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에 반대하기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안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인 5월 27일 주주 자격으로 삼성물산에 합병 반대 의사를 통보했다.

이때 엘리엇은 ▲시가를 기준으로 산정된 1대 0.35의 합병 비율이 자산 가치가 큰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점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상호 출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합병 후 건설 산업에서 경쟁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주요 반대 논거로 내세웠다.

이 중 특히 엘리엇이 공정거래법상의 상호 출자 위반 가능성을 거론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삼성그룹의 아킬레스건 격인 복잡한 순환 출자 구조의 문제점을 부각시킨 것이어서 공격 대상이 삼성물산 하나가 아니라 그룹 전체임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현재 삼성그룹의 순환 출자 구조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으로 이뤄져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뤄지면 '통합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된다

합병 발표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합병 반대 행보에 나선 것은 엘리엇이 상당한 시간을 두고 전략 수립을 해 왔음을 방증한다.

강현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지배구조 측면의 문제까지 건드린 것을 보면 미리 공부가 충분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엘리엇이 '장기전'에 대비해 자문과 소송 대리 업무를 맡긴 법무법인 넥서스 말고도 한국 내 법무 담당 인력과 복수의 국내 대형 증권사들까지 끌어들여 대대적인 협력팀을 꾸렸다는 말도 나온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2.17%를 추가 매입해 총 지분을 7.12%로 늘린 6월 3일당일에는 삼성에 주주 제안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안서에서 엘리엇은 현물 배당과 중간 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하는 안건을 제시했다.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14조원대의 삼성전자(4.1%) 지분 등을 나눠갖게 해 달라는 요구다.

이어 엘리엇은 4일 7.12% 지분 보유 사실을 공시하면서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공시 외에도 국내 언론 홍보 대행사까지 섭외해 별도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5일에는 국민연금, 삼성에스디아이, 삼성화재 등 주요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섰다.

또 9일에는 합병 비율의 불공정함을 주장하면서 합병 승인을 위한 주총이 열리지 못하게 해 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삼성물산이 10일 자사주를 처분으로 대응하자 다시 기다렸다는 듯 다음 날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했다.

업계에서는 엘리엇이 2건의 가처분 사건에서 져도 외국인 기관 투자가와 소액 주주들의 세를 모아 합병안 부결을 시도하는 등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추가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제일모직도 전날 공시에서 "반대 주주가 적극적으로 합병 반대 주주의 의결권을 결집하는 경우 위임장 경쟁(프록시 파이트)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수주주권 추가 행사 등 가능성이 있는 바, 그로 인해 합병 절차가 직접 제한되는 것은 아니나 결과에 따라 합병 절차 진행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점에서 엘리엇이 준비할 만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며 "엘리엇이 주주가치 개선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지만 굳이 합병 발표 후 지분을 취득해 이슈를 부각시킨 것은 결국 매각 차익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