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삼성이 경영권 승계 목적을 위한 그룹 내 사업구조 재편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계획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미국계 헤지펀드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계획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주당 6만3500원에 장내 매수했다고 4일 공시했다. 총 매입금액은 7065억원에 달한다. 매입목적은 ‘경영 참가’다.

이 회사는 별도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1977년 설립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 두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전체 운용 자산은 260억 달러(약 29조원)에 달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안을 '불공정하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은 합병 계획에 뚜렷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제일모직과 달리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이 19%대에 그치는 상황이다. 3일 기준으로 외국인 지분은 32.11%에 달한다. 국민연금도 9.79%의 지분을 들고 있다.

따라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외국인·기관 주주들이 1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합병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 이는 삼성물산 보통주 지분 약 17%에 해당하는 규모다.
삼성은 지난해 11월에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계획이 주식매수청구권의 대량 행사 때문에 무산된 경험이 있다.

다만 합병 계획이 좌초했을 때 주가 측면에서 반대한 주주들이 볼 수 있는 이익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합병 반대 세력의 결집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두 종목의 주가 추이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보다 높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는 각각 15만6493원, 5만7234원이다. 3일 기준 종가로 두 종목의 주가는 각각 18만2000원, 6만3000원으로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보다 높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주주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선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삼성 측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지분을 들고 있어 합병이 무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삼성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합병비율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엘리엇 매니지먼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식매수청구권 외에 합병 주주총회에서 우호지분을 확대해야 합병을 무산시킬 수 있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