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투자로 대응…미 연준 3월 빅스텝 가능성 '제로'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뉴욕주의 대표 가상자산 은행인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SVB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샌프란시스코 소재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사태의 시발점이 된 SVB의 파산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VB는 △초저금리 당시 급증한 예수금 △지나친 기업예금 비중 △금리상승기 잘못된 채권투자 전략 등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뉴욕주의 대표 가상자산 은행인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SVB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샌프란시스코 소재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SVB가 미국 전체 은행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못 미치는 만큼 피해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지만, 중앙은행의 거듭된 금리 인상이 '은행 파산'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14일 송기종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 금융평가3실장은 스페셜리포트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송 실장은 SVB의 예금 지불정지 사태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적으로 코로나19 이후 예수금 급증을 언급했다. 당시 연준은 경기부양을 위해 극단적인 저금리 정책을 펼쳤는데, 현지 주요 고객들의 유동성 자금이 증가하면서 은행 예수금도 덩달아 커진 것이다. 

이 은행은 고객 자금을 유동성이 높은 안전자산에 투자해 유가증권 비중을 크게 키웠는데, 2021년 말 자산 증가 규모가 141억 달러(한화 약 18조 4245억 원)로 2019년 말 대비 3배 이상 폭증했다. 유가증권이 99억 달러(12조 9363억 원)로 증가해 자산의 71.3%를 차지했고, 대출이 41억 달러(약 5조 3575억 원)로 23.8%에 불과했다. 

유가증권은 주로 미국 국채, MBS 등 채권, 지방채 등 안전자산으로 꾸려졌다. 신용위험이 있는 채권이나 펀드 비중은 3% 내외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러한 장기 채권 중심의 포트폴리오가 금리 상승기와 맞물려 취약요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SVB가 보유한 채권 대부분은 만기 10년 이상의 채권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서 부실이 표면화된 것이다. 은행으로선 초저금리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안전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인데, 연준의 금리정책에 허를 찔렸다는 분석이다. 

시중금리 급등으로 고객들의 유동자금이 줄어들고, 요구불예금이 이자지급부예금으로 이동하자, SVB도 많은 이자를 제시하는 이자지급부예금을 확대하고, 일부 중단기 채권을 매각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 여파로 보유 채권의 가중평균 만기는 상승했다. 또 예금이자 증가에 따른 이자비용 증가, 채권 관련 평가손실 등이 어우러져 지난해 SVB의 수익성 지표는 급격히 하락했다. 금리 급등 속 고객을 잡기 위해 취한 조치가 재무구조를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파산의 트리거는 지난 8일 당겨졌다. 당시 SVB는 주식시장 폐장 이후 22억 5000만 달러(약 2조 9400억 원) 규모의 자본확충 계획을 발표하면서, 210억 달러(약 27조 4575억 원) 규모의 투자채권을 매각해 18억 달러(약 2조 3535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하루 뒤인 9일 이 회사 주가는 전날 대비 60.4% 폭락했고, 불안함을 감지한 기업들이 대거 예금을 인출하면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으로 이어졌다. 이 은행 예금자보호대상 예금은 3%에 불과했다. 

이에 미 정책당국은 10일 은행 폐쇄 및 예금 지불정지를 결정했다. 또 지난 12일 미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맡긴 고객 예금을 보험 한도와 무관하게 전액 보증하기로 조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SVB 경영진 해고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송 실장은 미 상업은행 총자산의 1%에 불과한 SVB 사태에 금융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로 '금리상승이 은행 및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SVB와 유사한 은행에 예금을 예치한 고객들이 대거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한편, 안전자산 투자 선호 현상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SVB와 비슷한 규모의 은행들을 중심으로 추가 뱅크런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미 SVB 사태 이후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했고,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존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송 실장은 "SVB 규모의 은행조차 급격한 금리 상승 시기에 금리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면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유사한 문제에 봉착한 은행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뱅크런의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고, 금융시장이 SVB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기존의 판단 방식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오는 23일 열리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기준금리 인상도 불투명해졌다. 당장 시장에서는 금리인상 가능성을 매우 희박하게 보고 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Fed워치에 따르면 3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전망한 전문가 비율은 지난 11일 40.2%에 달했지만, 이틀만인 13일 19시 기준 '0%'로 급락했다. 반면 금리동결 전망은 0%에서 41.7%까지 치솟았다.

송 실장은 "이번 SVB 사태는 가파른 금리상승의 부작용이 금융시장에 스트레스 정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Fed 입장에서 향후 정책금리 인상폭과 속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또 "과거 경험을 보면, 가파른 정책금리 인상은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금융시장에 여러 가지 파열음을 내는 방식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이번 SVB 사태는 Fed의 정책금리 인상 여력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