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북한 장마당 새 세대’ 국제학술회의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에서 김정은 체제 들어 반시장 정책이 거의 사라졌으며,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장통제가 효과를 못 얻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10년 넘게 지속되어온 북한의 시장화는 양면적이어서 주민들의 자력 의지를 높이고 계획경제시스템을 밀어낸 측면도 크지만 한편으로, 배금주의와 부정부패를 확산시키고 소득 양극화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23일 개최한 ‘북한 장마당 새 세대’를 주제로 하는 국제학술회의에서 박인호 데일리NK 대표는 북한에서 “‘장마당 세 세대’가 등장할 만큼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려온 것은 자연 파생적인 현상으로 김정일 체제에서 시장통제 정책이 심했지만 주민들의 반발과 하급간부들의 단속 태만으로 번번이 무위로 끝났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김정은 체제 들어서는 장마당 새 세대가 만들어질 만큼 북한의 시장이 가장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장마당 세대란, 현재 18~35세의 젊은 청년들로 1990년대 후반 대기근 때 성장기를 거치고, 2000년대 시장화가 시작된 후 청년기를 보낸 이들이다. 김정일 체제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시장화 흐름에 뛰어들어야 했던 세대로 북한 전체인구의 약 25%를 차지한다.

따라서 장마당 새 세대란, 김정은 체제 들어 등장한 시장 행위 주체들을 말한다.

   
▲ 중국 길림성 남평과 북한 함경북도 무산을 잇는 국경초소 전경.

박 대표는 “지금 북한이 완전히 시장자유를 허용한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 시대에 추진됐던 반시장 정책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면서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추모행사를 명분으로 시장을 일시 폐쇄했던 것이 마지막 시장통제였으며, 지금 시장통제는 ‘한국산 제품을 팔지 말라’ ‘외국 출판물이나 영화가 담긴 DVD는 팔지 말라’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김정은 체제의 시장화의 특성은 ‘3무3다’로 요약된다”고 했다. 즉 시장통제·상인통제·상품통제가 없어졌고, 써비차(벌이버스)·휴대전화·개인소득이 많아졌다.

이 중 북한 시장에서 사라진 것을 설명하자면 “우선 시장 개장시간에 대한 통제가 사라져서 봄철 ‘모내기 전투’나 국가기념일에 개장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었으나 모두 주민들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특히 노점상에 대한 통제가 줄어들면서 종합시장 주변 노점상에 소액의 자릿세를 걷거나 이들을 종합시장 매대로 편입시키는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종합시장 매대에서 장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연령통제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이런 조치가 노동당 차원의 방침인지, 아니면 해당 지역 하급간부들에게 만연한 뇌물문화 탓인지 분명치 않지만 평양을 포함해 전국에서 공통점으로 발견됐다”면서 “상품도 갈수록 중국 제품의 유입이 늘어나고 있어서 공산품뿐 아니라 농수산물까지 중국제가 종합시장을 채운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종합시장 매대를 분양받으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매대 자릿세가 급상승하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박 대표는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사례를 들어 “시장 관리소에 내는 자릿세도 소폭 상승했지만 특히 매대에 대한 권리금이 크게 상승한 것이 놀랍다”며 “혜산 농민시장의 공업품 매대는 권리금만 4500위안으로 북한 돈 600만원에 달한다. 이는 혜산시 변두리에서 단층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가격”이라고 했다.

게다가 혜산 농민시장관리소에서 매대 자릿세로 하루에 걷어들이는 돈이 북한 돈 4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6월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쌀 770㎏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일반적인 북한 남성 하루 배급량(600g)으로 계산하면 총 1200명에게 배급할 수 있는 양이다.

박 대표는 또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두만강-압록강 국경지역과 북한 내부로의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다만 평양, 개성, DMZ 인접 지역은 예외”라면서 “이 역시 북한 당국의 주민 이동통제 정책은 변하지 않았으나 간부들의 뇌물문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박석길 LiNK 정책연구국장은 ‘장마당 새 세대와 북한 정권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북한 장마당 세대가 외부세계의 정보에 접근하면서 자라난 점에 주목했다.

박 국장은 “많은 장마당 세대 사람들은 1990년대의 극심한 경제 고난기 동안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고, 북한의 전통적인 선전과 문화가 이들에게 완전히 내재화되지 않았다”며 “동시에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정보기술과 외국미디어로 인해 북한 안에서 정보환경이 바뀌고 개방되면서 다른 현실에 눈 뜨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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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국장은 이어 “장마당 세대의 특징이 지금 모든 북한 주민들에게서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도시, 국경지대, 중산층에서 더 잘 보인다”면서 “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살아남으려고 정부체계와 규제에 반하는 불순종이 보편화된 세대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박 대표는 “북한의 장마당 세대는 북한 사회의 예측 가능성이 실종된 시대를 살면서 근본적인 목적과 전망도 잃어버렸다. 따라서 이들은 내일보다는 오늘을, 국가나 민족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며 “특히 장마당 세대는 법보다는 권력과 뇌물이 더 큰 힘을 발휘한 현실을 10년 이상 겪어왔다. 이렇게 장마당 세대가 비법에 익숙해져버린 현실이 앞으로 북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