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67)- 행복은 자유이고, 자유는 용기이다
플라톤(기원전 427~347)의 <메넥세노스>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용사를 어떻게 추도하고 예우하는가를 보면 그 국가의 지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정권의 변화에 따라 전몰용사를 홀대하기도 하고, 때론 나름의 예우를 갖추어 받들기도 했다. ​

고대 아테네는 전몰용사를 어떻게 대했을까? 아테네인들은 전몰용사에 대한 국가적 추도와 예우가 남달랐다. 그들은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시민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 명예를 선양하는 일을 매우 중시했다. 전몰용사의 유가족의 살림을 돌보고 고아들의 교육도 국가가 끝까지 책임졌다. ​

당시의 이런 시대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두 개가 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플라톤의 <메넥세노스>가 바로 그것이다. 플라톤의 저작은 거의 대화체 또는 희극 양식이다. 추도 연설 방식으로 기술된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위 두 작품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메넥세노스>에서 행해지는 소크라테스의 전몰자에 대한 추도 연설은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담겨있는 등 여러 가지 점에서 대척점에 있다는 연구자들의 주장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

물론 연설 기술의 허구성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연설을 기피하지 않고, 연설 기술에 속하는 추도 연설을 했다는 점에서 과연 플라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하지만 페리클레스의 정치 스타일에 반감과 갖고 있던 플라톤이 똑같은 추도 연설의 형태에 초점이 다른 방식의 연설을 행함으로써, 페리클레스와 자신의 정치철학의 상이함을 대비시키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직접 연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을 대필해 준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페리클레스의 애첩 아스파시아가 한 추도 연설을 듣고 이를 전달해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이런 맥락과 닿는다. ​

결국 소크라테스가 전달해 주는 추도 연설은 아스파시아의 이름만 빌렸을 뿐, 소크라테스, 아니 플라톤 자신이 대중에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단순히 페리클레스 연설의 패러디나 풍자를 넘어서, 아테네인들이 숭상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연설의 형식을 빌려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이 작품을 읽기 전에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담겨 있다. 하지만 역자가 이미 이 책의 부록에 투키디데스의 연설을 함께 싣는 친절함을 베풀고 있다. 독자는 한 작품에서 두 추도 연설의 특장과 지향점을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다.​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은 그의 정치적 입장과 당시 아테네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테네가 중심이 되어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차츰 제국주의로 흐르고 있었다. 특히 이런 상황을 페리클레스가 주도했다. 결국 아테네의 제국화는 스파르타와의 격돌을 불러왔고, 그리스의 많은 도시국가들이 양분되어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은 전몰자를 위한 장례식을 국가 행사로 규정한 아테네의 법률에 대한 칭송과 아테네의 민주정체의 탁월성에 대한 찬양과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아테네 전체가 그리스의 학교”라고 강조하며, 아테네에서는 “매우 품위 있고 유연하며 자족적인 인간으로 배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아테네의 이런 탁월성은 바로 전몰자의 희생의 토대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페리클레스는 전몰자의 “남자다운 용기”를 찬양하면서 공공의 선을 위한 헌신을 찬양한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분들의 죽음은 그분들이 처음으로 드러낸 것이건 최후의 확증으로 보여준 것이건 간에 남자다운 용기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분들 중에는 다른 일에 있어서는 능력이 떨어지는 분들도 있을 테지만, 조국을 위한 전쟁에서 그분들이 발휘한 용기만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칭송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들은 선한 일로 악행을 지워 없앰으로써 사사로운 일 때문에 선한 일을 못한 것 이상으로 공공의 선을 위해 헌신했던 것입니다.”

   
▲ 페리클레스 흉상​, 아테네 전쟁박물관 ⓒ박경귀
페리클레스는 시민들의 용기와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분은 이제 마땅히 이분들을 본받아,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음을 명심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 너무 망설이지 마십시오. 죽음조차 불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란 더 나아질 가망이 전혀 없는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을 경우 운명이 역전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가장 잃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자긍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품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는 것보다, 자신의 비험함으로 말미암아 굴욕을 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추도 연설에도 큰 영향을 줄 만큼 추도 연설의 모범적 사례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플라톤의 평가는 달랐다. ​소크라테스의 추도 연설은 어땠는가?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이 정치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플라톤의 철학적 지향을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위대성을 당대에서 찾지 않고 오래 전의 전통에서 유래되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제국주의로 흐르고 있던 당대를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

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의 용기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의, 절제와 지혜가 결합된 용기와 도덕적 이상을 강조한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페리클레스가 언급하지 않았던,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서, 자유를 지켜낸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의 승전에 주목한다. 마라톤의 전몰용사를 “자유의 아버지”라고 칭송한 것도, 페리클레스의 팽창주의적 국가주의에 요구되는 용사상과 달리 전사의 책무를 외적으로부터의 자유 수호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정말 그 당시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것입니다. 대체 그 분들이 용기와 관련하여 어떤 사람들인가를. 즉 그 분들은 마라톤에서 이민족 세력을 맞이하여 아시아 전체의 교만을 응징하였으며 이민족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전승비를 세웠고, 다른 그리스 사람들을 선도하는 교사가 되어 페르시아의 힘이 무적이랄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어떠한 대군도, 어떠한 부도 그들의 용맹 앞에서는 굴복하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용사 분들을 우리들 육신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우리들과 이 대륙에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사람들은 그 분들의 위업을 본받아 그 이후의 전투에서도 그리스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 전사들의 후예로서 말입니다."

   
▲ 소크라테스 좌상, 아테네 학술원 앞에 있다 ⓒ박경귀
소크라테스의 추도 연설은 이민족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회상시키고 그리스의 자유를 지켜낸 점을 칭송함으로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그리스 도시 국가 간의 소모전으로 자멸해 가던 당시의 아테네와 그리스인들의 독선과 오만, 분열에 대한 경종을 주고자 했다. 플라톤은 그리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민족에 맞서 싸워 이긴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전몰 용사들의 용기를 높이 기렸다. 하지만 그리스 동족끼리 맞서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코린토스 전쟁(기원전 395∼386)을 벌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대결한 양 진영이 화해하고 전쟁을 하루빨리 끝낼 것을 간절하게 희구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 싸움에서 서로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추모의 염을 갖고 또 이러한 장례식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인 기도와 제물 의례를 통해 최선을 다해 그들을 화해시켜야 합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전몰 용사 추모 연설을 통해 그리스 공동체의 파멸을 이끄는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코린토스 전쟁을 비판한 것이다. 당시 그리스 내전의 과정에서 바쳐진 숱한 목숨들은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저항했던 동족이었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의 전몰 용사 추도 연설은 선조들의 위업과 전사들의 용맹에 대한 칭송에 집중한 반면, 소크라테스의 추도 연설에는 아테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들의 용맹을 칭송하면서도 그들의 적이 같은 그리스 민족이라는 점에 대한 자괴감과 냉소가 짙게 배어있다. 이는 제국주의적 행태로 흐르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시민들의 오만에 대한 경고이자, 정치 지도자들에게 민중의 폭주를 절제시키고 덕으로 정치를 이끌어 평화를 회복해야 한다는 준엄한 요구이기도 했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메넥세노스>, 플라톤 지음, 이정호 옮김, (2008), 1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