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과거 ‘소버린-SK 사태’와 같은 국부유출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소액주주가 엘리엇 측에 주권을 위임하겠다는 ‘비애국적 행동’을 보이고 있어 더욱 우려된다.

최근의 엘리엇의 행보는 소버린-SK 사태때와 판박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시세차익을 노린 ‘먹튀’가 궁극적 목적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의 중론이다. 영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은 지난 2003년 SK 지분 14.99%를 전격 매집한 후 최태원 회장 퇴진 등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SK그룹을 압박했다. 정기주총 때는 표대결을 통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등의 방법으로 SK측을 위협했다.

이에 SK는 하나은행 등 백기사를 통해 우호 지분을 늘리고 1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해 경영권을 방어해야 했다. 2005년 7월 소버린은 SK 주식을 전량 처분해 9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뒀다. 국민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지분을 늘려가던 외국계 펀드의 두 얼굴에 경악했다. 결국 국부유출의 쓴맛을 느껴야했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벌이고 있는  ‘먹튀’ 론스타의 망령도 떠오른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에서 배당과 시세차익으로 4조6600억원을 챙긴 뒤 한국을 유유히 떠났다. 현재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5조원대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논란에 휩싸였던 외환은행 매각에 있어 론스타 게이트는 수년간 이어졌으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선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삼성물산 /사진=연합뉴스
이번 엘리엇의 삼성물산 경영참여 선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소버린과 차이점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것과는 달리, 엘리엇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섰다는 점에 불과하다. 엘리엇 측이 “합병비율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이런 점을 모를리 없는 엘리엇의 주장은 자신들의 목적이 먹튀에 있음을 공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삼성물산 측에 주식 현물 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정관변경을 요구한 것 역시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줄일 수 없는 점을 이용한 고도의 압박술에 불과하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은 한국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파고들어 국내 자본을 손쉽게 뽑아가고 있다. 소버린은 SK그룹 지배구조의 허약성을 간파하고 공격에 나섰고 엘리엇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물산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9.98%)일 정도로 삼성그룹의 지배력이 약한 상황이다. 삼성SDI를 비롯해 삼성 측의 지분을 다 합쳐도 채 14%가 되지 않는다. 이런 지배구조 때문에 2004년에도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로부터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한국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 개선이 먼저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선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작업이고 수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조차도 십조원대가 들어가는 지배구조 개선 작업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삼성전자 평택공장에 2017년까지 15조7000억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경쟁력 확보에도 거금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이다.

소액주주를 비롯한 국민들도 애국의 차원에서 이번 엘리엇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삼성 측을 옹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론스타 때와 같은 대규모 국부유출이 벌어질 수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는 절대 ‘구세주 투자자’가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