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가 열린 후 난파된 배가 빈발하면서 조난자들의 생존은 최고의 관심사였다. 특히 국부(國富)를 놓고 경쟁했던 유럽 열강들은 난파에 대한 공포심을 제거할 국가적 필요에 따라 조난자들의 생존 조건을 연구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들 국가나 언론이 의문을 가졌던 것은 조난 환경의 유·불리가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결과치였다. 극악의 상황에서 조난자들이 멀쩡하게 살아온 반면 보다 나은 환경의 조난자들이 몰살하는 사례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할 사례가 1864년 발생했다.

1864년 같은 해, 같은 장소에서 두 척의 배가 난파당했다. 그래프톤호(Grafton)는 1864년 1월 3일 난파돼 조난자들은 오클랜드섬 남쪽의 칸리하버(Carnley Harbour) 연안에 상륙했다. 인버콜드호(Invercauld)는 이보다 4개월쯤 후인 1864년 5월 11일 난파돼 조난자들은 오클랜드섬 북서쪽 험준한 절벽이 보이는 곳에 올랐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이들은 각각 1~2년간 이 섬에서 생활하면서 생존에 있어 공동체의 연대의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대비시켜 보여주었다.

인버콜드호는 19명이 살아서 상륙했지만 1년 후 구조될 때 생존자는 3명에 불과했다. 반면 그래프톤호의 조난자 5명은 인버콜드호 조난자들보다 긴 2년에 가까운 힘든 생활이 이어졌으나 모두 살아남았다. 무엇이 이들의 생존을 극명하게 갈랐을까?

인버콜드호 조난자는 생존을 위한 최대 조건인 숫자에서 19명으로 그래프톤호 조난자보다 월등했다. 섬에 상륙한 그들은 4일간 해안에 머물다가 절벽 위로 기어서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절벽을 오르지 못한 1명은 낙오돼 사망했다. 절벽에 오른 이들은 1년간 반목을 거듭하며 섬을 횡단했다. 천신만고 끝에 물범 사냥꾼들의 오두막 잔해가 남은 포트로스(Port Ross)에 도착했으나 생존자는 급감한 상태였다. 쇠약해지거나 부상당해 방해가 되면 누구든 버려졌다. 심지어 1명은 잡아먹히기까지 했다.(이 섬에는 원주민이 없었다) 결국 1865년 5월 20일 포르투갈 선박 줄리언호(Julian)에 구조될 때 남은 자는 선장을 포함해 3명이었다.

반면 그래프턴호는 1864년 1월 3일 같은 섬 남쪽 칸리하버(Carnley Harbour) 연안에 난파됐다. 난파된 배에 승선했던 조난자 5명의 국적은 선장 토머스 머스그레이브(30, 미국인), 항해사 프랑수아 에두아르 레날(33, 프랑스인), 알렉산데르 맥라렌(28, 노르웨이인), 조지 해리스(20, 영국인), 요리사 헨리 포르게스(28, 포르투갈인) 등으로 모두 달랐다.  

난파 당시 레날은 이미 환자였으나 배가 침몰하는데도 선원들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힘든 재난 상황에도 선원들은 환자를 밧줄로 묶어 해안까지 동행했다. 조난 초기부터 그래프턴호의 생존자들은 공동체로서 연대의식이 뚜렷했다.

그래프턴 공동체의 연대의식은 2년여의 야영생활에서도 고스란히 발현됐다. 재주꾼이었던 레날은 생존의 조건인 유희를 위해 체스 말, 도미노, 카드를 직접 만들었다. 하지만 선장이었던 머스그레이브가 계속 지고 이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자 공들여 만든 것들을 모두 버렸다. 지고 이기는 승부로 인해 벌어지는 분쟁의 원인을 제거하는 배려로 여겨진다. 

이들은 다국적의 다름을 유대를 강화하는 수용으로 승화시켰다. 조난자들이 서로 외국어를 가르쳤고 항해에 필수적인 수학도 공부했다. 훗날 레날은 “우리는 서로 교대로 교사와 학생이 되었다. 이 새로운 관계는 우리를 더욱 통합시켰다. 교대로 지위를 높이고 낮춤으로써 사실상 우리를 동등하게 유지했고, 우리 사이에는 완벽한 평등 관계가 조성되었다”고 적었다. 수직적 계급사회가 가져오는 불평등을 제거한 것이다.

마침내 1865년 7월 19일 건강을 회복한 3명(머스그레이브, 레날, 맥라렌)은 난파선에 딸려있던 작은 보트를 수리해 위험을 무릅쓰고 섬을 탈출했다. 그들은 5일 동안 바다를 유랑하다가 운 좋게 뉴질랜드의 스튜어트섬(Stewart Island)에 도착했다. 물론 곧바로 섬에 남은 2명을 구하러 돌아갔다. 

통섭 연구의 그루인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 예일대 교수는 자신의 베스트셀러인 ‘블루프린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유전 형질이나 성품의 차이가 생존의 성사를 가르기도 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섬, 같은 시기, 같은 조난자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대했느냐가 삶과 죽음을 갈랐다.”고.

   
▲ 2월 13일 현재 튀르키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3만 4,000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에서 급파된 구호대가 생존자 구조에 성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구의 한쪽에서 조난자들이 발생했다. 숫자로 표시되는 진도로는 표현되지 않는 고통과 슬픔이 넘쳐난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지진은 순식간에 3만 4,000명(2월13일 현재)이 넘는 생명을 앗아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수백 만 명의 이재민들이 관심에서 멀어진 채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갈 게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가슴에 평생의 상처를 남겼고 어떤 이들은 평생 지진의 피해 속에 망가진 육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들만의 불행이 아니다. 중국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튀르키예 지진으로 중국에서 3년 내 규모 7 이상의 강진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스라엘도 진도 3.5의 지진에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하긴 지구라는 섬은 지각판이 서로 얽혀 있어 한 지점의 강진은 지구 반대편 강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렇게라도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관계를 맺고 있으니 경이롭다. 우리나라도 1,000년 주기의 백두산 분화에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여하튼 전(全) 지구적 구호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아프간 탈레반도 2억 원을 지원한다고 하니 열외자는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기업이 나서 물적 지원에 나섰고 이어 국민들도 동참하고 있다. 앞서 급파된 구호팀이 골든아워를 넘긴 시간에도 생존자를 찾아내는 쾌거를 올리고 있어 세계적 찬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생명이 생명을 살리고, 살아있는 자가 살아갈 자의 앞길을 열어주는 인류의 연대의식은 인간 공통의 DNA다. 그래서인지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우리는 서로 돕고, 배우고,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섬에 난파된 조난자들이다. 공감하고, 연대하라.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