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저지에 나선 가운데 삼성물산이 전격적인 자사주 처분 카드를 빼들었다.

전일 삼성물산은 장 마감 이후 자사주 899만557주(5.8%)를 시간 외 매매 방식으로 KCC에 넘긴다고 공시했다. 매각 금액은 총 6743억원에 달한다. 이번 자사주 매각은 삼성그룹이 다음 달 17일 열릴 주주총회에서 만에 하나 합병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총력전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물산은 공시에서 "회사 성장성 확보를 위한 합병 가결 추진"이 자사주 처분의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번 주총에서 1조5000억원 이상의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 삼성물산 지분의 17%만 결집해도 합병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엘리엇은 또 주총에서 합병 반대표를 3분의 1 이상 끌어모으는 시도에 나설 수 있다. 이번 주총의 지분 기준 참석률을 70%로 가정했을 때 3분의 1인 23%가 반대하면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껏 삼성그룹 주변에서는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타사에 팔아 의결권을 살릴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자사주를 처분해 의결권을 살리는 조치가 엘리엇의 압박 전략이 주효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였다.

이런 부정적인 효과를 감수해가면서까지 삼성물산이 자사주 처분에 나선 것은 삼성그룹의 현재 상황 인식이 상당히 엄중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3대 주주인 엘리엇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7.12%에 불과하지만 전날을 기준으로 33.97%에 달하는 외국인 주주들의 기류가 최근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외국인 주주는 이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서 엘리엇과  연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 지분 0.35%를 보유한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는 "삼성물산의 가치는 높은 데 반해 합병 비율이 너무 낮다"며 "불공정한 합병 가격이 조정되지 않으면 합병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분 2.05%를 보유한 일성신약도 아직 합병 찬·반 의사를 명백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삼성물산에 불리한 것으로 평가되는 1대 0.35 합병 비율에 불만을 표출한 상태다.

여기에다 삼성물산의 소액 주주들까지도 인터넷 카페에서 결집해 엘리엇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나서는 등 여론이 삼성그룹 측에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그룹 계열사의 삼성물산 지분은 삼성SDI(7.39%), 삼성화재(4.79%), 이건희 회장(1.41%) 등을 모두 합쳐 13.8%에 그친다. 지분 70% 출석을 가정할 때 합병 가결을 위해서는 47%가량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삼성이 전적으로 믿을 만한 우군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KCC에 넘어간 지분까지 합친 범 삼성그룹 지분은 20%가량으로, 여전히 추가 우호 지분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다만 삼성물산의 1대 주주로 합병안에 찬성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는 국민연금이 전일 공시를 통해 지분을 기존의 9.79%에서 9.92%로 늘린 점은 삼성그룹에 반가운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