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미래기획위원장 "신통일미래구상, '민족' 아닌 '정치체제' 통일 문제로 다뤄야”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남북대화를 할 때에도, 동맹국은 물론 중국·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대한민국의 통일구상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립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통일구상은 헌법 4조에 따라 '민족 통일 문제'가 아니라 '정치체제 통일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통일부 장관 자문기구로서 지난 15일 출범한 통일미래기획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영호 위원장(성신여대 정치외교학 교수)은 “남북이 다른 정치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어떤 협력도 환상에 불과하다. 통일을 정치체제의 문제라고 여길 때 현실적인 방안도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남북통일 방안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 화해하고 협력해서 연합하면 통일국가도 완성할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1990년 평화적으로 통일했던 예멘이 아직까지 내전 중인 것을 보더라도 다른 정치체제의 연합이나 연방은 ‘전쟁의 초대장’에 다름없다”면서 “자유와 평등이 빠진 다른 정치체제로는 북쪽의 고려연방제 주장이나 남쪽의 남북연합 주장 모두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6.23선언 7.7선언 햇볕정책 잇는 새 전략구상 필요”

김 위원장은 “앞으로 위원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현재 국제정세에 맞고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염두에 둔 신통일구상을 정립하는 것”이라면서 “박정희정권의 6.23선언, 노태우정부의 7.7선언,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을 잇는 새로운 전략적인 구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국제정세는 여전히 자유진영 대 독재진영으로 양분화되어 있고, 자유진영끼리 서로 전쟁하는 경우가 없는 것처럼 남북도 정치체제가 맞으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남북이 정치체제만 맞으면 한동안 ‘1체제 2국가’를 유지해도 문제가 없다. 따라서 통일 문제는 평화와 직결돼 있고, 평화를 위해 북한인권 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는 현재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의 근간을 설명한 것으로, 김 위원장은 최근 통일부가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싫어하고 남북대화에 걸림돌이 되니까 그랬겠지만 그래서 ‘북한 눈치보기’란 비판을 받았다”며 “대북정책과 통일 방안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에 맞는 원칙을 천명하고 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체문화 대항할 제2의 문화 형성 주목해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 검토”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북핵 문제 해결 방안도 지금까지 남북경협만 연계하던 것에서 인권 문제까지 더하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1975년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소련 중심의 바르샤바동맹 간 체결한 ‘헬싱키 협정’을 근거로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인권 감시와 압박이 가능했고, 이것이 공산권 붕괴의 원인으로 평가받게 된 것을 말한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은 결국 북한주민에게 자유를 누릴 권한을 부여해주고 힘을 실어두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즉 “우리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인권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으로 남한영상물을 본 주민을 부당하게 처벌하는 북한 당국에 압박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동서독과 달리 지금 남북 당국간 어떤 합의도 없었지만 많은 북한주민들이 지금도 몰래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현상은 북한 내부에 대안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 김영호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성신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그는 “이미 북한에서 주체문화에 대항하는 제2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평양문화어보호법을 만들고, 공개처형하는 것이다. 북한인권 문제를 공론화시켜서 한국영상을 보는 북한주민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북한의 유능한 인재들이 사이버해킹범죄에 이용당하지 않고, ‘평양 실리콘밸리’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김정일 정권 때 북한 당국은 유럽국가와 외교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인권 개선을 약속했었다. 당시 유럽국가들이 북한에 인권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선례가 있는 만큼 북한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북단일팀 논란 보듯 미래세대 통일시각 반영하는 패러다임 전환 필요”

이제 다시 신통일구상 주제로 돌아가 김 위원장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우리 젊은이들은 남북한 단일팀 구성에 반대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남한에서 국가대표선수가 수년간 노력해서 올림픽에 출전 자격을 땄는데 그 개인권리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박탈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북한도 단일팀을 구성해서 참가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런 미래세대의 의견을 반영할 때에도 통일 문제를 더 이상 민족 패러다임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사실상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개념으로 재정립해야 할 때”라며 “1973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포함한 6.23선언이 발표됐을 때부터 남북한을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보는 것이 맞다. 사실상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로 보고 통일·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김일성 주석이 ‘하나의 조선’을 주장해온 만큼 북한은 남북 동시 유엔가입을 반대했지만 이후 노태우정부 시절인 1988년 남북대화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와 경제교류 및 수교하는 7.7선언을 발표하고 북방정책이 추진되자 중국과 소련이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을 지지했고, 1991년 북한은 어쩔수없이 우리보다 먼저 유엔에 가입서를 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노태우정부의 7.7선언과 북방정책은 ‘노태우 독트린’으로 불릴 만큼 재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역대 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선언까지 잘 분석해서 신통일구상을 준비하겠다”면서 “중요한 것은 한국이 어떻게 할 것인지 원칙을 천명하는 것이다. 또 미래세대들이 통일 문제에 대한 시각을 반영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대한 구상의 ‘에스크로 계좌 개설’은 대북제재 완화 방안” 

마지막으로 김 위원장은 “지금 한반도는 안보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결국 군비 경쟁을 하면 할수록 더 위협받을 수박에 없다”고 우려하면서 “북한은 ‘담대한 구상’에 포함된 ‘중립계좌(에스크로 계좌) 개설’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화 테이블에만 나와도 제재 완화도 가능한 제안이므로 김정은 위원장은 정책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 앞으로 북한은 서울을 거치지 않고는 워싱턴과 대화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한편, 우리나라 외교 방향에 대해선 “과거 독일통일 때 미국, 영국, 프랑스가 지지하고 소련은 힘이 약한 시기였던 주변 정세와 달리 지금 한반도의 외부적 여건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협력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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