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승소 피해자 추심 소송 제기…공탁 등 법적 충돌 예상
한일 정상 ‘새 선언’도 기시다 사죄 발언도 없어 갈등 심해질 가능성
전문가, 윤대통령의 피해자 직접 설득 필요 제기 “국가 차원 피해자”
독도·일본군 위안부·군함도 등 과거사 문제에 외교력 발휘될지 우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정부는 지난 6일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승적 결단’을 내렸지만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다고 밝혔다. 그리고 16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특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입’에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결국 기시다 총리의 명확한 사죄 발언은 없었다. 그는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하면서도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 계승한다”고 했다. 그 입장에는 일본 우경화를 이끌면서 장기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의 입장도 포함돼 있을 것이므로 모호함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한일 정상간 새로운 선언 발표에 대한 기대감을 모았던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만남 이후 이제 강제징용 문제는 한일 간 문제가 아니라 ‘국내 문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한일 정부간 반목을 끝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 내 갈등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벌써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씨와 고인이 된 다른 피해자 1명의 유족 6명은 15일 서울중앙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추심금 소송을 냈다. 대리인단은 “기존 현금화 절차에서 필요했던 경매 등 절차없이 1심판결에서 원고가 승소하고 가집행 판결까지 나오면 곧바로 국내법인에 대한 금전 채권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씨와 또 다른 피해자 김성주 씨는 이미 미쓰비시중공업이 보유한 한국 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에 대한 법원의 압류명령을 받아냈고, 5억여원 상당의 특허권·상표권 매각 결정도 받은 바 있다. 다만 미쓰비시중공업이 매각명령에 불복해 항고하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 일본을 1박2일간 실무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3.16./사진=연합뉴스

여기에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빈털터리’라고 표현하며 비판했다. 이들은 “가해자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책임을 피해국인 한국이 대신 뒤집어씀으로써 대한민국 사법부의 결정을 무력화시켰다”며 “구상권조치 포기한 것은 사법주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 자체로 헌법 위반이자 탄핵 사유”라고 주장했다.

당초 정부 해법 발표 이후에도 외교부 당국자는 “피고기업이 우리측 재단의 기금 조성에 참여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솔직히 말한 바 있다. 그런데 한일 정상회담 개최 당일 발표된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미래기금)에도 일본 피고기업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두 단체는 앞으로 차차 기금 규모를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일본측이 대법원 판결을 배척하는 태도가 지속되고 있어 문제이다.

결국 이런 분위기에서 재단 기금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정부가 법원에 공탁금을 내는 방식으로 배상을 이행할 경우 법적 다툼은 계속될 전망이다. 피해자측 대리인단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에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문서를 보낸다는 방침이다. 일찌감치 예고된 일부 피해자측의 장기 법률분쟁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일본정부가 199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일제강점기 모든 강제동원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일본의 호응 조치는 부족할 수밖에 없고, 기시다 총리의 직접 사죄를 이끌어내지 못한 만큼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직접적인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즉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피해자와 소통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남았다는 지적이다.

   
▲ 일본을 1박2일간 실무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의장대 사열을 하기에 앞서 가슴에 손을 얹어 태극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3.3.16./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현대일본학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해법을 발표했으니 남은 것은 일본의 행동하는 양심에 있다고 본다”며 “정부 해법이 끝이 아니라 선도적 차원의 시작이라면 굴욕외교라고만 볼 수 없고, 이제 윤 대통령이 직접 피해자를 만나 소통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학교 교수도 “불가피하게 제3자 변제로 해결하지만 구상권 청구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법률적으로 완결되지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국가 차원의 피해자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품어야 하고, 최종적으로 균형잡힌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이제라도 국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국회를 통한 국민 합의로 매듭지으면 어떨까 제안한다”며 “한일 간 갈등구도가 국내정치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으므로 국회에서 결론 나면 정권이 바뀌어도 문제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부가 피해자를 상대로 설득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은 강제징용 외에도 독도, 일본군 위안부, 군함도 등 남아 있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외교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청했다는 일본언론 보도가 나왔다. 계속해서 한일 간 민감한 쟁점들이 불거질 것이란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윤석열정부가 한일관계를 풀 해법을 ‘선제적으로 마련했다’고 설명한 만큼 당연히 일본의 성의 있는 후속조치를 이끌어내야 하는 외교적 과제가 남았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식민지배라는 역사가 남긴 고통과 손해를 ‘대승적으로 결단’해 해결하려고 나섰으니 피해자는 물론 국내 반대여론에 대한 대응에 한계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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