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 최대치인 '주69시간 프레임' 씌워져 실패…숫자에 민감한 대중심리 간과
어젠다 뒷받침 못한 정치공학 한계…새 정책, 선동선전 가능성 감안해 추진해야
자세한 설명보다 '한달 휴가 가자'로 캐치프레이즈 세웠다면 MZ반응 달랐을 것
   
▲ 정치사회부 김규태 차장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쉴 땐 몰아서 쉬는 형태를 하며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지지 않는 전제 하에 현실에 맞게 개편하려는 좋은 취지에도 주 69시간제 아니냐는 문제가 부각되면서 쓸데 없는 논쟁에 들어가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무적 감각을 동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3월 16일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서 김기현 당대표 발언)

"윤석열 정부의 주 69시간 근무제 추진은 '과로사(Kwarosa)'라는 우리 말(표기)을 그대로 외신에 보도되게 하는 등 국제적 우려를 낳고 있다. 노동자를 과로사로 내모는 살인근무제다. 작년 기준 대한민국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5위다." (3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박홍근 원내대표 발언)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이 열흘만에 좌초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사실상 새 정책 홍보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안에 대해 민주당과 언론이 (최대치로 계산한) 주 69시간제 프레임을 씌우는데 성공했고, 이것이 숫자에 민감한 대중 심리를 파고들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정책 실패는 노동시장 유연화·선택권의 확보·일할 자유 및 쉴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어젠다를 뒷받침하지 못한 정치공학적 한계로 읽힌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 대통령실·고용노동부·집권여당 간 커뮤니케이션 난맥상이 노출되면서, 윤정부가 새 정책을 시행에 옮기려면 대중에 대한 선동·선전 가능성을 감안해 추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주 52시간제 보완으로 이미 시행하고 있는 탄력근무제는 특정주에 최대 64시간 근로가 가능하다.

기존 탄력근무제를 유연근무제로 개편하려 했던 정부안에 따르더라도, 최대 5시간 더 일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에 야당과 언론에서 십자포화를 쏟아댔던 '주 69시간제 프레임'은 기존 근무제보다 고작 5시간 더 추가한 정부안을 왜곡해 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실제로 근로시간제 개편 논의에 참여했던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한 위원은 "개편안을 주 60시간 미만으로 하면 현행 주 52시간제와 비교해 어떤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기존 취지와 달리 69시간제와 같이 특정주 프레임이 부각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했다"고 전했다.

솔직히 현실을 직시하자. 대중에게 먹히는 것은 자세한 설명이 아니다. 바로 기민한 선동·선전이다.

사전에 비공개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중 욕구와 근로자들의 실제 수요(Needs)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프로모션 이미지를 설계했어야 했다.

가령 정부가 새 정책을 소개했던 처음부터 '5시간 더 일하고 한달 휴가 가자'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면, MZ 등 젊은층의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특히 이 캐치프레이즈에 따라 '더 일해서 돈을 더 벌 자유를 누가 막고 있나', '그만큼 더 쉬어서 유럽·미국처럼 길게 휴가갈 자유를 누가 막고 있나'라면서 유연근무제를 가로막고 있는 '공공의 적'을 설정했다면, 상황은 반대였을 것이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거대노조 등 노동계·언론노조가 주도하는 언론계 모두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은 피하려고 했을 것이고, 그렇게 진행됐다면 이번처럼 유연근무제가 쉽사리 좌초되진 않았을 것이다.

향후 대통령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젊은 근로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 적합성, 실현 가능성이다.

정부가 개편안을 어떻게 내더라도 그것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한국의 모든 노동시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고, 근로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잡혀야 한다.

장기간 휴가를 갈 수 없고 근로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노동 현실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대통령실과 정부가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짜서 제시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