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 타개 위해서는 지도자 따르는 진정한 조력자 필요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세계적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평생 연구한 동서양 신화의 키워드를 영웅으로 설명한다.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도 그리스 로마 신화나 발리 섬 힌두 신화를 죄다 관통하는 영웅이라는 신화적 존재를 묘사하기 위한 메타포 표현이었다. 천 가지 얼굴로 바뀌어가며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도전을 감행해 마침내 뜻한 바를 이룬다는 영웅의 줄거리가 그 모든 신화의 바탕이라는 학술적 발견이기도 하다.

이런 캠벨의 영웅관은 지금 메르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우리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그가 집대성한 대로 가장 친근하고 최고로 강력한 영웅은 그저 한낱 평범한 상식에서 생겨나오는 능력자 일꾼 이어서다. 많이 배운 엘리트 지식인이나 오로지 한 분야에 빼어난 전문가가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실제 주어진 문제를 극복할 줄 아는 독보적 해결사, 즉 능력자가 필요하다.

영화 <스타워즈>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크가 바로 능력자로서 영웅 이미지의 전형이다. 감독 조지 루카스가 술회했듯 캠벨 신화학과 영웅관은 <스타워즈>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길 떠나는 영웅이란 스토리도 캠벨 학술 연구에서 그대로 따온 재창조였다. 삼촌 숙모와 농사를 짓던 소년 루크라는 문제적 인간이 운명처럼 길을 묻게 되고 계시를 받고 조력자를 만나 길을 떠나 세상의 괴물들과 싸우게 되고 임무를 성취한 뒤 귀환한다는 영웅의 오딧세이로 숱한 할리우드 키즈들을 사로잡아왔다.

   
▲ 메르스 감염 진원지로 떠오른 서울삼성병원의 폐쇄된 응급실./사진=연합뉴스
이제 우리가 갈구하는 난세의 영웅에 관해 말해보자. 삼성서울병원장은 감염 분야 최고 권위자이고 병원경영 전문가이지만 여태 고객들을 구하지 못하고 끝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사장이자 삼성생명공익재단 대표도 대한민국 최고 수준 홍보전문가이자 최고지식경영자(CKO: Chief Knowledge Officer)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이번 사태에서만큼은 속수무책이었다.

보건복지부장관도 뜯어봐야 한다. 사람들은 그가 보건 분야 문외한이고 비전문가라서 화를 키웠다고 맹비난하는 중이지만 사실 그 장관도 부처를 3년째 이끌고 있는 행정 전문가 반열에 들어와 있고 아이비리그 명문 펜실베이니아대학 박사 출신 최강 지식인이다.

총리가 없어 상황이 더 꼬였다지만 대행하는 최경환 부총리도 어엿한 고시 출신 엘리트요 미국 위스콘신 대학 박사인 글로벌 지식인이요 전문가 리더다. 더구나 존재감 묵직한 실세 부총리에 이미 경제부처 팀워크를 다질 대로 다져놓은 절정기 야전 사령관에 해당한다.

대통령은 어떠한가? 정치 9단 김영삼 김대중 예전 대통령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치 전문가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는 물론 역사, 문화, 경제에도 해박한 지식인 그대로 모델이다.

그럼에도 고작 더벅머리 주근깨투성이 방황하는 청소년에 불과했던 <스타워즈> 주인공 루크 반이라도 닮은 영웅 하나 여태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건 왜인가? 세계의 보건 대통령이라 불렀던 WHO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가 다시 환생이라도 해야 이 난세를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민심을 잃고 있던 관료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토록 믿었던 삼성마저 나무에서 떨어지듯 다른 것도 아닌 최강 핵심역량 관리 시스템에서 무너져 큰 실망을 안겨 준 이 상황은 정말 괴롭다.

사방이 꽉 막힌 이런 위기는 신화 속 영웅이 떠난 여행길에 닥친 최대 시련인 ‘고래 뱃속’이라고 조셉 캠벨은 비유한다. 고래라는 큰 장벽에 잡아 먹혀 바닥모를 저 깊은 심연에 처박힌 신세라는 얘기다. 최악의 상황은 비켜갈 수 없다. 오히려 이럴 때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능력을 발휘하는 자가 바로 영웅 캐릭터가 된다.

   
▲ 메르스 난국에 드러났듯이 우리들의 지도자 지식인 전문가들은 조력자는커녕 냉랭한 질타와 무시, 외면 가득한 차가운 군중들 속에 내동댕이 쳐있다. 소통 못 한다고 돌도 던진다. 정신 차려 소통하려 해도 직원들이 고객들이 구경꾼들이 알아듣지 않고 도와주지 않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이 때 중요한 것은 영웅 곁에는 조력자가 꼭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히어로 메이커. 어떤 문제적 인간을 진정한 영웅으로 만들고 영웅이 떠나는 오딧세이 전 구간을 동행하며 의지하도록 어깨를 빌려주는 벗으로서 조력자가 없이는 영웅도 영웅담도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 부분이 메르스 난국이 장기화함에도 여태 단비 같은 영웅이 나오지 않았던 결정적 요인이 되어버렸다. 지시나 의견을 알아듣지 않고 속으로는 영웅을 원치 않는 껍데기 조력자들만 가득했다는 얘기다.
병문안 문화만 봐도 꼭 그렇다. 전문가가 면회시간을 지정해 말해 두어도 사람들은 당최 듣질 않는다. 무시한다. 응급실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이라는 디지털화를 최고지식경영자가 서둘러 추진해도 의료진들은 오랜 관행으로 일해 왔던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고수해왔다.

일선 공무원과 담당관들은 보고서마다 그렇게도 ‘선제적 대응’이라 적어대고 노래 부르다시피 해왔지만 문짝이 고장 나기 전까지는 결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서는 그 어떤 지식인이나 전문가가 리더를 맡아 해도 난세의 영웅이 될 수 없는 열악한 구조가 가로 놓여 있다는 실상이다. 은닢 같은 지식과 전문성이 그 아무리 높아도 일선 현장 일꾼과 관계자들이 알아듣고 따라하고 실천해가며 서로 돕는 풍토가 없다보니 ‘말짱 황’이라는 말이다.

조력자 없이 고립된 지식인과 전문가 또는 지도자는 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성공하는 영웅이 되는 길을 떠날 수 없다. 1978년 첫 <스타워즈> 영화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서 조력자들인 오비완 케노비(알렉 기네스 연기), 한 솔로(해리슨 포드 연기)가 각각 아버지와 인연, 모험심으로 주인공 루크를 보듬지 않았더라면 그 멋진 영웅은 탄생할 수 없었다. 조력자의 값진 희생이 나오고 이에 빚진 영웅의 결연한 의지가 빛을 발휘해야만 한 편 훌륭한 영웅담이 완성될 수 있게 마련이다.

이에 비하면 이번 메르스 난국에 드러났듯이 우리들의 지도자 지식인 전문가들은 조력자는커녕 냉랭한 질타와 무시, 외면 가득한 차가운 군중들 속에 내동댕이 쳐있다. 소통 못 한다고 돌도 던진다. 정신 차려 소통하려 해도 직원들이 고객들이 구경꾼들이 알아듣지 않고 도와주지 않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간신히 대화를 시도해도 ‘응급실로 이송할 때 마스크 착용하자’는 상식을 지워버린 요원들은 아무 반응이 없다. 공공보건 예산을 늘려 예방해야 한다는 상식을 잊은 공직자들과는 아무리 선진화를 논해도 소용이 없다. 환우 가족들에게 면회 시간을 지켜달라고 단속해도 눈썹 하나 까딱 않는 몰상식에 방역도 위생도 얼어붙어 버렸다.

이런 상식과 의지가 문제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리더십과 소통, 수준 높은 전문성과 지식을 키워주고 받쳐주는 조력자들의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과 그 상식을 지키고 따르는 행실이 관건이라는 게 이번 메르스 사태의 중요 발견이 되어주었다.

리더도 꼭 필요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 조력자들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한다. 지식인과 전문가, 높은 사람이라는 이름표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 해결형 능력자로서 스스로 변신할 줄 아는 영웅의 직감을 꺼내들어야 한다. 조력자는 지식과 전문성을 우러러 봐달라고 하는 리더는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영웅의 위엄과 향기를 직접 맡아봐야만 조력자도 운명을 걸 수 있다.

이렇게 조력자도 영웅도 모두 능력자가 되길 힘써야 한다. 조력자 없는 지식인과 전문가 리더는 고립된 사령관일 뿐이다. 묵묵히 밀어주고 받쳐주는 히어로 메이커, 조력자가 되길 한사코 귀찮아하는 무관심과 몰상식을 확 날려버려야만 진정한 대박 영웅담의 명예로운 출연진이 될 수 있으리라.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