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없는 정치의 원인은 ‘말의 맛’ 사라진 화법에 있다
   
▲ 이원우 기자

‘금수저’라는 해묵은 유행어가 한국을 떠돌고 있다.

고도성장은 끝났다. 2030의 인생은 지금까지가 전성기요 앞으로는 어두워질 일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삶의 변동 폭도 어린 시절 꿈처럼 드라마틱하지 못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자수성가는 해내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쉽지가 않은 게 작금의 현실이다. 재능기부. 열정페이. 비정규직. 최저임금.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는 것 같다.

도시 곳곳을 빼곡히 채운 수많은 건물들 중에 내 소유의 1평도 없다는 막막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야말로 ‘금수저 콤플렉스’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부모님 도움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에 월등히 유리한 출발을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노라면 딱히 질투 많은 성정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이런 말을 뇌까리는 것이다.

“금수저가 갑이구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청년층의 거리감은 현 대통령이야말로 일종의 ‘금수저’라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둔 그녀의 가족사에 비극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비극이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고 판단하는 게 역대 그 어떤 세대보다도 냉정한 2030의 사고방식이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말솜씨는 그녀를 ‘금수저’로 느끼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한다.

“우리의 핵심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그 각오와 그 다음에 여러분들의 그 깊은 마음의 상처는 정말 세월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정도로 깊은 거지만….”

“그 트라우마나 이런 여러 가지는 그런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이렇게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 대통령이라는 특권은 그녀의 진의(眞意)를 언론들이 알아서 풀이해 주는 호사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타인의 필터를 거치는 과정에서 말의 맛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에 ‘감동’이 증발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진=페이스북 페이지 '박근혜 번역기' 캡쳐

아무리 뛰어난 스펙을 가진 청년이라도 면접장에서 이렇게 말했다간 문전박대를 각오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라는 특권은 그녀의 진의(眞意)를 언론들이 알아서 풀이해 주는 호사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타인의 필터를 거치는 과정에서 말의 맛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에 ‘감동’이 증발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통과하면서는 급기야 ‘박근혜 번역기’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의 언어를 번역해 보자는 고난도 풍자가 시작된 것이다. 위급상황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민낯을 드러낸 대통령의 말솜씨는 청와대와 청년들의 거리를 실시간으로 떨어뜨려 놓는다.

정치는 '말'의 예술이다. 그런데 정치의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의 화법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울리기는커녕 비웃음만 사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국어교육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수준이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장난처럼 시작된 ‘금수저’ 오명에서도 끝내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부디 대통령의 참모들은 핵심목표는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국가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