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안 발표 앞둔 마지막 여론수렴 공개토론회에서 피해자측 극심 반발
“일본 책임 면책해주는 것”…“일본측 기여·사과 불가능한 것 다 알아”
“‘2+2’ 책임주체 특정 짓는 방안보다 후퇴”…“채권-채무관계 해소 우선”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정부가 강제징용 배상판결 해결책과 관련해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을 통한 판결금 지급을 우선 추진하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외교부와 정진석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 공개토론회에서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발제를 통해 지난 4차례 개최된 민관협의회 결과 구체적인 해법 검토 동향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또 서 국장을 비롯한 여러 참석자들이 일본 기업의 기금 참여 및 사과에 대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혀 피해자측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실제로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피해자측은 이날 공개토론회에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토론회에 참석한 피해자측은 서 국장의 발제 내용이 일본의 책임을 면책해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1.12./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먼저 서민정 아태국장은 발제에서 “우선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발생한 채권-채무관계 해소 필요성이 민관협에서 제기됐다”며 “확정판결 중 일부의 경우 일본기업이 한국 내 경제활동 및 자산을 철수해서 압류할 자산이 없는 까닭에 ‘현금화 조치’로 판결금 충당 가능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일단 법적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민관협에서 구체적인 법리로서 ‘제3자 대위변제’ ‘중첩적 채무인수’ 방안 등을 논의했다. 검토 결과 핵심은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 우선 판결금을 받으셔도 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했다”며 “원고인 피해자 및 유가족분들께 직접 수령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측의 판결금에 대한 기여 및 사과를 포함한 호응 조치에 대해서는 “사실상 어려운 점을 민관협 참석자들을 비롯해 피해자측에서도 인지하고 계신 것으로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서 국장의 발제 내용은 재단이 기부금을 받아 일본기업 대신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우선 지급한다는 것으로, 일본측의 참여 및 사과 여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서 국장은 “확정판결 피고기업이 전체 강제징용 문제를 대표해 사과하기는 불가능하고, 그간 일본 내각이 여러차례 과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지만 번복되면서 우리국민과 진정한 화해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민했다”며 “이런 점에서 일본이 이미 표명한 과거에 대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히 유지·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1.12./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와 관련해 이날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도 “최선의 방안은 일본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기업이 배상하는 방안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일본을 상대로 오랜시간 싸워온 피해자들이 더 잘 알고 계셨다”고 말했다.

심 이사장은 다만 “일본도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어떤 방식이든 어떤 수준으로든 한국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우선 포스코를 비롯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자금 수혜기업이 기부금을 낼 것이지만 앞으로 ‘사회적 공헌’이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자발적인 참여 유도가 피해자와 기업이 서로 윈윈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토론회 참석자들 가운데 서 국장의 발제 내용이 민관협에서 모아진 중지와 다르다는 이의도 제기됐다.

토론에 나선 길윤형 한겨레신문 국제부장은 “민관협에서는 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하되 일본기업의 사죄와 기금 참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면서 “이 사건은 우리나라 정체성과 관련 있는 문제이고, 정부가 서둘러서 마무리하려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재단 모금에 일본기업이 참여 안할 경우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가 나올 것이고, 이들이 부분적으로나마 대법원에서 집행 중인 현금화 조치 절차를 밟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본다”면서 “이럴 경우 일본기업이 입은 손실을 재단이 사후에 보전 조치할 수 있다. 국내 사법절차를 이행하고, 외교적 조치가 뒤따르는 플랜B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뒤 이동하며 겨레하나 회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2023.1.12./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정부가 같은 해 7월 2차례, 8월과 9월 각 1차례씩 모두 4차례에 걸쳐 민관협의회를 연데 이어 이날 공개토론회까지 개최하는 등 징용배상 문제 해결에 서둘러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이날 공개토론회에서 “한일관계 풀기가 어렵고 인기도 없고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양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우리가 결단력 있는 한걸음을 내디디면 일본도 이에 호응해 발맞춰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측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국민의 정체성과 관련된 이 문제를 정부가 서둘러서 매듭지으려 하는 것은 현금화 조치를 막기 위해 급급했기 때문이고, 결국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처럼 졸속으로 추진돼 불완전한 합의로 남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날 공개토론회에서도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한국이 먼저 (기금에)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일본의 책임을 면책해주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 당시 피해자들의 대리인이었던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제3자 채무인수 말이 나오는데 왜곡된 프레임”이라며 “과거 방안에선 ‘2+2’ 등 한국과 일본 기업이 모두 참석하는 방식의 용어를 많이 썼다. 이것이 책임의 주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12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야당 의원들이 공동주최한 '윤석열 정부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반대!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12./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임 변호사는 이어 “지금 정부의 안은 '2+0'이다. 재단이 주체가 되어 한국기업의 돈으로 일본기업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측의 성의 있는 호응조치가 무엇인지 정부는 특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토론회는 정부의 해결책 발표를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으로 이뤄지는 여론수렴 절차로 알려졌으며, 따라서 서 국장의 발제는 정부 해결책의 골자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오늘 서 국장의 발제는 그간 민관협의회뿐 아니라 한일 협의 경과에 대해 설명드린 것으로, 정부의 최종안을 뜻하지 않는다”면서 “오늘 제기된 피해자측을 비롯한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한일 간 협의를 더욱 가속화해서 합리적인 해결안이 조속히 마련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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