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세월호·메르스…삼류정치와 맞물려 광기의 '굿판'

잔인한 4월이라더니, 잔인한 6월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달 1일을 전후해 한 달 가까이 한국사회는 이 중동 독감과 전쟁 중이다. 물어보자. 당신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그렇게 무서운가? 진정 두려운 건 메르스 공포를 확산시키는 이 나라 언론이 아닐까? 신문-종편-대형포털-좌파언론의 과잉보도가 사회혼란과 함께 정부 흔들기 그리고 경기침체라는 자살골로 이어진다는 걸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확인한다. 대통령의 방미 연기에 따른 외교 차질과 한반도 안전문제도 그 여파다. 언론 망국(亡國)의 소리가 나오는 현 상황에서 미디어펜은 ‘선동언론, 이대로 좋은가?’시리즈를 상-중-하로 나눠 싣는다. 책임있는 언론의 길을 위한 모색이다. <편집자 주>

‘선동언론, 이대론 좋은가?’시리즈 <중>

   
▲ 조우석 문화평론가
며칠 전 이 지면에서 메르스보다 무서운 선동언론의 역사적 뿌리를 우선 다뤄봤다. 반세기 전 한일국교정상화 교섭 때 그토록 극성스럽게 반대하던 언론-대학생-지식인그룹에서 보듯 선동언론은 반세기 전 형성된 우리 체질이라는 게 새삼 드러났다.

선동언론이란 저널리즘의 기본을 무시한 채 사회불안과 정치 위기를 증폭시키는 기형적 저널리즘을 총칭한다. 팩트 확인이 부족하거나 무시하기 일쑤이고, 명분 따위에 매달리니 실사구시의 태도에서 한참 멀다. 그리고 정치과잉이다. 보라. 요즘 언론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게 대통령-총리 등 헌법기관 흔들기다.

세월호가 됐건 중동 독감이 됐건 결국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켜야 하고 마구잡이로 정부를 때려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게 어느덧 일상이 됐고, 거의 전매체로 확산됐다. 대선 불복, 국정원 무력화, 군(軍)이나 해경 등 국가기관 불신, 그리고 바탕에 깔린 친중 친북 반일 반미주의의 성향… . 그래서 선동언론은 늘 반(反)대한민국 쪽으로 치닫곤 한다.

‘전 매체의 선동언론화’,‘언론 망국’을 필자가 기회 나는대로 경고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미 정치사회적 괴물로 자라난 선동언론은 사회 여론을 황폐화시키고, 국가공동체 구성원들의 시민의식을 마비시키는 최대 원인이다. 그걸 권력감시-자본견제라고 언론은 말하지만, 국민들도 오래 전부터 ‘언론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을 방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한국언론의 좁은 시야‘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향후 2~3년 통일·외교환경 변화, 경제위기, 천재지변 등의 돌발변수를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할 게 언론인데, 외려 선동질에 코 박는 한국언론이 정상일 리 없다. 그리고 시야가 너무 좁다. 한국언론의 그런 독특한 멘탈리티와 시야는 한마디로‘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에서 그친다.

필자에게 그걸 귀띔해준 건 언론사 후배인 문화일보 논설위원 황성준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릎을 쳤다. 한국기자들의 시야와 행동반경이라고 해보니 신문사가 몰려있는 광화문 주변과 대통령 있는 청와대 주변 그리고 ‘국회독재’의 아성인 여의도를 오가는, 극히 제한된 울타리가 전부라는 지적이다.

한반도와 주변상황에 훨씬 더 결정적인 도쿄나 베이징 그리고 워싱턴이 움직이는 국제정치의 커다란 체스판은 언제나 한국언론의 시야에서 벗어나있다. 국제뉴스를 일부 다루지만, 언제나 편협한 민족주의 정서에 영합하는 것만을 내보내기 때문에 마치 세상이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안겨준다.

삼성이 최고인재인 글로벌 지역전문가 5000명을 지난 20여년 새 길러내 세계경영을 벌이는 판에 한국언론만‘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로 극히 제한된 시야만을 고집한다. 그래서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만드는 이 나라 언론은 그래서 언제나 조선조말의 쇄국적 상황을 그리워한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못 면하는 그들의 관심은 여의도 정치판에서 누구 고성을 지르고 막말을 내뱉었나, 누가 누구의 계파인가를 따지는 것에만 익숙하다. 그런 뒷골목의 정치, 흑색선전과 편 가르기 등 서울 식 정치를‘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고 명명했던 사람이 1950년대 주한 미대사관 문정관을 지낸 그레고리 핸더슨이었다.

   
▲ 지난 14일 방영된 KBS-2TV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코너는 ‘무늬만 공영방송’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메르스를 주제로 정부를 때리고, 반국가를 외치는 건 방송 아닌 선동이고, 풍자가 아닌 탈선이다. /사진=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영상캡처
한국사회를 망치는 호들갑 선동언론과 삼류 정치판

사회에너지가 중앙정치에 과도하게 쏠리는 구조에 대한 지적인데, 그가 지금의 한국정치판을 본다면 생각이 또 바뀔 것이다.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는 전매체의 선동언론화에 따라 지금 못말리는 광기(狂氣)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고 경고를 할 것이다.

그래서 연초 대통령의 연두 회견에서 미주알 고주알 국내정치 문제에 대한 그 많은 질문이 쏟아지지만, 막상 경량화-소형화에 성공해 한반도에 재앙을 안겨줄 수도 있는 북핵에 대한 질문은 단 하나도 던지는 기자가 없다.

얼마 전 필자는 선동언론에 눈과 귀를 저당 잡힌 작금의 상황을 연작처당(燕雀處堂)이란 사자성어로 정리한 바 있다. 집이 불타고 있는데도 그 위험을 모르고 지저귀고 있는 제비나 참새의 꼴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꼬리를 물었던 국정원 댓글 사건, 세월호 문제와 메르스 소동 일련의 사건 대부분이 가짜 이슈라고 필자는 감히 규정한다.

한국사회를 망치는 두 집단인 호들갑 선동언론과 삼류 정치판이 만들어내는 논란을 위한 논란 즉, 유사(類似) 의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대한민국 선진화란 목표와, 한반도 평화라고 하는 진짜 이슈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동언론이 만들어내는 호들갑스러운 각종 이슈와 논란이란 실은 자기 발등을 찍는 행위 혹은 퇴행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선진화와 한반도 평화,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힘인 자유민주체제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이 외려 위협 받는 상황이 지금이다.

좌파가 연출해내고, 선동언론이 난동을 부릴 경우 낮은 지력(知力)에 좌파정서로 오염된 국민이 삽시간에 광기를 뿜어내는 아찔한 장면을 우리는 반복해 지켜봐오지 않았던가? 국가사회를 망치는 부정적 에너지로 가득한 지금 대한민국은 명백한 체제위기 상황이다.

이어령의 ‘소원詩’가 신파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상황을 어찌할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런 인식을 하고 있어 그래도 다행스럽다. 일테면 올 연초에 발표됐던 문학평론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이른바 ‘대한민국 국민의 소원시(所願詩)’를 관심있게 읽었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았습니다/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중략)숨 가쁘게 달려와/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앞인데/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어쩌다가/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수출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서도/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이른바 모더니즘 시들보다 훨씬 리얼하고 울림이 크다. 역시 이어령은 이어령인데, 그래서 그는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대신 메르스뻥에 온통 난리가 난 듯한 작금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다. 거기까진 좋다.

그러나“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라고 묻는 신파조의 공허한 질문이 필자는 마음에 안 든다. 그의 인식이 진정 올바르다면 “거짓 선지자들”에 불과한 이 나라 이 땅의 선동언론부터 질타했어야 옳았다. 그는 지금 중앙일보 고문으로 있는데, 2.5류의 지면을 만드는 중앙일보를 포함한 주류 언론의 자성을 일갈을 했어야 했다.

그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선동언론의 등쌀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앞인데/벼랑 앞에서 그냥 추락할 수”도 있는 2015년도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이다. 선동언론 문제를 다루는 이 시리즈의 다음 번 마무리에서 또 다른 큰 문제와 함께 솔루션을 더 찾아보자.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