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결함·반기업 정서가 해외 투기자본 먹잇감 부추겨
벌처펀드(Vulture fund)' 혹은 '행동주의펀드(Activist fund)'로 불리는 엘리엇펀드(Elliott Associate)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그룹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승계과정을 이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는 새로운 행동주의 행태라는 지적이 많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문제가 이러한 투기자본의 공격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정부가 '글로벌스탠다드'에 따라 재벌정책을 시행해서 국내기업들에게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차등의결권등 '방패'수단을 완전히 없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실제를 모두 반영한 현실적인 기업관으로 소위 재벌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엘리엇과 삼성 간의 이번 분쟁을 국익과 이해당사자의 관점에서 비교하면서 현행 기업지배구조정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검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는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 엘리엇 삼성 분쟁이 주는 교훈> 토론회를 열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의 사회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패널로는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정승일 사민저널 기획위원장,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과 교수,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토론자로 참여해 열띈 토론을 벌였다. 아래 글은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기업 경영안정 흔드는 투기자본

한국경제는 10여 년 째 투자빙하기를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성장률은 2%대로 추락하고 일자리가 부족해 난리다. 어떻게 하면 투자를 회복해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가 초미의 과제다. 기업투자회복을 위해서는 규제개혁 노사안정 경영안정 등 투자환경이 개선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규제개혁, 노사안정도 안 되고 있는 데다 외국인 투기자본들마저 경영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최근 대두된 엘리어트의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반대도 한 예다.

삼성그룹은 2013년 말 이후 지속적인 그룹계열사 합병, 환화와 빅딜 등 계열구조를 단순화해 오고 있다. 경영권 승계작업과 더불어 순환출자금지, 금산분리, 내부거래축소 등 새 정부 경제정책에 호응하기 위한 조치다. 작년 7월부터 신규순환출자만 금지하고 있지만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기존 순환출자 고리도 끊고 있다. 아울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한 통합삼성물산을 정점으로 삼성전자 삼성SDI 등 실물계열사와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로 구분되는 사실상의 중간 지주회사체제의 금산분리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계열재편의 마지막 단계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투기자본 엘리어트가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하고 일부 국내 소액주주운동 그룹도 동조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 투기자본들은 언제나 양면의 얼굴을 하고 있다. 명분은 대주주의 전횡에 대한 소액주주의 이익보호를 내세운다. 그러나 종국엔 막대한 이익을 챙겨 떠났다.

   
▲ 벌처펀드(Vulture fund), 행동주의펀드(Activist fund)로 불리는 엘리엇펀드(Elliott Associate)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그룹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룹의 합법적인 승계과정을 악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는 새로운 행동주의 행태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연합뉴스

2003년 SK 경영권 공격빌미로 9000억 원을 챙긴 소비린, 2004년 삼성물산 주식 취득후 380억원을 챙긴 헤르메스, 2006년 KT&G로부터 1500억원을 챙긴 아이칸 등이 예다. 2003년 외환은행을 1조 3834억원에 인수했던 론스타는 고율배당과 블록세일로 2조 9027억원, 매각 3조 9157 억원 합 6조 8184억원을 챙겼지만 다시 한국정부를 상대로 5조 1000억원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왜 이렇게 외국 투기자본의 봉이 되고 있나. 대주주지분율이 낮은 가운데 자본시장은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 등 완전 개방되어 있다. 이로 인해 주식매매차익에 대한 과세가 전무한 반면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봉쇄되어 있다. 한국에서 성장세와 견고함을 보이고 있는 대기업, 유망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의 손쉬운 표적으로 잡히는 이유다.

대주주 지분은 기업공개로 대기업 성장 과실을 나눠 갖자는 취지로 도입된 1972년 기업공개촉진법,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5% 미만인 소유지배구조 우수기업에 대해 출자총액제한시 혜택을 준 1994년 공정거래법, 1997년 외환위기 후 부채비율의 급격한 축소과정에서 대주주지분율은 급격히 낮아졌다. 반면 대주주 경영안정을 위해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도입돼 있는 차등의결권제도(대주주 지분에 10배 정도의 의결권 부여), 황금주(거부권 있는 대주주 주식), 포이즌빌(기존 주주의 저가 신주인수선택권) 등 제도는 없다.

   
▲ 삼성그룹과 엘리엇펀드와의 분쟁에 관하여, 정부가 '글로벌스탠다드'에 따라 시행한 재벌정책으로 인해 국내기업들에게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차등의결권등 '방패' 수단을 완전히 없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배경에는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이사 1/2이상 사외이사 선임, 감사 선임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의결권을 3%만 인정하는 3%룰 도입 등 지배구조를 개선해 왔으나 아직 사외이사제도가 실효성이 적고 대주주 전횡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연해 있는 반기업 반재벌 정서가 한 몫 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제도적 결함,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투기자본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소액주주 보호는 지배구조개선 차원에서 개선해 나가야지 두 얼굴을 한 투기자본의 힘을 빌리다 결국에는 막대한 국부를 유출하고 경영불안으로 인한 투자위축을 초래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