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역사 수레바퀴 바로잡는 계기돼야

   
▲ 조우석 문화평론가
1주일 뒤인 오는 22일은 역사적인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일인데, 양국 정상이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하는지 여부가 관심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주일대사관 주최 기념식에 참석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주한일본대사관의 서울 기념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영상메시지를 주고받는 선에서 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윤병세 외교장관이 일본 방문을 검토 중인데, 전반적으론 썰렁하다.“양국관계가 겨우 이 정도인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세기 전 한일관계의 초석을 기념하는 자리가 이런 지리멸렬한 눈치작전으로 그쳐야 하겠는가? 프로토콜이 중요하고, 상호주의 원칙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따로 따로 행사부터 비정상인데, 이걸 지적하는 이도 없다. 10년 전만해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그때 수교 40주년을 맞아 일찌감치 ‘한일 우정의 해’를 선포하는 등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정초 개막식은 서울과 도쿄에서 열려 양국 정상(노무현 전 대통령, 고이즈미 전 총리)이 교차 참석했다.

   
▲ 우리 현대사의 성공은 이승만이 미국을 잘 활용하고, 박정희가 일본을 잘 활용해서 비로소 가능했다. 맞다. 이승만은 용미(用美)의 달인이었고, 박정희는 용일(用日)의 귀재였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먼저 가슴을 열어야 할 쪽은 한국

하지만 잇따라 터진 독도 문제와 교과서 왜곡으로 양국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정작 6월 행사가 무산됐던 걸 우리는 기억한다. 좋다. 지금 상황에서 먼저 가슴을 여는 전향적 제스추어를 보여야 할 쪽은 한국이 아닐까? 이런 지적을 하면 이 땅의 못난 좌파민족주의 그룹이 또 흥분할 것이다. 하지만 네 탓만큼 내 자신을 돌아보는 건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를, 우리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반세기 전 박정희 대통령이 결단했던 개방의 대전략을 복기(復碁)해야 한다. 상식이지만 양국관계 정상화와 이후 극적인 발전은 순전히 그의 박력 넘치는 드라이브 덕이다.
이승만 시절 시작됐던 수교 논의가 벽에 부딪칠 때마다 국운을 걸다시피하며 강공을 거듭했고, 대학가-지식인과 언론이 주동했던 이른바 굴욕외교 반대를 물리쳤던 주인공이 박정희다. 그 분수령이 1964년도 6.3 사태다. 야당과 재야의 윤보선-장준하 등은 한일회담과 월남 파병을 겨냥해 무조건 반대를 했고, 이게 대학가 시위로 발전했다.

당시 먹물집단은 그게 정의라고 착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대한민국이 쇄국이냐, 개방이냐로 갈라지는 분기점이었다. 명백하지 않은가? 나라 문을 걸어 잠그고 살자는 민족주의 쇄국 타령을 했던 바보집단이 지식인-언론-대학생이었다. 이를 물리친 채 개혁 개방의 결단을 한 건 박정희의 5.16세력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한 민족주의 쇄국 타령

그걸 몰랐던 눈먼 대중과 지식인-언론은 박정희를 제2의 이완용이자 매국노로 몰아붙이는데 난리굿을 벌였다. 대일청구권 몇 억 달러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박정희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급기야 6월3일 계엄령 선포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1년 뒤 실로 역사적인 양국국교정상화의 위업을 이끌어냈다. 그게 꼭 반세기 전이다. 그리고 그해 10월 현대한국을 만든 또 하나의 결단이 이뤄진다. 월남에 전투부대가 파병된 것이다. 대일수교와 월남 파병은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개혁과 개방의 현대사 집단경험을 가능케 했다.

박정희는 한일회담 타결이 이뤄진 다음 날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이게 글로 따져 명문(名文)이고, 현대한국을 만든 위대한 선언문에 다름 아니다. 대학생-지식인-언론의 패배주의적 대일관에서 벗어나 미래를 열자는 제안은 지금도 더 없이 매력적인 메시지다. 

 “나는 우리 국민 일부 중에 한일교섭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 심지어 매국적이라고까지 극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진심으로 우리가 또 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경제적으로 예속이 될까 걱정을 한 데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묻고 싶습니다. 어찌하여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중략)우리의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암적인 요소는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패배주의와 열등의식 및 퇴영적인 소극주의, 바로 이것입니다. ”

박정희에겐 이런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에 조상들 피의 댓가인 대일청구권 5억 달러를 받아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그걸로 이후 극일에 멋지게 성공했다. 박정희의 담화는 일본에 주는 경고의 메시지도 있다. 마저 들어보자.

   
▲오는 22일은 역사적인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일이다. 하지만 양국은 독도 문제와 교과서 왜곡으로  얼어붙어 있다. 지금 우리는 용미-용일에 실패하고 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친중 사대주의와 친북 민족주의로 돌아섰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에는 한일회담 반세기의 이런 과오를 바로 잡는 계기이어야 한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누가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하는가?

“나는 이 기회에 일본 국민들에게도 밝혀둘 일이 있습니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과들이 오늘의 일본국민이나 오늘의 세대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역시 믿을 수 없는 국민이라는 對日(대일) 불신 감정이 우리 국민들 가슴에 다시 싹트기 시작한다면 이번 체결된 협정은 아무런 의의를 지니지 못할 것임을 기회에 거듭 밝혀두는 바입니다.” 
 
박정희를 두고 지금도 친일파라고 욕하는 바보들은 그의 말에 가슴 철렁할 것이다. 반일 히스테리 집단인 정대협 등의 고정관념과 달리 우리 현대사의 성공은 이승만이 미국을 잘 활용하고, 박정희가 일본을 잘 활용해서 비로소 가능했다. 맞다. 이승만은 용미(用美)의 달인이었고, 박정희는 용일(用日)의 귀재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용미-용일에 실패하고 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친중 사대주의와 친북 민족주의로 돌아섰다. 한일회담 반세기 기념은 이런 과오를 바로 잡는 계기이어야 한다. 위안부 문제와 과거사가 어떻다며 징징 우는 소리를 하는 대신 위대한 용미-용일의 지혜를 구할 때가 지금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