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조중동 종편과의 경쟁을 의식


조선일보-SBS 카르텔이 깨진 걸까. 깨졌다면 왜 깨졌을까. 돌연 SBS가 장자연 사건을 들고 나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이다.

물론 세상일이 어떤 일을 저지른 자의 의도대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설사 SBS가 사적 이익추구의 의도를 가지고 장자연 사건의 재점화에 나섰다 해도 우리는 SBS보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차제에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장자연 사건의 전말이 소상히 밝혀져, 최소한 연예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인 장자연의 인권과 명예가 회복되고 관련자들이 처벌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럼에도, 2년전 장자연 사건이 터졌을 때 방송 3사 중 가장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던 것이 SBS였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SBS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죽은 장자연을 무덤 속에서 끌어냈을까 하는 의구심이 솟구치지 않을 수 없다.

잠시 2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년 전 3월7일 장자연이 사망했고, 며칠 후 조선일보 사주 관련설이 나돌 즈음 조선일보는 ‘박연차 사건 수사’를 검찰에 촉구했다. 이후 검찰이 박연차 사건수사에 박차를 가했고 정가에 박연차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당연히 장자연 사건의 조선일보 사주 연루설은 꼬리를 감추었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SBS는 장자연 사건을 가장 소극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SBS는 아마도 ‘속성상’ 장자연 사건 보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영방송, 다시 말해 돈벌이를 목적으로 방송을 하다 보면 ‘돈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터, 장자연 사건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센세이셔널리즘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보다는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자들을 더 의식하였을 것이다. 덧붙여 SBS가 한때 ‘방송의 조선일보’라는 명예()스러운 호칭을 얻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선일보 사주 연루설 앞에 약해졌을 SBS를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돌연 SBS가 8시 뉴스를 통해 “100여 차례 31명에게 성상납을 했으며 심지어 부모님 기일에도 불려갔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장자연 편지를 보도한 것이다. SBS는 또 “이 편지들을 장자연 본인이 작성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인 전문가에게 필적 감정을 의뢰했으며 장자연의 필체가 맞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허위논란을 미리 차단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방증인데 이러한 부담을 감수하면서 사영방송이 장자연 관련보도를 했다는 것은 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의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SBS의 위기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실 이명박 정권 들어 지난 3년 동안 미디어업계의 가장 큰 수해자 중의 하나는 SBS다. SBS는 송도균 전 사장을 방통위 부위원장으로 앉히는 데 성공했고, 지난 4년 동안 언론노조 위원장을 한 사람도 SBS 피디였다. 게다가 야당추천 몫 방통위원 양모씨는 ‘SBS X맨’으로 심지어 SBS에게 방통위가 부가하는 과징금을 줄여주는데 1등 공신 역할을 하기도 했다. 건설회사를 하면서 갈고 닦은 전방위 로비력을 활용하여 SBS가 이룬 최대성과는 미디어법 개정과정에서 얻은 지상파 민영방송 최대주주 지분제한을 40%로 올린 것이다. 소유지분 확대로 SBS 최대주주인 태영은 소액주주들의 이합집산으로 인한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숨통을 마련했다.

자본과 노동의 유연성 면에서 지상파 최고의 조건을 만든 SBS는 이 정권이 조중동에게 종합편성 채널을 준다고 해도 큰 위협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조중동 종편 사업자를 선정할 때 SBS출신인 송도균 씨와 양문석 위원이 근본적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기 방송사업자로서 여유만만이었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종편사업자를 2개 이상 선정하면 1개 사업자는 안정적으로 살아남고, 2개 사업자 이상은 자연도태될 것이라는 세간의 잘못된 논리에 SBS도 안심했던 것인지 모른다. 지상파의 기득권에 안주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조중동이 종편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조중동 특혜에 관한 갖가지 소문이 돌고 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조중동 종편을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최시중 씨는 종편을 살리기 위해 노골적으로 광고파이를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광고시장을 손보겠다는 것에 다름아니고 이는 SBS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최씨가 마음먹기에 따라 미디어랩 논의도 한없이 지연될 수 있고 또 조중동 종편을 위해 지상파의 불리한 광고여건(중간광고 불가능, 간접광고수주)은 존속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조중동 종편은 황금채널배정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조중동 종편은 뜨는 즉시 전국방송이 된다. 서울지역민방인 SBS는 전국규모 방송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가. 게다가 김모씨를 비롯한 일류작가들이 조중동 방송과 상상을 초월하는 원고료를 받고 전속계약을 맺었거나 맺으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게다가 조중동 종편에는 외국자본까지 들어올 수 있고, 최근 정병국 장관은 종편 콘텐츠 확보를 의식한 듯 일본드라마 등의 수입도 허용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조중동 종편이 떠도 끄떡없다고 자족했음 직한 SBS가 위기의식을 느낄 만도 한 지점이다.

맞다. SBS는 조중동 종편과의 경쟁을 의식하고, 경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할 목적으로 죽은 장자연을 무덤에서 불러냈다. 결코 SBS는 사생결단하려고 장자연을 끌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물밑 접촉을 통해 SBS와 조중동 종편, 그리고 이 정권은 각자의 사익추구를 위해 끌고 당기는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SBS와 조선일보의 기 싸움일 수도 있고, 방송까지 거머쥔 조선일보 등이 거대공룡화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픈 세력과 조선일보 등과의 한판승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 죽은 장자연을 무덤에서 불러낸 것은 SBS지만 2년 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파묻을 수는 없다는 것,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 장자연 사건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최민희 / 전 방송위 부위원장 (현 국민의 명령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