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정부의 대승적 결단…한국·일본 기업 모두 자발적 기여 전제”
하야시, ‘통절한 반성’ 읽는 대신 “1998년 10월 일한 공동선언 계승“
‘현금화 추진’ vs ‘채권 소멸 위한 공탁’ 등 법적 ‘갈등의 불씨’ 남겨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외교부는 6일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우리측 재단 기금을 통해 해결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을 확정 발표하면서 일본의 ‘포괄적 사죄’ 및 ‘자발적 기여’라는 호응 조치에 대한 한일 간 합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재단의 기금 조성에 정작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일본의 피고기업은 참여하지 않는다면 협상에 실패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일단 절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지만 일본정부의 추가 조치가 필요해 여전히 숙제를 남긴 셈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열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의 조성금으로 판결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3건의 원고분들께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며 “현재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여타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에도 그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원고분께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우리정부의 대승적인 결단에 대해 일본측이 일본정부의 포괄적인 사죄, 그리고 일본기업의 자발적인 기여로 호응해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부산 동구 초량동 정발장군동상 앞에서 26일 열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을 위한 공동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강제징용노동자상 모형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12.26./사진=연합뉴스

외교부는 고위당국자는 “대법원 판결 이행 과정에서 일본측과 입장차가 있어 5년 넘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3자 변제’ 해법을 발표했다”면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마련하는 재원은 한국기업이든 일본기업이든 자발적 기여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호응 조치는 ‘포괄적 사죄’와 ‘자발적 기여’가 될 것이다. 일본정부도 일본기업의 기여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한국정부의 발표 이후 1시간만에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한국정부의 조치를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던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일본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하야시 외무상은 이어 “1998년 10월 발표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는 말로 사죄 표명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일본기업의 재단 기금 출연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국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일본기업에 대한 거출을 전제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민간기업의 국내외 자발적인 기부활동에 대해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답했다.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역대 내각이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라고 표명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에 하야시 외무상은 그 내용을 낭독하지 않았다. 일명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불리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간 합의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란 이름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연도 정도만 얼버무린 셈이다. 

또한 그는 일본기업의 기금 출연 여부에 대해서도 ‘특별한 입장이 없다’는 다소 모호한 표현을 썼다. 이는 정부가 기업의 거출을 막는 등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서 외교부가 말한 ‘자발적 기여’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될 뿐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과거사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이 기존에 공식적으로 표명한 반성과 사죄의 담화를 일관되고, 또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정부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3.3.6./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일본정부가 반대하지 않겠다고 표현한 것”이라며 “앞으로 어떤 조치가 양국 재계에서 이뤄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박 장관이 이번에 정부 해법을 발표하면서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표현한 것처럼 그동안 우리정부가 징용 배상 문제를 풀기 위해 일본에 촉구해온 ‘성의 있는 호응 조치’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은 상태이다. 

박 장관은 이날 "‘반쪽자리 해법’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 찼고, 앞으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로써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가운데 원하는 원고는 우리측 재단 기금으로 판결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반면 정부안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일본기업 국내자산 현금화 조치를 시도를 할 경우 정부측이 채권 소멸을 위한 공탁을 할 수 있고, 이럴 경우 법적 대응이 진행되는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날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법리적으로 끝까지 판결금 변제를 수락하지 않는 경우 공탁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며 “다만 당장의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는) 한분이라도 빠지지 않고 판결금을 수령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