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해법 방향, 국내 청구권협정 수혜기업 기금으로 법적 해결부터
일본언론 "재단의 구상권 포기 때 일본기업 자율적 기부 용인 가능"
사과 대신 '담화 계승' 수준 예상…피해자측 "반대 공론화 작업 시작"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판결 해결책 발표를 앞두고 개최한 공개토론회에서 일본기업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기금으로 피해자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향을 공식화했다. 

외교부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정부 해결책이 제시됐으며, 이날 토론회는 피해자들의 고성과 항의 속에서 마무리됐다. 피해자측은 즉각 설연휴 이후 정부안 반대 공론화 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혀 진통이 예상된다. 

토론회에서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지난 민관협의회 등을 통해 논의된 해법 검토 결과라면서 “핵심은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 우선 판결금을 받으셔도 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발생한 채권-채무관계 해소를 위해 구체적인 법리로서 제3자 대위변제, 중첩적 채무인수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재단을 통해 모아진 기금으로 피해자들에게 보상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관건은 일본 전범기업 등의 참여 및 사과 여부인데 정부는 이날 일본측의 판결금 기여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일본정부의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협정을 통해 배상이 모두 끝났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모양새였다. 

이 때문에 “일본의 책임을 완벽하게 면책해주는 요식행위”라는 피해자측 토론자의 비판이 터져나왔다. 방청석에 앉은 피해자 유족들 사이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매국노다” 등 거센 반발이 계속됐고, 충돌로 이어질 듯한 아슬아슬한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토론회는 피해자들의 고성 속에 묻힌 사회자의 마무리 발언으로 끝이 났다. 

토론회에서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수혜기업인 포스코 등의 기부를 받아 오로지 유족들을 위해 쓰겠다”면서 “향후 전체 피해자를 포괄하는 해결책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심 이사장은 “포스코가 40억원을 내도록 되어 있다”고 했는데, 현재 기금출연 대상 기업은 한국전력, 코레일, 외환은행, KT&G가 꼽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한국이 먼저 (기금을)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일본의 책임을 면책해주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 당시 피해자들의 대리인이었던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도 “제3자 채무인수 말이 나오는데 왜곡된 프레임이다. 과거 방안에선 ‘2+2’ 등 한국과 일본 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의 용어를 많이 썼다. 이것이 책임의 주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었다”며 현재 정부안이 이전에 검토되던 ‘문희상 국회의장 법안’에 비해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1.12./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한국에서 공개토론회가 있던 날 교도통신은 “배상금 반환을 일본기업에 요구하는 구상권을 포기한다면 일본기업이 재단에 기부하는 것을 용인하는 방안이 일본정부 내에서 대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재단의 구상권 포기를 말하는 것으로, 총리관저가 한일 청구권협정 원칙만 유지된다면 일본기업의 자율적 기부를 용인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는 앞서 정부가 해결 방안으로 밝힌 ‘제3자 대위변제’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도 물리라는 주장으로 보인다. 중첩적 채무인수란, 가령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험회사가 피해자에게 먼저 배상하고 추후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이 때 가해자 채무는 남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기업의 기금 참여를 위해 ‘구상권 포기’라는 또 하나의 갈등 요소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토론회에서 “정부가 굴욕적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최선보다는 가능한 차선을 택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언론이 말한 ‘재단의 구상권 포기’ 요구는 여전히 불법적 식민지배라는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배제된 것이어서 피해자들의 지속된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의 해결책인 병존적 채무인수는 재단이 배상하기 위해 일본기업과 채무인수약정을 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일본측이 채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립될 수 없다는 지적과 함께 실제로 약정 체결 때 일본기업이 구상권 포기 요구에 나설 수 있다. 여기에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강제징용이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기업이 재단에 기금을 낼 경우 ‘배임’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와 있다. 

이처럼 ‘제3자 변제’도 실행까지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징용 해법의 진짜 핵심인 ‘일본측의 사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징용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정어린 사과’인 것으로 나타나 있으므로 일본측의 행위에 따라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의 사과 대신 기존에 일본정부가 발표했던 담화를 계승한다고 언급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토론회에서 서 국장은 “일본 내각이 그동안 여러차례 사죄와 반성을 표했으나 여러번 번복되면서 우리국민이 이를 신뢰하고 진정한 화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민했다”며 “이런 점에서 일본이 이미 표명한 과거에 대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히 유지·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밝혀왔다. 따라서 우리정부의 강제징용 해결책 발표 이후 예상되는 일본정부의 입장문에 과연 일본측의 사과가 담길지 또, 일본은 사과 대신 어떤 특정 담화를 언급할지 주목된다. 

정부는 100% 만족할 해결책은 없으므로 최종안 발표 이후에도 피해자측과 소통하겠다는 입장이다. 피해자측은 설연휴 이후 본격적으로 정부안 반대 공론화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61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행동은 “어떻게 해야 역사 정의에 맞고 법치주의에 맞는 강제동원 문제 해결책인지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의 일부 의원들도 정부안 철회를 요구, 정치권에서도 쟁점화되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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