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가장 경직적이고 적대적인 한국…투기자본에게 손쉬운 시장

벌처펀드(Vulture fund)' 혹은 '행동주의펀드(Activist fund)'로 불리는 엘리엇펀드(Elliott Associate)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그룹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승계과정을 이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는 새로운 행동주의 행태라는 지적이 많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문제가 이러한 투기자본의 공격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정부가 '글로벌스탠다드'에 따라 재벌정책을 시행해서 국내기업들에게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차등의결권등 '방패'수단을 완전히 없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실제를 모두 반영한 현실적인 기업관으로 소위 재벌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엘리엇과 삼성 간의 이번 분쟁을 국익과 이해당사자의 관점에서 비교하면서 현행 기업지배구조정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검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는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 엘리엇 삼성 분쟁이 주는 교훈> 토론회를 열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의 사회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패널로는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정승일 사민저널 기획위원장,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과 교수,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토론자로 참여해 열띈 토론을 벌였다.

미디어펜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의 발제문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마지막 세 번째 연재다. [편집자주]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3]
- 엘리엇, 삼성분쟁이 주는 교훈 -

반재벌정서 호소하는 엘리엇…현실 아닌 이상주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벌정책 반(反)재벌 정서와 이상향적 기업관, 이상주의적 경제민주화 논리의 결합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조차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에게 쉽게 공격 당하는 이유는 한국의 기업 관련 정책이 반(反)재벌 정서에 입각해서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만들어지고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1) 가장 강력한 공정거래법을 시행하고 있고, (2) 경영권 승계에 가장 비우호적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3) 상법을 통해 '1주1의결권' 원칙을 가장 강제적으로 적용하는 나라에 포함된다.

먼저 공정거래법을 보자.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공정거래의 규제 대상이 시장행위이다. 시장에서 담합이라든지 독점적 지위 남용 등이 제재를 받는다. 독점이나 경쟁 제한이라는 결과가 나타났을 때에 제재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공정거래법은 독점이나 경쟁 제한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까지 규제한다.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집중의 억제가 공정거래법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계열사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도, 또 자산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도 기업이 규제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기업결합과 경제력 집중 억제가 공정거래법에 들어가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공정거래 위원회 내부에서는 이러한 '원인' 규제가 갖고 있는 문제를 인지하고 점차 '결과' 규제 위주로 규제틀을 바꿔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지만, 아직 가시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 벌처펀드(Vulture fund), 행동주의펀드(Activist fund)로 불리는 엘리엇펀드(Elliott Associate)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그룹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룹의 합법적인 승계과정을 악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는 새로운 행동주의 행태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또 기업의 경영승계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나라에 들어간다. 상속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에서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스웨덴, 뉴질랜드, 싱가폴, 중국 등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이태리, 대만, 브라질 등은 10% 이내의 저세율을 적용한다.

한편 상속세율이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 미국은 상속세율이 40%이지만, 듀폰, 포드, 록펠러 등은 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승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도 재단설립 및 운용이 자유롭다. 그렇지만 한국은 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재단의 주식 보유에 관해 정부로부터 각종 규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재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정부가 판단할 경우 국고로 귀속할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특히 대기업들은 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기업의 의결권에 있어도 한국은 가장 경직적인 '1주 1의결권'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회사법을 통해 이를 강행법규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1주1 의결권을 적용하는 기업은 평균 65% 정도이다. 3분의 1 가량이 차등의결권을 사용한다. 프랑스(31%), 네덜란드(14%), 스웨덴(25%)는 1주1의결권 비율이 특히 낮다. 차등의결권이 오히려 대세이다. (아래 그림 참조)

   
▲ 유럽의 국가별 1주1의결권 적용 현황 /출처: 김수연(2015)

비벤디는 원래 1주1의결권 제도를 채택하고 있던 회사였다. 그러나 PSAM 등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으면서 의결권 제도를 2년 이상 보유 주주는 2배의 의결권을 갖도록 변경했다. 프랑스 회사법에서는 주주의 3분의 2가 동의하면 의결권 제도를 바꿀 수 있게 되어 있다. 현재 비벤디의 최대 주주이자 최고경영자인 볼로리(Bollor) 회장은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대응하고 경영권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의결권 변경을 제안했고 2015년 4월 열린 주주 총회에서 승리했다. 볼로리 회장은 의결권 변경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비벤디를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1주1의결권 제도이지만 임의 규정으로 회사가 정관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기업이 상장할 때에 증권거래소와 경영권 확보에 관해 협의를 할 수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이후에도 '포이즌 필(poison pill)'을 채택할 수 있어서 기존 주주들이 헤지펀드 등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등에 대항할 수 있다.

따라서 포드, 브로드콤, 뉴스코프 등과 같이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지분율보다 훨씬 큰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존 대기업들이 많이 있다. 뉴욕타임즈는 슐츠버거 재단이 0.6%의 지분만 갖고 있는데 100% 의결권을 행사한다. (표 1참조) 워렌 버핏도 차등의결권을 통해 버크셔 해서웨이에 지분보다 큰 의결권을 갖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벤처기업들이 상장할 때에도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했다. 구글은 처음 상장할 때에 금융가와 여론으로부터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반대에 부딪쳤지만,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차등의결권은 단기 이익을 쫓는 월스트리트식 경영간섭에 제한받지 않고 장기적인 기업전략의 수립 및 경영을 가능하게 한다면서 이것이 싫다면 구글에 투자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금 지분율 21.5%를 통해 73.3%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오래도록 가족경영을 통해 성장한 대형 음식료 회사 J.M 스머커(J.M. Smucker Company)는 4년 넘게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주당 10개의 의결권을 추가로 주고 있다.

   
▲ 미국기업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현황 /출처: 김수연(2015)

일본도 상법에서는 1주1의결권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회사 정관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임원선해임권부주식, 양도제한 주식, 의결권 제한 주식 등 9가지 종류의 주식을 허용하고 회사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주식설계을 할 수 있다. 또 단원주(單元株) 제도를 도입해 차등의결권이 가능하게 해 놓았다. 발행주식에 대해 10주 나 100주를 1 단원으로 정하여 1단원에 대해 1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1주1의결권을 가진 보통주식에 비해 10분의 1 혹은 100분의 1의 의결권을 갖게 하는 차등의결권 주식이다. 일본은 이와 함께 '신주예약권'이라는 일본식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해서 경영권 안정을 추가로 꾀하고 있다. 돈가스 소스로 유명한 불독소스사가 미국계 투기자본 스틸파트너스의 공격을 당했을 때에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신주예약권을 발동해서 경영권을 지켜낸 사례 등이 있다.

한국이 공정거래법이나 경영권 승계, 경영권 방어 등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강력한 반(反)재벌 정서와 이상향적 기업관, 이상주의적 경제민주화 논리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재벌은 󰡐오너(owner)󰡑 가족들이 경영권을 쥐고 여러 기업들을 집단(group)으로 경영하는 사업조직이다. 가족경영과 그룹경영이 재벌의 두 가지 특징이다. 그런데 한국은 가족경영과 그룹경영에 관해 모두 대단히 적대적이다. 이것은 세계경제 현실에 대한 전반적인 비교 없이 전문경영과 개별회사경영을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실현해야만 기업과 경제가 좋아진다는 편견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실제로 세계경제에는 가족경영과 전문경영이 공존하고 있고 그룹경영과 개별회사 경영이 공존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보편적이냐를 따졌을 때에 전문경영과 개별회사 경영이 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다. 어느 쪽이 더 경영을 잘 하느냐를 따졌을 때에 전문경영과 개별회사 경영이 더 낫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가족경영의 성과에 대한 연구자료들을 보면 오히려 전문경영보다 가족경영이 매출액 증대나 이익 증가에서 평균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1990년대초 미국 800대 기업을 살펴 보면 가족경영기업들이 산업평균보다 수익성이 33% 더 높았고 15% 더 빨리 성장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S&P500대 기업을 보면 매출증가율에서 가족경영은 23.4% 전문경영은 10.8%로 차이를 보였고, 이익증가율에서는 각각 21.1%와 12.6%의 격차가 났다. 1980년대 영국의 325대 기업에 대한 조사에서도 가족기업들이 비가족기업들보다 이익률, 매출증가율, 자산증가율에서 모두 앞섰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프랑스 1,000대 기업 중에서 업종이 같고 크기가 비슷한 기업들 47쌍을 비교했을 경우에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가족경영이 25.2% 비가족경영이 15.8%였고, 매출액대비이익률(ROS)은 각각 5.4%와 3.6%이었으며, 매출액증가율에서도 가족경영이 비가족경영을 앞섰다. (아래 표 참조)

   
▲ 가족기업과 비가족기업의 경영성과 비교

개별기업경영과 그룹경영을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그룹경영이 오히려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프랑스, 이태리,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폴, 브라질, 멕시코 등 많은 나라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의 상당수에는 󰡐그룹󰡑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재벌(財閥, 일본어로는 ‘자이바츠’)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던 일본은 2차대전 후 맥아더 점령사령부에 의해 재벌이 강제로 해체됐지만 전후 경제부흥 과정에서 󰡐게이레츠(系列)󰡑로 그룹형태가 부활됐고 이들이 일본경제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브랜드 루이뷔통이 LVMH그룹산하이다. 세계최대 화장품회사 로레알도 그룹조직이고 가족경영이다. 이태리 최대 민간기업조직은 피아트 그룹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은행이 기업에 지분투자하고 이사를 파견해서 은행중심의 그룹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도이체방크는 이러한 그룹경영을 통해 󰡐독일산업의 지배자󰡑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독일에는 또 지멘스그룹, AEG그룹, 보슈그룹 등과 같이 은행 통제를 받지 않는 독자적인 그룹들도 많다. 전문경영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도 실상은 다소 다르다. 미국경제의 고도성장기에는 콘체른(contzern), 트러스트(trust) 등 각종 기업결합이 성행했다.

신흥시장은 그룹 경영이 훨씬 더 발달해 있다. 중국에서 최대 기업은 시틱(CITIC)그룹이다. IBM을 인수한 레노보(Lenovo)도 󰡐그룹󰡑이다. 홍콩 최고부자 리카솅도 장강(長江)그룹을 운영하는 그룹회장이다. 중소기업이 발달했다는 대만에서도 최고갑부는 포모사그룹의 왕흉칭회장이고 그 뒤를 홍하이(鴻海)그룹의 쿼타이밍 회장이 잇는다. 대만경제에서 실제로 󰡐강시치에(關系企業)󰡑라 불리는 재벌들의 역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살림그룹, 리포그룹 등이 경제활동의 중핵이다. 말레이시아에는 르농그룹, 필리핀에는 아얄라 그룹 등의 대표적 재벌들이 있다. 한 때 세계최고부자로 등극했던 인도의 암바니 회장은 석유, 전력, 가스 등의 사업에서 활약하는 릴라이언스그룹의 최대주주이다. 인도에는 이외에 타타그룹, 미탈그룹 등의 세계적 재벌들이 있다.

   
▲ 삼성그룹과 엘리엇펀드와의 분쟁에 관하여, 정부가 '글로벌스탠다드'에 따라 시행한 재벌정책으로 인해 국내기업들에게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차등의결권등 '방패' 수단을 완전히 없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 최고부자에도 올랐던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회장은 카르소그룹 산하에 남미 최대 이동통신업체인 아메리카모바일과 텔멕스․텔셀 등 통신기업을 필두로 금융, 항공, 백화점, 레스토랑, 음반, 자동차 및 부품, 건축자재, 정유 등 거의 전 업종에 걸쳐 20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브라질의 보토란팀 그룹은 시멘트에서 출발하여 건설, 건자재, 광산, 농산물, 제지, 화학, 에너지, 전기, 금융 등으로 다각화했다. 창업3세가 경영하는 이 그룹은 2005년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으로부터 세계최고의 가족경영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제발전이나 경영학, 사회학 문헌 중에는 이같은 보편적 현실에 입각해서 기업집단이나 가족경영을 분석한 연구들이 꽤 많이 있지만 국내 재벌논의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런 국제적 연구 성과들이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되어 왔다. 대신 전문경영과 개별기업경영의 이상향적 기업관이 굳어져왔고 이에 따라 재벌은 규범을 벗어난 󰡐일탈(逸脫)󰡑로 취급되어 왔다. 그 결과 재벌들의 공과가 종합적으로 평가되기 보다는 재벌 자체가 한국사회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황제 경영'이나 '문어발식 확장' 등의 부정적 수식어가 붙으면서 재벌이 쉽게 '타도'나 '개혁'의 대상으로 몰렸다.

이 과정에는 경제민주화 논리가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경제민주화가 기업에 적용될 때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힌 문헌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재벌정책의 집행에 있어서는 개인들에게 '1인1표'의 주권(主權)이 있다는 정치 민주화 논리를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들의 지분을 발표하면서 오너가족의 지분이 5%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장하성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총수개인의 지분은 소량에 불과하고 절대지분을 일반소액주주들이 소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총수들은 계열사간의 상호출자를 이용하여 '소유하지 않고 지배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나 절대다수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이 바로 기업의 주인인 것이다."

   
▲ 바른사회 주최로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 엘리엇 삼성 분쟁이 주는 교훈> 토론회 전경. 패널들은 한국경제의 실제를 제대로 반영한 현실적인 기업관으로 재벌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미디어펜

이 주장에 어떻게 경제민주화 논리가 들어가 있는가? 예를 들어 한 재벌 계열사에서 오너가족 지분이 5%, 계열사 지분이 45%, 소액주주 지분이 50%라고 가정해 보자. 경제민주화론자들은 기업집단이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개별 계열사들의 지분을 다시 개인 지분과 법인 지분으로 나누어 봐야 하고 '순수' 법인이 갖고 있는 지분은 실질적인 소유권을 따질 때에 제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 따를 경우 45%의 계열사 지분은 '의제자본' 혹은 '가공자본'이 된다. 이렇게 '의제자본'을 제외하고 보면 장하성 교수의 발언처럼 소액주주들이 50%의 '절대다수 지분'을 보유하는 주인이고 오너가족들은 5% 지분만으로 '소유하지 않고 지배하는' 구조를 구축한 것이 된다.

이런 주장은 오로지 개인들의 주식소유권 만이 궁극적으로 정당하고 법인들의 지분은 개인지분으로 환원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권(株權)의 개인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인의 주식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법인의 활동에 큰 제약이 생긴다. 일단 기업이나 은행들이 투자를 할 수 없다. 투자를 할 때마다 이 돈을 궁극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 지분은 얼마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다. 지주회사도 만들 수 없다. 그동안 주식회사 제도가 발전해온 기반을 송두리째 바꿔야만 한다. 실제로 주식회사는 개인들의 동등한 주권이라는 개념 위에 만들어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1주(株)1표'의 주권(株權)이 적용될 뿐이다. 앞서 논의했듯이 이 원칙조차 차등의결권 등에 의해 주당 의결권을 달리 적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 주식을 보유하는 주체로는 개인(자연인) 뿐만 아니라 법인도 포함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논리를 기업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상법과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칙을 부정한다.

소액주주들의 지분이라고 하는 것도 그 실체가 모호하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소액주주들이 마치 동질적인 집단인 듯이 취급한다. 그러나 이들은 대단히 이질적인 집단이다. 여기에는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도,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들도 포함된다. 다른 기업들이 투자 목적으로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들도 있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계열사들의 주식보유를 '가공자본'으로 취급하고 지배권을 개인 지분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소액주주들의 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기관투자가들의 보유 지분에 대해 개인들의 궁극적 지분을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관에 돈을 맡긴 개인들의 숫자를 일일이 따져 순수 개인지분을 계산할 방법은 없다. 또 기관들은 원금만 갖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금융기법을 사용해서 원금 이상의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주권(株權)의 개인환원주의를 적용하면 기관들의 레버리지(leverage) 활용도에 따라 기업의 지배권이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해야 한다. 상법은 이와 같은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개인과 법인의 소유권을 똑같이 인정한다. 부채를 활용했건 상호출자를 활용했건 해당기업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개인과 법인을 동등한 주주로 인정하는 것이다. 상법에 개인들의 주권(主權)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는 없다. 주식소유에 따르는 주권(株權)만이 있을 뿐이다. 상법 논리와 경제민주화 논리가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맺는 말. '글로벌 스탠다드'의 허상(虛像)에서 벗어나야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체제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도입한다면서 너무나 많은 개혁들을 급진적으로 도입했다. 그런데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국제기구나 금융기관 보고서 등에서 이상화된 형태로 내놓은 것들인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한국은 단기 투기자본이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시장이 됐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대부분 상실했고 투자 동력도 약화됐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세계경제의 현실을 냉철히 살피면서 한국의 국익이라는 입장에서 여러가지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 엘리엇의 과거 투자행태를 보면 해당 기업이나 나라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행동과는 거리가 크게 떨어져 있다. 국제 '알박기펀드'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정도이다. 페루, 아프리카, 아르헨티나, 미국 등 엘리엇의 알박기 행태는 전략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먼저 국내 기업들에게 남아 있는 경영권 방어 수단은 '자사주 매입' 밖에 없는데, 다른 다양한 수단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개혁의 '모델'로 삼았던 미국조차도 투기자본의 대항하고 경영권의 안정을 꾀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을 허용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상법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니만큼 시간을 두고 논의한다 하더라도 포이즌 필과 같은 수단은 가능한 빨리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경영권이 안정되지 못하면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에 자금과 인력을 많이 쓸 수 밖에 없어서 기업이 확장하려는 의욕을 잃게 된다.

이와 함께 재벌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경영권 세습, 그룹식 경영에 대해 너무 강한 규제를 하니까 기업들은 이것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니까 정부는 더 강한 규제로 기업을 잡으려고 한다. 기업의 행태와 정부규제가 갈수록 기형적이 되어가는 이유이다. 이상주의적 기업관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기업이 운영되는지,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떤 유연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이것을 한국의 여건에 맞춰서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