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과보호 철폐 등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책 뒤따라야

   
▲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내년부터 316개 전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 정부가 1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1차>의 내용 중 하나이다. 우선 공공부문에는 경영평가 등을 통해 공공기관 전체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하면서 민간으로의 확산을 유도하기로 했다.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은 본래 2013년부터 추진해 왔지만, 기관 자율에 맡긴 상태였다가 작년부터 공기업 경영평가에 일부 포함시켰다. 당연히 추진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내년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어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조선과 금융, 제약, 자동차 및 도소매 등 6개 선도업종과 30대 기업집단 및 중점관리 대상 사업장 551개소에 대한 집중 지원 등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확산시켜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임금피크제와 연동하여 청년을 신규로 채용한 모든 사업장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함으로써 ‘청년 고용 절벽’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잘 알다시피 청년 일자리 문제는 그 심각성이 점점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더라도 2015년 5월 현재 청년실업률이 9.3%로 2000년 이후 5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취업준비자까지 포함하면 청년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체감실업률은 11%나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노동시장에 대한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년을 60세로 연장함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들의 취업문을 더욱 좁게 만들어 놓았다. 이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청년 실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정부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노동시장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전력이며,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런 점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정년 60세 의무화로 인한 부담을 완화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할 것이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및 이와 연동해 신규 채용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도로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16개 공공기관을 다 합쳐봐야 내년부터 2년 간 6,700명 정도를 신규 채용할 수 있다고 한다. 청년실업 해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이러한 정책은 기존의 공공기관 개혁 방향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공공기관의 기능 축소와 통폐합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 구조조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원을 더 늘리겠다는 것은 정부의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가 되기 쉽다.

   
▲ 지난 1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노동시장 개혁 1차 추진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1차 추진방안은 내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앞두고 노사의 핵심 현안이 된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게다가 이번에 임금피크제와 더불어 동시에 발표된 다른 내용들은 이것이 과연 청년실업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인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등 취약 근로자 보호 강화를 위해 기간제, 사내하도급, 특수형태업무 종사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가뜩이나 경직적인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고용 경직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공공부분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확대하고, 근로시간 단축 조기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반면, 그동안 수차례 요구되었던 정규직 과보호 해소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임금피크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방안들은 납세자와 기업의 부담을 늘리고, 노동시장 경직성을 심화시켜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고용을 기피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이번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1차>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환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만드는 일자리는 세금을 통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민간부문에서 사라지는 일자리는 보지를 않는다. 또 정부가 만드는 일자리 대부분은 생산 활동과 전혀 관계가 없거나 ‘일자리 창출 성과 내기용’ 임시방편 일자리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질 리 없으며, 설사 만든다 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못된다. 공무원의 숫자는 늘어나고 공공부문은 확대되는 반면, 민간부문은 위축되고 왜소해진다. 실업은 늘고 정부가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누차 지적되고 있듯이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정년 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어야만 고용 창출 여력이 확보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은 필수적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들에서 청년 고용이 늘고 동시에 장년층의 고용유지율도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청년층과 장년층의 세대 간 취업 갈등이 아니라 세대 간 윈-윈 관계가 형성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정부는 임금피크제가 제대로 추진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동시에 성과급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요건 명시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앞서 지적된 노동시장 경직성을 강화하는 방안들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한 걸음 전진했다 두 걸음 물러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한 곳의 현수막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고용은 무엇인가? ‘고용은 활인(活人)이다.’ 고용의 주역인 기업들이 신나게 활동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는 것이 곧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노동시장 개혁도 마땅히 이 방향으로의 개혁이 되어야만 한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