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평가보다 ‘가치’ 창출하는 존재로 살아갈 지혜 가르쳐야
   
▲ 김흥기 교수

이제 1개월 후인 7월 21일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다. 이에 대해 세계최초로 인성교육을 법으로 정한 나라라고 치켜세우는 쪽도 있는가 하면 이제 ‘인성’도 법으로 의무교육 하느냐며 개탄하는 상반된 분위기가 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사회 인성이 무너진 것이 확인되었으니 학교부터 인성을 가르치자는데 반대하기 어렵다. 자질 있는 인성강사를 키워내고 학생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과 협력의 8대 덕목 모두 지금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들이다. 하지만 여기에 정부의 각종 재정적 지원과 ‘평가와 인증’이 개입되면 심각한 폐해가 우려된다. 이 점에서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취업준비생들은 자기소개서에 기업이 정해놓은 ‘인재 상’에 자신을 꿰맞춰 작성한다고 한다. 그래야 합격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인성교육을 정량평가하면 바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 아이들이 국가가 정해놓은 예, 효 등 8대 덕목과 의사소통능력 및 갈등해결능력 2대 핵심역량에 자신을 꿰맞출 것이 명약관화하다. ‘기업 맞춤형, 국가 맞춤형’의 고만고만한 말 잘 듣는 ‘규격품’ 양산이 예상된다.

이렇게 되어서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미래인재와 시민을 길러내는데 차질이 생기게 된다. 정부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창의인성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자율성과 독립성이 핵심인 ‘창의성’을 키우자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국가가 모델을 제시해놓고 획일적인 ‘인성’교육을 한다면 아귀가 맞지 않는다. 사회에 다양성(diversity)이 강물처럼 넘쳐야 창의적인 사회, 매력 있는 사회, 창조경제로의 도약이 비로소 가능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똑같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인간의 유전자는 99.99% 같지만 피부색, 외모, 체격, 지능, 성격, 적성, 생각과 태도가 같은 인간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제각각 다르게 태어났으니 그들의 기질과 재능 및 개성이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세상에 어디 정답이 있는가? 우리는 꼭두각시나 로봇이 아닌 자율의지를 가진 인간인 것이다.

   
▲ 국가는 인성교육이 국가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를 갖추는 데 도움주기 위한 것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국가의 부속물 또는 수단이 아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영국의 사상가 존 로크는 ‘교육에 관한 약간의 성찰’에서 학생에게는 어떤 틀을 뒤집어 씌워서는 안 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도와줘야 하며 교훈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펼쳐 자유롭고 성숙한 개성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일찍이 설파했다. 인성교육은 단순한 예절교육이 아니다. 결국 인성교육의 방향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시민교육(citizenship education)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이 나쁘면 머리 나쁜 녀석이 노력도 안 한 셈이 된다. 인성평가도 머리 좋고 눈치 빠른 애들이 좋은 성적을 받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바 이제 인성성적이 나쁘면 (‘못생긴 게 성격도 더럽다’에 이어) ‘머리 나쁜 게 인성도 나쁘다’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될 까 심히 걱정스럽다.

지식을 주입하듯 인성을 교육하고 자가 평가를 통해 측정하며 교육대와 사범대 입시에서 인성점수를 반영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스펙타파 하겠다고 야심차게 내놓은 국가직무능력표준 NCS가 학교와 학생, 취업준비생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사교육을 부추기는 또 다른 스펙이 되었다는 비판에서 보듯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 활개 칠 함량미달 인성강사와 사교육기관은 볼썽사납다. 국가가 법을 만들면 바로 편법이 기승부린다.

국가는 무엇보다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학생들이 힘차게 뛰놀면서 배우는 것이 이상적이다. 잘난 사람 되라고 가르치지 말고 ‘나쁜 놈 되지 말자’고 일깨워야 한다.

학교교육을 바로 세우지 못해 왕따와 폭력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데 이 원인을 개인 인성에서 찾는다면 아랫돌 빼 윗돌괘기 식의 미봉행정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가적 행사가 된 대입수능과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비정상적인 풍토를 바로 잡지 못한 채 어찌 올바른 인성을 지닌 인재를 길러내겠는가?

마지막으로 국가는 인성교육이 국가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를 갖추는 데 도움주기 위한 것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국가의 부속물 또는 수단이 아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이기에 인간을 목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로봇,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대들에게 기계가 절대 갖지 못할 인간의 인간다움을 지키고 기계가 창출하지 못하는 특별한 가치(Value)를 창출하는 고귀한 존재로서 살아갈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김흥기 모스크바 국립대 초빙교수, '태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