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삼성의 시스템 '구멍'…선공후사 공익정신 아쉬워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에 뚫렸다는 건 참 의외다.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고 공포감까지 증폭시키고 있는 사안이지만 이 몹쓸 메르스 완전 제압을 위해서 이것만은 발언코자 한다. 삼성 시스템의 허와 실 그리고 우리가 거머쥐어야 할 진짜 메시지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삼성의 모든 시스템은 최고 수준이다. 100개를 넘나드는 모든 계열사뿐만 아니라 수 천 개 협력업체에서도 삼성그룹의 관리시스템은 꽤나 성공적이다. 위기관리나 위기대응 같은 초일류 시스템이 여태껏 그다지 대단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흔히들 “리더나 사람 몇몇이 바뀌어도 괜찮다. 시스템이 일하는 것”이라고 맘 든든해 할 때 꼭 예로 드는 것이 시스템의 삼성 또는 관리의 삼성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는 완벽하도록 빛났던 삼성 시스템도 통하지 않았다. 단 한 개 계열사이긴 했지만 위기관리의 핵심인 돌발 상황 대처(contingency plan)에 실패하고 말았다. 알려지기로 삼성서울병원이라도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 시스템, 국가 관리의 허점 탓이라고도 하지만 분명한 건 서울 도심에 위치한 둑 하나가 속절없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사람 상당수는 그 둑을 믿어왔고 둑 밑을 지나다녔고 든든해 뵈는 둑길 거닐며 아픈 몸,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했으니 이번 시스템 고장은 결코 간단한 해프닝이 될 순 없다.

이번 삼성서울병원 대응 실패 본질은 경영 효율성을 표방한 삼성 시스템과 초일류 노하우가 공공 부문과는 잘 맞질 않고 갈등을 일으켰다는 데 있다. 첫 번째 가치 충돌은 경쟁력과 공익정신이다. 우선 경쟁력을 보자. 삼성전자를 필두로 하는 모든 삼성그룹의 제 1의적 가치는 우선 시급하고 중요한 경쟁력 제고에 있다. 애플이 공격하고 중국 샤오미가 추격하는 전쟁 같은 시장에서 삼성의 시스템은 수율, 즉 생산성 높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업장마다 비용을 절감하고 단위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인사 업무 등 관리와 지원 체계를 최적화함으로써 산업의 챔피언을 획득하는 것이 바로 삼성 시스템의 요체다. 그러다보니 삼성맨들은 엔지니어와 보험 외판원에서부터 병리학 전문의에 이르기까지 일단 효율과 생산성, 경쟁력을 신봉하게 되어 있다.

   
▲ 5일 서울 일원동 삼성병원의 폐쇄된 응급실 출입구 앞으로 병원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추가로 확진된 메르스 환자 5명 중 41번은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 환자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병원에서 발생한 환자는 4일 복지부가 확진 사실을 발표한 35번 의사 환자 이후 두 번째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 뛰어난 삼성 시스템이 민간 시장 경제 부문이 아닌 공공 섹터에서도 원활하게 제대로 작동하는가 여부이다. 결국 이번 삼성서울병원 중대 실수는 입증하고 말았다. 삼성 시스템은 공공 부문에 그대로 적용할 게 못 된다는 발견이다. 이번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이 목도하였듯이 한 사람 그 의사의 대처는 부적절했다. 고농도 메르스 바이러스 숙주가 되다시피 한 14번 환자로부터 감염된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본인도 잘 몰랐고 억울했겠지만 어쩌다 국민 전체를 불안케 하고 서울시장을 힐난하는 감정적 대응으로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이는 직원 개인의 PI(personal image) 관리 시스템 붕괴를 뜻한다.

삼성 같은 노련한 기업에서 특히 의사와 같은 핵심인력 한 명이 잘 못 말하고 엉뚱하게 대응하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기업 이미지를 손상케 하는 ‘테러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는 매뉴얼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극한 돌발 상황에 몰린 한 개인의 지나치고 서툰 대응이 여과 없이 언론사 전화벨을 울리도록 방치한 건 분명 시스템 고장이다. 삼성서울병원 대변인이 말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쪽으로 이른바 종합커뮤니케이션을 수행했어야 공연한 갈등 유발과 불안 증폭을 초래하지 않았을 터이다.

핵심 역량인 의사 의식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이은 두 번째 시스템 고장 요인은 비용 질병(cost disease)에 있다. 삼성서울병원 조차도 비용 압박에 내몰려 좀 더 스마트한 응급실 운영을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과 같은 정보를 제 때 공개하고 알려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게이트 키퍼 기능에 심혈을 기울이는 선택이었다. 응급실로 유입되는 환자를 게이트 입구에서부터 전신 스캔을 하고 병력 정보를 체크하고 문제를 걸러내는 스마트 시스템이었다면 상황은 분명 달랐을 게다.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디지털 한류로 세계를 호령하는 ICT 최대기업 삼성이 스마트 의료 시스템 하나쯤은 응급실 게이트 키퍼 시점부터 가동했어야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게 보통 국민들의 생각이다. 이런 기대가 빗나간 데에는 공공부문에 잘 못 들어온 능률지상주의 사제 경영학 시스템 탓이 크다. 비용 줄이고 효율 높이고 경쟁력 강화하며 이기는 습관만 강조해온 사제 경영학에선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 스마트 응급실 투자는 부적합 결정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의사, 간호사 임직원 의식조차도 성과주의와 단기업적주의에 휘둘리게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운영하는 사업장이다. 그럼에도 공익성 이름값을 제대로 못 해냈으니 무척 안타깝다. 때문에 단순 우발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돌려버리지 않고 문제들의 원인을 찾고 해결해 나가는 듬직한 삼성 시스템 복구와 개선을 바란다.

   
▲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 상황실에서 열린 메르스 대응 추진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공공경영학 차원의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공공경영학이란 행정학의 새 이름 논의에서 따온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일반 민간 영역의 기업들을 독려하는 이른바 사제 경영학과는 다른 가치와 철학에 있다. 보건 의료 교육과 같은 공공재를 다루는 공익재단이라면 응당 이기는 습관이 아닌 돌보는 습관, 철저하게 대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우직한 행보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스마트 응급실 같은 거대 비용 문제를 해결할 탁월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비용 질병(cost disease)을 설명한 경제학자 윌리암 보몰과 보웰은 공공부문이 생산성은 낮지만 임금은 민간을 따라가니 결국 공공서비스 비용이 상승하는 비용질병에 대해 정부 지원이나 후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예술 단체가 후원 등 사회적 지원으로 사는 법을 알려준 지혜이기도 하다.

삼성서울병원 같은 종합병원, 대학병원도 공공부문 안에서 안고 있는 비용질병을 민간 사립대학으로서 버텨나가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대안이 필요하다. 공공재를 다루고 공공서비스를 하는 병원과 같은 기관에는 이에 상응하는 비용 보전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병원도 공공부문에 맞게끔 공공경영 시스템을 짤 수 있다. 고객 마케팅이나 서비스 관리보다 공공의료와 보건 환경에 대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의사들도 속도의 경영이 아닌 공공서비스라는 정도의 경영을 정위치 에서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

이런 공공경영학과 공공서비스로서 새로운 삼성 시스템은 교육과 미디어와도 그대로 결부된다. 의과대학에서는 일단 영리의료와 의료산업, 대기업 임직원으로서 의사라는 사제경영학 의식을 단속해야 한다. 선공후사와 공익정신이 갖는 뚜렷한 가치와 직업의식을 가르쳐야 한다. 윤리학도 철학도 문화사도 배제하는 우리 대학의 망가진 교양교육, 전공교육부터 혁신해야 옳다. 병원 경영이라면 의료관광 무드에 올라타서 돈부터 벌고 보자는 클리닉 중심 사제경영학 말고 메르스와 같은 공공의 적을 퇴치하는 공공경영학과 스마트 응급실 만드는 실전 R&D를 더욱 권장해야 할 일이다.

공공재, 공공서비스, 공공경영학의 원조인 언론과 미디어산업 또한 공동보조를 잘 취해야 한다. KBS라면 <생로병사의 비밀>과 같은 콘텐츠를 캠페인 저널리즘 쪽으로 좀 더 확장하면 좋겠다. 공공 의료 시스템을 점검하고 바이러스와 같은 현대 역병을 지속적으로 심층 탐사 보도하는 역량을 키워야 할 때다.

이렇게 공영방송, 공영미디어가 제대로 서고 교육 현장에서부터 선공후사, 공익정신을 진짜 자기문제로 느끼고 배우게끔 하는 절호의 기회가 이번 메르스 사태였으면 한다. 그 견고한 삼성 시스템도 일부 실패했지만 우리 모두가 공공성, 공공재, 공공서비스, 공공경영학에 대해 아주 진하게 체감할 수 있어 다행이다.

삼성의 사시인 정도경영을 다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수 있다. 삼성전자에게는 이기는 습관이 정도경영일 수 있다면 삼성서울병원에는 선공후사, 공익정신이 곧 정도경영이 될 테니까.
스마트 응급실 투자와 같은 비용상승에는 굴복하고 지는 습관을 가져야 정도경영이 살아나지 않겠는가? 또 즉각 치료해주는 서비스 품질도 높여야 하지만 누군가는 병원 일선에서부터 우직하게 바이러스 연구하고 의료 시스템 개선에 몰두하는 낮은 생산성과 더딘 효율을 권장하는 느린 행보도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곧 공공부문의 틀림없는 정도경영이니까.

선공후사, 공익정신을 대학에서 배우고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삼성의 새 시스템과 언론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 공공경영 시스템 작동을 촉구한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