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임창규 기자]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를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분쟁 중인 삼성물산 주식을 20% 넘게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주명부 폐쇄 기간 마지막 날인 지난 16일 현재 국내 기관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21.2%(이하 보통주 기준)에 달한다.

연기금 중에서는 삼성물산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가장 많은 10.15%의 지분을 갖고 있고 사학연금도 0.3%의 지분을 보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한국투신운용, 삼성자산운용, KB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교보악사자산운용, NH-CA자산운용, 키움자산운영 등이 각각 0.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가운데 삼성그룹은 합병 성사를 위해 이들 기관투자자의 표심을 반드시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일단 국민연금을 포함한 대다수 기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합병 반대표를 던지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편이다.

한 자산운용사의 고위 관계자는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 주가가 오를 수 있지만 반대로 합병 기대에 가격이 오른 제일모직 주가는 크게 빠질 것"이라며 "두 주식을 동시에 보유한 기관으로서는 합병을 무산시키기 어려운 처지"라고 말했다.

작년 12월 18일 제일모직 상장 이후부터 이달 19일까지 연기금과 펀드 업계는 제일모직 주식을 대거 사들였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내다 팔았다.

이 기간 연기금과 투신권은 제일모직 주식을 5836억원어치 순매수한 반면 삼성물산 주식은 4113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연기금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제일모직 주식을 4274억원어치 순매수하고 삼성물산 주식을 952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번 합병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은 명분을 지키면서도 투자 이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으려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데 참고하려고 외부 기관에 의뢰한 자료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며 "아직 결정까지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그룹은 최치훈, 김신 삼성물산 대표를 글로벌 의결권 자문 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미국 본사에 파견하기로 하는 등 외국인 표심 잡기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엘리엇의 7.12%를 제외하고도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은 26.49%에 이른다.

한편 외국 기관 중 일부는 국내 기관처럼 제일모직에도 함께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외국인도 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각자의 이익에 맞춰 찬반 입장이 나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또 합병 발표 이후 1대 0.35로 합병 비율이 정해진 상황에서 삼성물산 주가가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것을 이용해 차익 거래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헤지펀드는 합병 무산 때 손해가 배로 커진다는 점에서 합병에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산운용사의 고위 관계자는 "엘리엇의 등장 이후 삼성물산의 공매도 비중이 부쩍 높아진 것은 제일모직 현물을 사고 공매도로 삼성물산을 파는 차익거래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국내 헤지펀드의 규모가 작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차익거래는 대부분 외국인이 주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