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임창규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삼성이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껍데기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19일 서울법원종합청사 358호 법정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민사수석부장) 심리로 열린 주주총회 소집·결의금지 및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사건 기일에서 엘리엇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삼성 오너일가의 지배권 승계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엇 측 대리인은 "삼성물산 자체의 이익보다는 오너 일가의 지배권 승계작업을 원활하기 위한 목적이자 수단의 한 방법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려 한다"고 말했다.

엘리엇 측은 "가장 중요한 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4.1%이다. 시가로만 8조원 넘는 자산인데 수치로 가늠하기 힘든 다른 중요성이 있다"면서 "삼성은 오너 일가가 순환출자 방식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형국인데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는 오너일가가 어떤 형태로든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엘리엇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한 합병을 통해 수직계열화한 지배구조를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엘리엇 측은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는 상대가 안 되는 규모의 회사이고 합병비율은 지나치게 불공정해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주가라는 것은 시장참여자들의 평가가 종합된 가장 객관적인 가치다. 주가로 상장법인의 다양한 가치평가가 이뤄지는 것이 법의 입장"이라며 "합병비율이 주가를 따르는 건 법에 명확히 규정된 것이며 따르라는 명령이다. 그렇지 않으면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고 반박했다.

삼성 측은 "합병비율에 관한 판례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합병을 무효로 한다. 허위자료에 의하거나 터무니없는 예상수치에 근거한 경우만 해당된다"면서 "주가가 주당순자산가치의 3분의 1 미만인 경우도 대법원 판례는 합병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삼성 측은 "국내 주요건설사 주가는 2012년을 100으로 보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2014년 하반기 이후엔 더 하락한다. 삼성물산만 비정상적으로 하락하거나 그 시기에 합병이 결정된 건 아니다. 신청인(엘리엇)의 공정가치 실현 시점은 삼성물산의 역대최고가 이상, 제일모직의 역대최저가 이하까지 기다리라는 것으로 그동안 한 번도 실현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 측은 이어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주주들은 본질적 권리인 의결도 못하게 된다. 신청인의 악의적인 주주권리 행사도 고려돼야 한다"면서 "신청인의 주주제안은 주식자산, 아마도 삼성전자 주식을 현물배당하라는 것이다. 중간배당을 통해 주식자산을 다 빼가서 삼성물산을 껍데기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 9일 합병 비율이 자산 가치가 큰 삼성물산에 현저히 불리하고 제일모직만 고평가됨으로써 삼성물산의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며 내달 17일 합병 주총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또 지난 11일에는 삼성물산이 자사주 899만주(5.76%)를 우호관계에 있는 KCC에 매각한 것이 불법적인 자사주 처분으로 주주들의 의결권을 희석시킨다며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냈다. 엘리엇은 전일 보도자료를 통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지지한다"면서도 "합병안이 불공정하고 불법적이며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심각하게 불공정하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전날 이사회에서 엘리엇 측이 주주제안한 현물배당·중간배당안을 주총 의안으로 확정했다며 '정공법'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