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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기업가 정신을 살려라
사적 이윤과 재산권 보장 등 자유주의적 제도개혁 선행돼야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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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5-06-16 08: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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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장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성장이라는 열매를 따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개혁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기 위해 자유경제원은 16일 해외석학 초청 세미나를 개최한다. 발제자인 최영백 교수는 세인트존스 대학교(St.John’s University, NY)의 경제학교수로 기업가정신, 제도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내고 있는 학자다.

최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경제적 번영은 부(富)의 창조 없이 불가능하고, 부를 창조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의 몫이다.”라고 밝히며 기존 주류 경제학에서 무시되고 있는 '기업가 정신'이 현대 자유시장경제의 부(富)창출 경로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최 교수는 “대한민국 내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국제 부패인지도 계수나 창업 용이도를 보면 한국의 여러 제도는 경제적 번영에 반(反)하는 것이 많고 기업가정신도 폄하되고 있다.”고 밝히며 대한민국이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고와 행동의 자유’, 사적 이윤과 재산권에 대한 보장‘, 기업가정신에 우호적인 가치 내지 이념에 근거한 ’자유주의적 제도‘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최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여러 가지 경제정책과 제도들이 경제적 번영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는 사업가정신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판단해야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경제적 번영은 부(富)의 창조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부의 창조는 기업가정신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란 인간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기존 경제학에서는 기업가정신에 대해 침묵 (沈默)하기 때문에 먼저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기업가가 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를 이롭게 하면서 또 이윤을 취하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 기존 경제학이 기업가 정신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가 “효용극대화”라는 개념을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원리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먼저 인간의 사고와 지식습득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야 기업가 정신에 대한 이해가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극단적인 불확실성하의 인간의 인식과 행동

기존경제학에서는 인간들이 각자의 주어진 목적과 수단 하에, 효용을 극대화 하기위해 결정하고 그대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목적과 가능한 수단이 주어진 것일까? 누구에게서? 어떻게?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인식내지 사고 과정의 핵심은 불확실성이다.

매일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나의 이 주장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은 과거에 우리 각자가 수많은 불확실성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다. 또 앞으로 수 많은 불확실성을 극복해가는 과정에, 우리가 굳게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의 상당 부분이 다른 것들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런가?

미생물이나 곤충을 보면 그들의 행태가 대부분 유전자에 의해 정해지는 것 같다. 상당수의 고등동물들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행태를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미생물에 비해 훨씬 더 많다. 인간의 행태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유전자로 직접 정해지는 부분이 적고, 경험을 통해 배움으로 정해지는 부분이 크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자체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고성능의 컴퓨터 같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유전자로 미리 정해진 부분이 적고 가능성은 많이 가진 인간에게는 일거수일투족이 사실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의 연속이다.

다행히도, 인간은 오랜 유아기를 통해, 가족과 친척, 이웃, 친구등과 의 관계에서, 또 학교나 운동, 오락, 여행 등 여러 경험을 통해, 또 관찰과 얻어듣는 이야기, 책이나 신문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여기서 인간이 배우는 것은 여러 사물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관한 것과 , 가치관 내지 인격형성 등 모든 것이다. 물론 인간의 배움은 청·장년기를 통해, 아니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자주 접촉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사물에 대한 이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많이 흡사해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들이 배워 알고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대부분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하며, 많은 경우에 그 기대가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년이 되면, 그 들이 속한 사회에서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 어떻게 제도를 개선할 것인가: 제도라는 것은 대부분이 사회구성원 각자가 성장과정과 삶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배워 얻고, 쌓여, 그들의 일부가 된 것이다. 강제로 해서 쉽게 될 일이 아니다. 특히 보다 자유로운 사회를 위한 제도를 꿈꾼다면.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인간의 인식, 사고, 성장과 배움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렇게 얻는 지식들이 인간간의 관계를 통해 상당히 흡사하게 되고, 또 그래야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고 비교적 평화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인간의 배움의 과정은 인간 개개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 여러 사람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이 부분이 기업가정신을 이해하는데 요긴한 부분이다.

부의 창조 과정과 기업가 정신

거의 100 년 전 슘페터 (Schumpeter)가 지적했듯이, 기존 경제학의 “효용극대화”나 “완전경쟁”의 가설은 “경제인간으로 구성된 경제” 에서, 인간의 지식이 변화가 없는 사회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거의 완전하게 절충되어 있는 상태에서 가장 그럴싸한 이론이다. 그래서 기존 경제학은 경제발전을 외부에서의 충격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다.

슘페터는 경제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경제 내부에 있는 기업가의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기업가는 혁신적인 기업으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하면서 사회를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슘페터의 주장은 경제학에 큰 충격이었고, 그 이후에 많은 토론이 이었지만, 100 년이 지난 지금도 기업가라는 개념은 기존경제학에게는 이단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슘페터 자신의 이론에서도 “혁신적 기업가”가 정체상태 (stationary state)의 “경제인간” 과는 별도의 부류의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기존 경제학이 그 학설의 바탕이 되는 “경제인간”을 버리지 않는 한 “혁신적 기업가”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도대체 “경제인간”과 “평형상태”를 인정하지도 않는 커즈너(Kirzner)의 “남이 간과한 이윤의 기회를 발견하고 취하는” 기업가는 더 보편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커즈너는 기업가정신이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이윤의 기회를 발견하고, 취하는 것 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마치 기업가가 행인이 많은 길에서 십만원짜리 현찰 한 장을 줍는 것 같다고 한다. 이렇게 기업가가 이윤을 취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원이 개발되며, 기존의 자원들도 더 많은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부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슘페터의 기업가와 커즈너의 기업가는 다른 유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슘페터의 기업가정신은 커즈너의 기업가정신과 상충되지 않고, 오히려 보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기업가는 발명가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을 실제화 해 보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가치가 있음을 실증해 보이는 것이 기업가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가는 부를 창조하는 것이다.

커즈너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십만원짜리가 보이고, 왜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지는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인식구조로 보아, 각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쉽게 이해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여럿이 있으면, 시각과 이해가 같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번영을 위한 제도

여기서 제도란 풍습, 관습, 관행, 전통, 사상, 이념, 가치관,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 법, 규제 등 어떤 사회나 단체에서의 각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말한다.

사고와 행동의 자유: 기왕에 알려져 있는 부의 창조의 기회는 벌써 취해졌거나, 현재 취해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부를 창조해야 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누가 언제 기발한 발상을 할지, 언제 모두가 말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대박이 될지, 또 모두가 잘 될 것으로 확신하고 부러워했던 것들이 언제 망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구든지 자기가 좋은 기회를 발견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 기회를 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가 있다면, 그 사회는 부의 창조를 위해 항상 노력, 실험하는 사회가 될 것이고, 기업가들이 성공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하지만, 무리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억압하거나 못 살게 해서 억지로 따라오게 하는 것은 새로운 부를 창조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말살하게 될 것이다.

부를 창조하지 않고도 치부할 수 있는 길의 억제: 개인적으로 치부하는 길은 기업가로써 부를 창조하는 것 외에, 남의 것을 허락 없이 빼앗거나, 속여서 얻거나, 정치권력을 업고 특권을 통해 치부하거나, 정치권력을 이용해 뇌물을 걷어 치부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치열한 경쟁을 상대로 기업을 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당연히 부의 창조는 저조하게 될 것이다. 또 제 주머니에 십원을 넣기 위해서는 권력을 등에 업고 남의 돈 (세금)을 백 원, 천원, 만원 낭비하는 일을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편히 사는 세상이 되면, 경제는 어찌 될 것인가? 이 분야에서, 나는 한국이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왜 많은 젊은이가 전공에 관계없이 고등고시에 목을 매는가? 왜 많은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와 연줄 만들기에 연연하는가? 왜 거의 매일 정부관료, 군 장성, 기업, 시민단체의 비리가 터지는가? 이렇게 비리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만연하면, 원칙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국내에 사는 사람들은 익숙해서 잘 느끼지 못하는지 몰라도, 2014 년도 국제부패인지도에 의하면 한국은 43위이다.

한국의 부패정도가 폴란드나 슬로베니아만 못하고, 라트비아나 몰타와 비슷하고, 코스타리카나 조지아보다 조금 낮다는 것이다. 정당하게 얻어진 부의 보호: 세금제도, 각종 규제, 임의적 정치권력을 통한 탈취로 개인재산권보호가 약화된다면, 기업가의 동기가 많이 약화 될 것이다. 오히려 정권에 매달려 개인적으로 치부하겠다는 부류가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번영의 길은 멀어지게 된다.

사회여론과 정치에의 영향을 통해 부의 창조과정에 해(害)와 득(得)이 되는 사상과 이념: 해가 되는 사상은 부익부빈익빈, 몽테뉴의 도그마, 부의 분배의 불평등은 부당하다, 부자가 잘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고 빈자가 못해서 빈자가 된 것이 아니다, 평등 이상사회는 뜻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등의 “지식” 내지 믿음이다.

득이 되는 사상은 개인은 자유로워야 하며 각자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한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노력하면 성취가 있다, 내 권리는 지켜야 한다, 사람은 원칙대로 살아야 한다, 인간은 강제로 “좋은” 사람이 될 수가 없고 “좋은” 일을 강요당해서도 안 된다, 등이다.

   
▲ 각종 전략산업육성이 여러 나라에서 유행이다. 유행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부를 창조할 수 있는 산업은 꼭 미래지향적 첨단기술이나 과학이 아니다. 부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는 어느 분야에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전략산업육성을 관장하는 정부관료나, 정부가 고용한 전문가가 정말로 부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지, 또 그 기회를 취하기 위해 필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할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태도로 삶에 임한다면, 그들은 자기 일을 자기가 찾아서 하고, 열심히 일해 부를 생산하고, 자기 앞가림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지난 30년 사이에 부의 창조에 해가 되는 사상들이 한국을 지배하게 된 것 같다. 상전벽해라고 하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제도를 개선할 것인가: 제도라는 것은 대부분이 사회구성원 각자가 성장과정과 삶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배워 얻고, 쌓여, 그들의 일부가 된 것이다. 강제로 해서 쉽게 될 일이 아니다. 특히 보다 자유로운 사회를 위한 제도를 꿈꾼다면.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자유주의자가 제도를 개선하는 첫 단계는, 내가 먼저자유인으로써 사람답게 살 각오를 하고 변한 후, 남도 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하고, 자기가 세운 원칙대로 행동하고, 내 권리가 침해 당했을 때 떳떳이 주장하며 내 권리를 위해 싸워 되찾고, 다른 사람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 되었을 때, 힘이 되어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행동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적 번영에 해가 되는 잘못된 사상들을 비판하고, 사람들이 부의 창조과정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계몽하는 것이 먼저 깨우친 자가 해야 할 일이다.

기업가정신 입장에서의 경제정책 분석 - 일자리 만들기

일자리가 무엇인가? 피고용인이 넉넉한 봉급이나 일당을 받으면 다 일자리인가? 그렇다면 정부가 누구든 원하는 이를 고용해서 봉급을 주면 될 일인가? 그 봉급 줄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 봉급을 받는다고 다 일자리가 아니다.

오직 부의 창조과정에 참여하여, 거기에 부합하는 보상을 받는 것이 진정한 일자리이다. 봉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부의 창조에 동참하지 않으면서도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진정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창조한 부를 빨아먹는 흡혈귀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일자리는 기업가가 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만드는 것이다.

어찌 정부가 진정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망해가는 사업을 구제하는 것도, 경쟁력이 없는 산업을 보호하는 것도, 모두 부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부를 계속 파괴하면서 경제가 번영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투자 장려

아무데나 돈을 뿌린다고 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투자는 기업가가 부를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정부 관료가, 아니면 정책전문가가, 언제 어디에 어떻게 돈을 써야 부를 창조할지를 기업가 자신들보다도 잘 알고 있을까? 정치가 깨끗한 경우에도 투자장려는 낭비일 가능성이 크고, 부패한 경우에는 필히 정경유착이다. 정부의 과도한 교육에 대한 “투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각종 사회 보장제도: 속담에 “공짜면 양잿물도 먹는다”라고 한다. 사회 보장제도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남이 창조한 부를 (조금내고 많이 먹던지, 아예 하나도 내지 않고 먹던지) 나누어 먹는 제도이다. 남의 것을 거저먹으니, 맛이 있어 더 먹겠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또 남의 것을 힘들이지 않고 쉽게 먹을 수 있으니, 머리를 쥐어짜고 노력하여 어떻게든 부를 창조해서 살아가겠다는 기업가의 수가 줄어 들것이다.

조만간 정부의 재정이 조만간 파탄이 날것은 빤하다. 그런데도, 온정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생각하기에 도와 주어야할 사람들을) 도우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게 안타까우면, 그들은 먼저 사재를 털어 남을 위해 쓴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도 자발적으로 따라하도록 설득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동의는 안 해도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으리라. 허나, 자신들의 사재는 쓰지 않고 오히려 긁어모으기에 급급하면서, 남의 돈을 빼앗아서 저희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은 위선이고, 도둑놈의 심보이다.

전략산업육성

각종 전략산업육성이 여러 나라에서 유행이다. 유행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부를 창조할 수 있는 산업은 꼭 미래지향적 첨단기술이나 과학이 아니다. 부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는 어느 분야에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전략산업육성을 관장하는 정부관료나, 정부가 고용한 전문가가 정말로 부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지, 또 그 기회를 취하기 위해 필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할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븐 잡스가 그들이 할 수있는 기업들을 마다하고, 정부 관료로서 미국의 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설까? 만일 어떤 사람이 내가 진실로 부를 어떻게 창조할 수 있는지 안다고 우겨대면 믿어질까? 많은 경우에 전략산업육성이라는 미명하에, 정경유착이 이루어지고, 많은 재원을 낭비하면서, 몇몇 사람들이 쉽게 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친환경산업을 장려한다면서 많은 국가의 돈을 낭비한 것이 최근의 한 예이다.

   
 

이 위에서 주장된 기업가정신의 관점은 대체로 서구의 (전통적) 자유주의와 상통한다. 한 가지 독자적인 것이 있다면, 인간 개개인의 주관적 이해에 근거한 행동을 기반으로 한 이 기업가정신의 관점은, 기존의 (신고전주의적) 경제학과는 달리, 반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잘못 쓰일 가능성이 적은점이라고 생각한다. /최영백 교수(St. John’s University, NY.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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