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의사에 덮어 씌운 올가미…정치쇼와 빗나간 언론의 합작품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박원순 허위 브리핑·한국일보 오보가 부른 메르스 마녀사냥

35번 메르스 환자, 일명 ‘메르스 의사’의 상태는 지난 하루동안 우리나라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었다. 서울시 관계자의 허위 정보를 받아 ‘뇌사 상태’라며 오보를 낸 한국일보, 그러면서 뒤늦게 그것도 마지못한 듯 오보 사과 기사와 함께  '뇌손상'이라며 몇몇 문구만 수정한 한국일보의 태도는 가히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하는 일은 한국일보 오보 다음에 이어졌다. 35번 메르스 의사가 뇌사 상태라는 오보 소식이 전해지자, 박원순 시장에 우호적인 커뮤니티 및 관련뉴스에 해당 의사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이 또 한번 쏟아졌다는 점이다. 차마 모든 댓글을 옮길 수는 없지만 ‘우리 시장님’ 운운하며 시장님을 대적하더니 속시원하다는 글까지 등장한다. 사람 목숨을 이토록 경시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떤 이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 극에 달하면 어떤 악취를 풍기는지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다.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언론의 습성상, 서울시 관계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서울시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이상 박원순의 책임 또한 없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과 한국일보는 과연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 35번 메르스 의사가 뇌사 상태라는 오보 소식이 전해지자, 박원순에 우호적인 커뮤니티나 관련뉴스 댓글에서 35번 의사에 대한 악성 댓글이 또 한번 쏟아졌다. /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시장의 허위브리핑과 짓밟힌 개인의 생명과 존엄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밤 메르스 긴급 브리핑을 갖고 삼성서울병원의 한 의사에 관하여 이런저런 신상을 밝히며 앞뒤가 맞지 않는 허위브리핑을 가졌다. 박원순 시장은 5일 뒤이어 발표된 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병원,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당사자의 증언과는 달리 35번 환자, 일명 ‘메르스 의사’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전격적으로 밝히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로 인해 35번 의사 환자는 5일 내내 각종 방송채널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여러번 반복해 가며 자신의 입장과 사실관계를 밝히기도 했다. 5일 오후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35번 ‘메르스 의사’ 환자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힘이 빠져 있었다. 방송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이제는 전국민이 메르스 전문가로 자처할 정도다. 누구나 알고 있는 메르스 상식을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① 메르스는 접촉으로 전염되는 바이러스성 감염 질병으로 시기 지역 환경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다른 발현 특징을 띈다. ② 메르스는 일종의 독감으로 치료약은 없다. ③ 일반적인 독감과 다를 바 없기에 환자 개인의 면역력, 체력, 기존에 앓고 있던 중증 질환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낸다.  ④ 언제나 손과 발, 얼굴을 자주 씻는 등 개인위생에 철저히 하면서 스트레스 관리와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 메르스에 걸리더라도 건강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등이다.

   
▲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밤 중의 메르스 긴급 브리핑을 갖고 삼성서울병원의 한 의사에 관하여 이런저런 신상을 밝히며 앞뒤가 맞지 않는 허위브리핑을 가졌다. 사진은 메르스 방역에 임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 직원들. /사진=미디어펜

가정해 보자. 박원순 시장이 한밤의 메르스 긴급 브리핑을 자청하지 않았다면, 35번 메르스 의사는 이튿날 내내 각종 방송인터뷰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조용히 자신의 컨디션을 관리하며 병의 치유에 전념을 다했을 것이다. 바깥 일 어느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채 오로지 회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박원순 시장의 오밤 중 메르스 브리핑으로 인해 35번 의사는 단 몇시간 사이에 서울시민 1500명에게 메르스를 퍼트릴 수 있는 ‘무개념 의사’로 등극했으며, 그로 인한 악성 댓글은 쏟아졌다.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신념은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의사라는 직업을 떠나 개인으로서의 인권과 존엄은 박원순의 브리핑으로 인해 짓밟혔다. 박원순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35번 의사에 대한 ‘인격적 살해’를 행한 셈이다. 이튿날 인터뷰에서 35번 메르스 의사는 “자신은 엉뚱한 희생양이 됐다”라며 항변했다. 이어 35번 의사는 “화가 나며 분통 터진다”면서 “내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메르스 전파자로 몰고 간 박원순 시장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35번 메르스 의사가 감내해야 했던 스트레스

자신이 평생 일구어온 전문성과 인격이 어떤 정치인에 의해 세간의 온갖 도마에 올랐다면, 그 정신적 스트레스는 어떠했을까. 잠 못 이루는 것은 물론이요,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쪼개질 듯한 통증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의사의 가족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병세가 더 악화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참고로 35번 의사의 가족들은 음성 판정을 받았고, 박원순 시장이 한밤 중에 온국민을 향해 고성을 토해가며 밝혔던 재건축조합 모임의 참석자들 중 확진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지만, 이로 인해 역으로 박원순 시장이 오밤에 벌인 긴급 브리핑은 아무런 사실관계 확인 없이 혼자서 벌인 메르스 정치쇼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격이 되었다.

35번 메르스 의사는 현재 자가 호흡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수면제를 투여한 상태다. 생명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생에 대한 의지는 의외로 강하다. 필자는 35번 의사가 속히 쾌유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평생 의료에 인생을 바쳐온 의사의 말보다 포퓰리즘 SNS 정치꾼이 하는 말을 더 믿고 울부짖는 사람들은 논외로 하자. 속이 배배 꼬여 누군가가 죽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이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다.

   
▲ 35번 의사에 대해 박원순과 한국일보는 법적으로 책임질 것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박원순의 허위 브리핑과 한국일보의 오보, 그로 인해 짓밟힌 개인의 존엄과 생명을 말이다. 사진은 삼성서울병원의 중앙로비. /사진=미디어펜

만약 35번 의사가 향후 잘못된다 하더라도, 박원순 시장과 한국일보는 법적으로 책임질 것은 없다. 법정에서 따질만한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허위 브리핑과 한국일보의 오보, 그로 인해 짓밟힌 개인의 존엄과 생명을 말이다.

사람은 무언가의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연간 결핵으로 2000명이 죽고 인플루엔자로는 1600명, 병원 내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5000명에 달하는 대한민국이다.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현실 속에서 버젓이 살아가는 이들이 생명과 죽음, 도덕과 비도덕을 농락하고 있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