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의 시청률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 첫 방영된 지난해 5월만 봐도 7.1%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MBC의 효자 프로그램이었는데, 이젠 화제성과 인기가 시들해졌다. '오은영 박사'라는 치트키도 주춤한 모습이다.

프로그램의 변곡점은 아동 성추행 논란이 있었던 지난해 12월이다. 5~6%대 시청률을 오르내리던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은 고정 시청자들이 이탈하며 활기를 잃었고, 재정비 후 3개월이 지난 지금 2~3%대의 초라한 성적표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날(20일) 방송은 7주 만의 시청률 반등에 성공했지만, 이러한 흐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미지수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시청률(닐슨코리아). /사진=네이버


안타깝다. 방송이 별로라면 안 보면 그만이고, 자연스럽게 뒤안길로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그러기엔 아까운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 되었다는 부부들의 위태로운 일상을 관찰하고, 그들이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해 오은영에게 그간 말 못한 고민을 털어놓고 해법을 찾아가는 리얼리티 공감 토크 프로그램이다.

심리 전문가 중의 전문가 오은영이 전하는 분석과 사려 깊은 솔루션이 프로그램의 메인이다. 특히 개인의 기질이 어떤 언행으로 발현되고 일련의 사건들로 이어지는지, 퍼즐 조각을 맞춰 맞춤 리포트를 제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역시 오은영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보는 사람들만 본다. 매 회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면서도 현실적이어서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에 좋은 조건일 텐데, 좀처럼 새로운 시청자가 유입되지 않는다.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은 왜 시청자들에게 외면받는 걸까.


   
▲ 사진=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 부정적인 기운의 프로그램명, 진입장벽 높여

한 차례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려면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결혼은 지옥'이라는 간판을 내놓고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 제시하겠다고 하니 황당하다. 포장지를 뜯어보면 굉장히 유익한 결혼생활 지침서이자 오답 노트인데,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냉소로 얼룩진 '결혼지옥' 타이틀이 방송과 오은영이라는 브랜드에 먹칠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명은 첫인상을 형성하고, 프로그램의 내용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tvN '벌거벗은 한국사'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의 날것 제공을 예고하고,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가족적이고 친근한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 사진=tvN '벌거벗은 한국사',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포스터


향후 리뉴얼의 기회가 있다면 프로그램명에 변화를 주는 것도 제작진이 재고해볼 만한 요소다. 아무리 결혼율과 출산율이 감소하고 전통적인 가족관이 무너지는 추세라고 해도, 결혼생활은 만인에게 가장 보편적인 소재다. 이 가운데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은 갈등을 촉발하는 부부관계의 뿌리를 살펴보고, 가정 내 성 역할에 대해 재논의하고,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며 부부의 화합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타이틀만 보면 결혼생활은 지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 같다.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은 비혼 권장 프로그램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만든 비극을 안타깝게 여기고, 부부관계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기획과 의도에 걸맞게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도 따스한 타이틀과 슬로건을 내걸어야 했다. 부부가 처한 상황이 결혼을 지옥처럼 느끼게 만들 순 있지만, 잠시 길을 헤맨다고 해서 이들이 영원한 수렁에 빠진 것은 아니다.

▲ 꼭 심각해야 할까? 시청자는 지친다

요즘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을 보면 너무나도 지친다. 배우자의 끝없는 고통 호소, 수십 년간 이어지는 문제 행동, 외도 행위,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 등 자극적인 소재는 끝없이 이어지고 부부간 갈등의 깊이도 감히 헤아릴 수 없어 감정적 소모가 크다. 심각한 이야기만 계속되고, 불행 포르노가 연속되니 매 회 지켜보기 피곤해진다.


   
▲ 사진=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방송 캡처


각 부부의 결혼생활에 난이도를 매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가벼운 사연으로 분위기를 환기할 필요성을 느낀다. 최근 수 년간 대한민국을 강타한 '깻잎 논쟁'처럼, 사소한 이야기도 모두의 담론이 될 수 있고 생활밀착형 마찰이 모든 부부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 사진=영화 '극한직업' 포스터, SBS '런닝맨' 방송 캡처


비슷한 이야기로 2019년 영화계를 놀라게 한 작품이 있다. 바로 '극한직업'이다. 어깨에 힘준 대작들이 철저하게 외면받던 당시 이병헌 감독의 말맛 가득한 코미디 폭격은 최종 관객 수 1626만명을 끌어모으며 역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만한 영화가 필요했던 관객들의 갈증에 유효했던 것이다. 깊은 교훈도 메시지도 없었지만 즐거웠고 공감 갔다. 영화는 관객을 위한 서비스를 다 했다.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도 그랬으면 한다. 의붓딸의 엉덩이를 찌르는 남편의 문제 행동을 강조하고 비판점을 생략해 아동 성추행 논란이 번진 선례처럼, 부부의 문제에 굳이 자극적인 포장지를 씌우지 않아도 된다. 보통의 삶에 귀기울이고, 선한 손길을 내밀고, 부부와 시청자들을 치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오은영의 외로운 레이스, 조력자 있어야

관찰 예능 포맷에서 진행자는 출연자와 시청자 간 감정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출연자가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거나, 출연자와 관련한 이야기나 배경 설명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역시 여타 예능과 비슷하게 오은영을 포함해 5명의 진행자를 가용하고 있다. 소유진, 하하, 박지민, 김응수까지 각계각층을 대변하는 구성은 좋지만 이들의 역할은 장단 맞추기나 너스레, 정서적 편들기에 치중돼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예능이었다면 부족함 없었겠지만, 교양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한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는 붕 뜨는 느낌이다. VCR을 지켜보고 솔루션을 전하는 장시간 녹화 속 오은영에게 부담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사진=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방송 캡처


물론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오은영 게임' 등 오은영 원톱 체제의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즐비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아동 심리 전문가인 오은영의 전문 분야고, 성인들의 문제 상황에는 더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문제 파악과 해결을 오은영의 시선에만 의존하고 있다. 진행자들은 다른 가능성을 짚거나, 해석을 내놓거나, 해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부부의 문제는 권위자의 숙제로 미뤄둘 뿐 이들의 기능은 순전히 말 얹기에 그쳐 있다.

같은 실험 결과를 받아도 학자들 간 해석은 제각기 다르다. 모든 문제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지니고, 결과를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이론도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해석들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은영도 완전무결한 해결사가 아닌, 가능성을 제시하는 전문가의 한 명이다. 수많은 부부 문제를 마주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텐데, 이를 오롯이 혼자서 결론짓고 풀어가기 힘에 부칠 것이다. 힘을 싣는 부연, 다른 시각,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선한 기획 의도 속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 장기 레이스를 펼치기 위해서는, 제작진의 사려 깊은 보완이 필요하다.


   
▲ 사진=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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